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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7회 국민강좌] 천문과 우리역사 - 국학원
icon 정길선
icon 2012-04-05 14:11:34  |  icon 조회: 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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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7회 국민강좌] 천문과 우리역사 - 국학원

[7회 국민강좌] 천문과 우리역사
박창범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진화론을 연구하면서 진위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우리나라 고대사서의 기록을 분석해 보았다. 어쩌면 우리나라 고대사의 역사복원에 공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과학의 힘을 이용하면 고서의 기록이 진실인지의 여부가 밝혀 질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가 천문과 맺어온 역사는 유구하다. 역사기록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유물유적과 기록을 통해 그 시대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 상고시대의 천문에 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다행하게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기록의 40%가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특히 삼국사기의 혜성관측도와 유성, 운석 등 240여 개의 천문기록 중에는 중국에 없는 기록이 있고 천문기록 외에도 많은 지진기록이 있다. 신라본기에도 지진과 태풍, 홍수, 인명피해 등 다양한 종류의 자연현상기록이 있다.


요즘 거론되는 한단고기와 단기고사에도 단군조선시대의 특기할만한 기록이 많이 있다. 일식에 관한 기록 10건과 화성과 수성, 금성, 목성, 토성 다섯 개의 별이 나란히 모여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 오성취루 현상 1건, 강한 썰물 현상이 그것이다. 이 기록은 우리나라만의 기록이며 그 외에도 24건의 자연기록이 더 있다. 한단고기나 단기고사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사서의 기록은 4천년이 넘는 시대 때부터의 기록이 있게 된다. 중국은 2800여 년 전부터의 관측기록이 있고 일본은 1400여 년 전부터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전문적인 관리를 두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천문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3국뿐이다. 서양은 망원경을 만들어 관찰하면서 체계적으로 관리한 기록은 300-4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고구려시대의 벽화에는 24기의 천문도가 새겨져 있으며 첨성대가 있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하지만 신라에는 천문대시설인 첨성대가 현존해 있다. 백제도 있었겠지만 그를 증명해줄만한 아무런 사서와 기록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직은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한단고기와 단기고사를 쓸 때 자연현상을 아무렇게나 조작해서 써 넣었을 것이란 가설은 확률을 계산한다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단고기나 단기고사가 잘못된 기록이 많다고 하지만 한 개라도 사실이 아니면 위서로 볼 것인지 하나라도 사실이 있으면 사실로 인정될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라고 본다.


BC 1734년 해질녘, 지금부터 3740여 년 전, 초승달과 함께 다섯 개의 별이 나란히 모인 아름다운 장관은 흔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선조들도 기록에 남겼을 것이다. 오행성(화성, 수성, 금성, 목성, 토성)이 근접한 특이한 현상을 고도로 발달된 현재의 기계문명을 이용하여 태양계의 원리를 쫒아 역 추적하면 단군조선기록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된다.


<증명 방법>
삼국사기에만 있고 어떤 나라에도 없는 현상이 실제 했는지의 여부를 과학적 수치로 가려보면 실제로 관측해서 기록했는지의 사실여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라 때 ‘금성이 달을 먹었다.’ 라는 기록을 풀기 위해 별들은 고정되어 있고 달이 움직이면 달이 행성을 가릴 수 있는 사실과 2005년 7월에 금성과 달의 위치가 가까이 접근되는 사실을 갖고 달이 행성에 근접하는 시점부터 역 추적한 결과 당시의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록임이 밝혀졌다. 금성에 대한 8개의 기록 중 7개가 중국에 없는 기록이며 목성기록을 포함 17개의 천문현상기록대부분이 실제임이 드러났다.


일본이 삼국사기기록을 믿기 어렵다고 했으나 어느 나라보다도 정확하게 실제로 관찰해서 기록한 것이다. 언뜻 보면 중국 것을 베낀 것처럼 보이지만 초기의 역사서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증명>
일부인들은 삼국사기를 중국에서 일어난 일식을 베껴 썼다고 한다. 이것도 거꾸로 관측해 보면 알 수 있다. 일식은 지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개기일식이나 부분일식으로 관찰된다. A.D.141년 11월 16일 오전 10시 51분 개기일식을 볼 수 있을 때 그 지역은 한정되어 있어 그곳에서 멀리 갈수록 부분 일식만 볼 수 있다. 120년 일식은 동쪽에서는 볼 수 있으나 서쪽에서는 부분일식이다. 또 남쪽에서 볼 수 있는 일식도 있다. 일식기록은 어느 장소에서 기록을 남겼는지의 지역도 알 수 있다. 개기일식은 한 나라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일식기록을 정리하면 관찰한 위치가 나오고 그 위치는 그 나라의 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서기록은 서기 201년까지의 기록은 있으나 201년부터 500년 동안은 기록이 없었다. 8세기 말이 되어서야 많은 기록이 나오므로 우리나라 역사의 기록은 양분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천체변화에 대한 기록을 분석해보면 관측한 장소의 경도는 알기가 어렵지만 위도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러한 실험결과 삼국의 위도가 다르게 나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르게 고서의 일식을 추정해 보면 신라는 양자강 유역이고 백제는 발해만 지역, 고구려는 몇 개 안나오지만 위도 상으로 적어도 백제나 신라의 위쪽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의문은 선조가 천문기록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남겨준 풀어야할 숙제이다.


