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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17회 국민강좌]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 국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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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12-04-13 16:30:17  |  icon 조회: 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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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17회 국민강좌]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 국학원

[17회 국민강좌]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최광식 | 고려대학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직속부서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는 지난 2002년 2월부터 5년 계획으로 중국의 동북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문제 등을 연구하는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동북지방이란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으로 이 지역은 옛 고구려 땅인 만주벌판이다. 조상대대로 살아 온 땅을 지키지 못한 것도 가슴 아픈데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상고시대역사마저 빼앗길까, 정부와 학계, 언론과 국민들 모두가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의 중국 땅에 존재했던 모든 역사는 자기들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2001년 북한이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신청을 방해한 일도 그 때문이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먼저 지정되면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는 명분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서 보류해 놓은 중국은 치밀한 계획 하에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만들어 고구려유적지를 대거 정비하곤 오히려 고구려 고분군과 그 외의 많은 유적을 중국역사 속에 넣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을 해 놓은 실정이다.


80년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은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인정했다. 그런 중국이 세계의 지탄을 받는 역사왜곡을 하면서까지 왜 동북공정을 추진하는가? 세계의 정세변화로 동구권이 변했다. 소비에트가 해체되면서 그 영향으로 국경지역에 살고 있는 티베트와 위그루, 몽골, 운남, 베트남 등 소수민족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중국은 고대의 민족과 문화역사를 연구하며 준비해 오고 있었다. 1992년 우리나라와의 수교 후, 꿈을 찾아 내한하는 조선족과 백두산으로, 만주로 ‘아! 고구려’를 찾는 우리의 내왕이 빈번해졌다. 거기다가 북한탈북자문제와 우리나라의 조선족 법적지위권 거론에 중국은 중국국적의 조선족의 정체성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남북통일 후를 대비하여 조선족의 정체성과 간도영유권을 확고히 하려고 고구려역사를 중국사속에 편입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들이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보는 이유가 우리에겐 너무나 황당하다.
그들은 고구려의 종족은 한족의 일부로 지방정권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가 고이(高夷), 고양씨 후손의 고씨로 고구려멸망 후의 고구려유민은 한족에 융화되었고 고려는 왕씨로 고구려인과는 다른 신라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역대왕조와 신속관계를 유지한 점, 조공과 책봉이란 제도,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을 내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이국은 산동지방으로 시대차가 1000년이 넘고 고양씨는 전설에 나오는 이름이다.


중국의 역사서를 보면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고구려가 예맥족으로 우리 민족이 확실하고 동이족과 묘족은 우리와 같은 뿌리라는 기록이 있다. 몽골족은 조금 멀지만 한족보다는 우리와 가깝고 일본과 만주족은 더 가깝다. 한 뿌리의 같은 조상을 둔 민족들이다. 조공과 책봉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이지 신속이 아니었다는 확증은 이미 증명되었다. 우리의 제천행사도 우리가 중국의 제후국이 아닌 황제 국임을 증명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예, 마한의 祭天大會에 대한 기록이 있다. 북쪽의 부여와 고구려, 예와 남쪽의 마한도 제천대회를 하였다는 것은 남과 북이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고 오직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독자적인 정치체제임을 중국인이 남긴 당시의 기록에서 확인해주고 있다. 수, 당의 내전은 천리장성이 증명한다. 지방정권이라면 어찌 장벽을 칠 수 있는가? 중국의 역사는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한족이, 북에는 북방민족이 역사를 영위하여 왔다. 중국인의 기본적 인식에는 북방민족을 막기 위한 방책이 만리장성인 것이다. 천리장성도 중앙정권과 지방정권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국가(고구려)와 국가(당나라) 사이의 경계를 위해 쌓은 것이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영락’과 ‘연가’라는 독자적인 연호로도 조공 국이 아닌 동방의 패자임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또한 중국의 56개의 민족 중 92%가 한족이다. 그 한족이 쌓은 천리장성이야말로 경계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한족이 통치한 그들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근세만 보아도 중국의 명나라는 한족이지만 청나라는 만주족이고 원나라는 몽고족이며 금나라는 여진족이다. 상고시대에 염제 후손인 묘족이나 치우 후손인 동이족은 오랑캐로 여기던 그들이다. 이제 그들은 오랑캐로 부르던 동이족과 묘족을 끌어들여 황제 후손 화하족과 함께 묶어 중화족이란 새로운 민족이름을 만들고 있다. 중국의 55개의 소수민족을 다 합해도 전 인구의 8%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수민족이 사는 영토는 전체 면적의 40%에 이른다. 이러한 현실로 미루어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목적은 단순히 역사왜곡문제가 아니라 영토와 정치문제이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유입하면 고구려, 발해, 단군시대와 고조선역사가 모두 중국으로 귀속됨은 물론 한강이북까지 속하니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보다도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중국의 역사서와 맞지 않는 우리의 책은 위서라고 하는 단정은 고치고 주체성 있는 역사관을 갖고 고구려사가 우리역사라는 근거를 명확하게 하기위해 상고사부터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논리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나라만의 역사를 초월하여 동북아전체를 보는 관점에서 동북아의 역사, 문화, 민족, 지리, 국경, 정치, 경제 등 다각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중국의 역사에 의존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옛 땅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를 바로 잡고 서로 협력하여 평화적인 지역경제공동체로 살기 위함이고 사실 그대로의 역사나 문화를 서로 보존하고 존중하자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자본이다. 우리가 바른 역사를 알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역사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의 에너지는 나올 수 없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사대주의사학자라고 비판을 받는 金富軾이지만 그가 올린 進三國史記表를 보면