이 시기의 기록을 중국에서 베꼈다고 볼 때 중국사서의 일식기록을 보고 북쪽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고구려로 넣고 계산해서 백제로, 또다시 신라로, 이렇게 임의로 분리해서 보냈을 확률은 전혀 상상 할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중국기록의 16개 기록을 삼국으로 보냈다고 하는 사실은 사실이 아님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


1910년 일본 학자들이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 것을 베껴다 썼다고 하는데 과학의 문명으로 세 나라의 사서 기록들을 역 추적한 결과 중국사서의 정확도는 65-75% 일본은 70%, 삼국사기는 80-90%의 확률로 우리나라의 실측 정확도가 제일 높게 나왔다.


단군시대는 이미 학자들 간에 청동기 시대로 인정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기록이 미흡하여 그 역사의 인정을 극복함에는 한계가 있다. 옛 기록이 별로 없지만 우리는 고인돌을 통해서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와 역사를 인용한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나 고인돌에 대해서 알고 있고 가치에 대해서 잘 알고는 있는가? 세계에 산재한 고인돌 중에 40%가 우리나라에 있다. 고인돌의 모양이나 새겨진 기록과 그 시대에 만든 유적의 형태를 갖고 고대인이 상징한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역사의 시대를 밝히는 데 한층 가까이 접근 할 수 있을 것이다.


황해남도 보고서에 실린 함경남도 고인돌에는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아, 용자리의 천문도가 있다. 고구려 유물 중, 진파리 고분안의 고인돌에 새겨진 천문도는 28수의 별자리라고 하지만 북극성 근처의 별자리로 보인다. 평양, 고구려고분벽화의 별자리와 청동기 시대의 석관덮개의 별자리 등 천문도는 북극의 별자리와 같은 위치로 자연을 관찰해서 새긴 것이 확실하다. 이런 별자리는 남쪽에도 있다.


1871년 충북 충원군의 아득이 마을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1978년 수몰지역이 될 아득이마을 고인돌은 충북박물관에서 답사했었다. 석관의 덮개돌에 많은 구멍들이 있고, 그 돌 판에도 구멍이 많았는데 그것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별자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온 부장품 돌 판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바로 천문도였기 때문이다. 고인돌덮개나 상석에 새겨진 별자리들은 후대에 사람들이 새겨 넣을 수도 있으나 부장품으로 나온 돌 판은 그 당시의 것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기념비적인 유물인 것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난 별자리나 고인돌의 별자리 위치를 보면 항상 덮개의 구멍은 남동쪽을 지정한다. 고인돌 놓는 장소도 지형지물에 따라 뒤는 산이고 앞에는 내가 있는 좋은 자리를 선택했음도 알 수 있다. 또 여러 개의 고인돌이 모여 있는 곳은 고인돌 자체가 별자리 위치대로 안치 되었다. 땅에서 하늘을 찾았다. 그래서 땅도 알고 하늘도 알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로 모양을 잡았다. 고인돌이나 고구려고분벽화, 삼국지 동이전 등의 기록들을 보면 선조들은 하늘을 중시했다. 우리 선조가 중요시한 별자리로는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삼성이다.


선사시대의 자연바위에 새긴 성좌 판의 중앙에 있는 구멍을 북극성으로 볼 때 동서남북으로 7개의 별들이 있는 것은 북두칠성이 일주하는 모습이 아닐까싶다. 또한 동양의 28수 별자리로도 볼 수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던 그 시대의 문화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성좌의 구멍 방향은 9시 방향으로 남동쪽을 가리킨다.


긴 시간 동안의 관측기록은 천문학의 발전 과정은 물론, 자연현상의 관습과 지구의 기상변화, 태양계의 기록까지 알 수 있고 해와 달과 별을 관측한 일식현상은 후대의 다른 나라 연대와 비교하지 않아도 바른 역사의 기록임을 알 수 있다. 과학의 발달은 현재 달이 어떤 행성을 가렸다는 관측기록이 있으면 수만 년 정도의 과거기록이 진실인지의 여부와 측정한 지역이 어디인 것 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혜성의 관측기록은 과거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긴 기간동안 지구와 태양, 혜성의 변화를 통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도 알 수 있다. 태양의 밝기를 관측한 결과 태양도 변화하는 주기가 있으니 짧게는 11년 길게는 80년이지만 아주 길게는 수백 년마다 오는 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한 사람을 통해서 과학이 들어왔고 그것이 우리 과학의 시작이라고 했으나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선조들의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 이어 받은 게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하늘을 관찰하고 하늘의 지식을 생활에 사용 했을 것이며 자체적으로 발달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암각화나 유물, 유적을 통해 측정하고 최근 해석이 된 청원의 아득이 마을 고인돌에서 발굴된 돌판 천문도는 우리나라 천문과학의 기원과 독자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또한 많은 고인돌에 새겨져 있는 구멍들이 천문학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땅의 지형을 따르면서, 그 위에 새긴 구멍은 하늘의 방위를 반영했던 것이다.
2012-04-05 14: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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