“신라와 고구려 및 백제의 삼국이 정립하여 능히 예로서 중국과 교통한 때문에 범엽의 한서라든가 송기의 당서에 다 그 열전이 있지만 그 사서는 자기 국내에 관한 것을 상세히 하고, 외국에 관한 것은 간략히 하여 자세히 실리지 아니하였고…”


라고 하여 신라와 고구려 및 백제를 포함하여 삼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이들 삼국은 중국과 다른 외국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권 50권 중 신라본기는 12권, 고구려본기는 10권, 백제본기는 6권으로 편성하여 삼국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체계로 인식하여 서술하고 있다. 을지문덕, 을파소, 명림답부, 창조리, 연개소문 등 고구려 인물을 신라와 백제의 인물들과 함께 입전하고 있고 제후국에서 사용하는 世家라는 표현이 아니라 중국사서에서 사용하는 本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三國遺事}에는 기이 2권에 우리의 역사체계 속에 인식하고 있는 왕조의 조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조선, 위만조선, 마한, 2부, 72국, 낙랑국, 북대방, 남대방, 말갈 발해, 이서국, 오가야,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변한 백제, 진한 등이 기록되어 있어 삼국유사찬술 당시 이들 국가가 하나의 역사 속에 체계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동부여와 북부여, 고구려를 졸본부여로 인식하고, 백제의 경우 남부여라고 하여 부여계통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과 만주지역에 부여족이 세운 왕조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일본의 교과서왜곡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 일본의 왜곡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중에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된 것이지만 중국은 정부기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므로 한국의 역사는 2,000년 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근거를 확실히 파악하고 그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사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 UNESCO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한 쪽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분군이 보류된 이유가 보존상태 미비이므로 기술지원이나 시설지원을 통하여 관리상태를 호전시키고 민족의 문화유산을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데 힘을 같이 실어야 한다. ‘동북공정’이 단순한 학술적 프로젝트가 아니며 우리의 역사주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프로젝트이므로 정부는 공식적 견해를 밝혀야 한다.


중국은 수백 명의 연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우리는 고구려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와 고구려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가 겨우 십수 명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리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센터에서는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고조선, 발해, 고려 등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연구하여 성과를 일반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국제화와 정보화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동북공정’에 대해 참고할 만한 홈페이지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 한국고대사학회에 그동안의 학술적 논의를 중심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고구려사 연구센터가 설립되면 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홈페이지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한편 북한,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의 학자들과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조선 및 발해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결과물을 영어로 출판하는 국제적 활동을 추진하여 국제사회에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아울러 한국사에 대한 제도교육과 사회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한국사를 학교교육에서 필수로 하여 강화시키고, 박물관에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사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행하는 각종 자격고시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여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공무원과 지식인을 양성하여야 한다. 진정한 국제화와 세계화는 자기문화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여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2-04-13 16: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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