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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1회 국민강좌] 굿으로 보는 한국전통문화의 재인식 - 국학원
icon 당산대형
icon 2012-04-24 13:57:04  |  icon 조회: 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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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1회 국민강좌] 굿으로 보는 한국전통문화의 재인식 - 국학원

[31회 국민강좌] 굿으로 보는 한국전통문화의 재인식
임재해 | 안동대학교 교수



종교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이 질문은 프랑스의 논술고사 시험에 출제되었던 논제였다. 사람들의 삶이 행복의 연속이라면 종교가 필요 없겠지만 인간은 의식주해결만으로는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한 때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연방국은 종교를 없앴다. 러시아종교회건물은 유치원이나 창고로 쓰였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해제되고 소련이 해체되자 그동안 억눌렸던 신앙은 봇물처럼 터졌다.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일컫는 단일체제인 북한에도 불교 사찰이 있고 기독교의 교회가 있다.

이를 두고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사유하는 능력이 있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 새도 절묘하게 집짓는 사고능력이 있고 뱀도 나름대로 삶을 사는 지혜를 갖고 있다. 이렇듯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믿고 의지하는 신이 있는가? 의 신앙생활과 후계자의 숫자에 관계치 않고 인위적으로 성을 즐기는 성생활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은 모든 생명의 본성이니 인간의 특징은 신앙생활로 구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5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고유의 신앙생활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파생되었는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느 날 한 외국인이 당신 나라의 종교(국교)는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특별하게 대답할 종교문화가 없어 우물쭈물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한 집 건너 십자가가 있다고 할 정도로 교회가 많고 사찰도 많다. 또한 다양한 종교가 많아 종교천국이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많은 종교시설이 이웃에 있어도 그 신앙이 우리의 종교문화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 종교원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고유의 종교가 있었다. 우리민족의 삶 속에 뿌리박힌 전통 종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외부에서 유입된 타종교와 희석되거나 가라앉으면서 면면히 이어져 온 굿문화이다. 보통, 사람들은 굿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무당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민족, 한국인이라면 우리나라 말을 하고 김치를 먹을 줄 알고 굿을 제대로 알아야 한국인다운 한국인이라 할 수 있다. 굿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종교문화이기 때문이다.

굿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유교문화에 매몰된 조선시대에는 굿을 좌도로 간주하여 억압했고 구한말의 선교사들이나 일제 식민지 지배자들 역시 굿을 마귀의 행위로 간주하고 타파할 미신으로 삼았다. 이는 굿을 모르고 하는 행위로 굿은 엄연한 우리의 종교인 것이다.

종교란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에 따라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서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하는 정신문화이듯 굿(무교)도 이와 다를 바 하나도 없다. 기독교가 하나님(God)을 믿는 신자와 성경이 있고 불교가 부처님을 믿는 교도와 불경이 있듯이 무교(굿)도 무조신(巫祖神)을 믿는 무교도와 무경(巫經)이란 무속의 양식을 다 갖추고 있다. 불교의 불공, 천주교의 미사, 개신교의 예배, 유교의 제사와 같은 맥락이 무교의 굿이다.

이처럼 다양한 무조신이 있고 무경, 무가(巫歌)와 사제장인 무당의 굿판이 있는 굿은 종교로서 일정한 체계를 두루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 양식이다. 다만 그 내용이 독특할 따름이다. 어느 나라 종교든 민족 고유의 토착종교는 우리 굿처럼 민족마다 독자성을 지닌다. 인도의 힌두교나 중국의 도교, 일본의 신도 등이 다 그러하다. 모든 종교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는 초월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에도 우리 굿을 미신이라고 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것을 비하하는 큰 잘못이다. 굿이 무당만이 담당하는 것이라는 오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굿에 꼭 무당이 참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 굿에는 무당이 참여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풍물 굿에서는 풍물 잡이가 주체가 된다. 굿문화의 복합성 속에서는 우리 모두가 무당이 될 수 있고 무당이기도 하다.

굿에서 무당들이 점을 치거나 살풀이, 부적 등 주술 양식은 잘 드러나지만 굿에서 창조되는 각종 형상들의 예술성이나 굿이 겨냥하고 있는 목적의 변혁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굿을 하면서 신명풀이를 하는 춤과 노래는 신기 있는 무당굿의 필수 요소이다. 별신굿에서의 탈춤처럼 가무오신(歌舞娛神)의 제의 방식에서 춤과 노래만 주목하면 예술성이 돋보인다.

굿의 본질은 자유로운 삶에 장애가 되는 몸의 질병이나 사회적 재앙들을 물리치는 구실에 있다. 지신을 눌리기도 하고 잡귀를 추방하기도 하며 조상신을 달래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재앙을 일으키는 체제모순이나 지배 세력들의 횡포에 맞서지 못하는 서민들이 굿판에서 극적인 폭로와 풍자적 공격을 통해 그 마음의 애환을 해결한다. 이런 주술적 퇴치와 극적 싸움은 병 굿에서부터 별신굿의 탈춤에 이르기까지 두루 나타나는데 이는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일종의 변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굿이 미신이나 주술로 취급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역사가 잘못되면 현재의 역사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인문과학적 인식에 의하면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서 현재의 역사가 불건강하면 미래의 역사도 불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굿에서 개인의 질병이나 집안의 불운을 인식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무당들은 현실 문제를 가족사의 과거에서 찾는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불행을 포착하여 해소함으로써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문과학적 논리로 보면 개연성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사회과학적 시각에서도 굿은 일정한 과학적 틀을 갖추고 있다. 굿은 개인굿이나 집안굿의 재수굿 외에도 농사시초에 하는 호미씨질굿, 풋굿과 농사철에 두레굿, 정월대보름의 지신밟기 등의 마을굿, 고을굿, 나라굿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굿은 일정한 사회적 행정 조직에 기초를 두고 체계화되어 마을이나 고을 또는 나라와 민족의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한다. 하회별신굿이나 강릉단오굿, 자인단오굿의 탈춤은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 또는 남녀간의 성차별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어 공동체굿의 관심 자체가 사회과학적이다.

자연과학성은 병굿을 통해서 입증된다. 의사가 병을 치료해서 낫는 것은 과학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모든 환자가 의사의 치료로 낫는 것은 아니다. 무당이 병굿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병에 대한 무당의 진단과 처방은 의사와는 상당히 다르게 독자적인 진단, 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 점을 치거나 굿을 하는 과정에서 병의 원인이 된 과거사의 문제를 들추어내고 그것에 대한 속죄와 반성을 통해 질병을 치유한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와의 대화에서 정신적 억압요인을 찾아내어 해방시킴으로써 치료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또한 이 치유력은 ‘플래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연관된다. 질병과 상관없는 약을 주어도 환자가 약을 먹고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병이 낫는 것처럼 굿의 효험을 믿는 사람에게는 굿으로 병이 치유된다. 이 치유력 가운데 하나가 앤돌핀(endorphins)의 생성이다. 굿을 믿는 절대적인 마음은 무아지경에 이르고 이 때 환자는 엔돌핀호르몬이 증가한다. 그러므로 굿의 치유력은 결코 허무맹랑한 주술이 아니라 일정한 자연과학적 개연성까지 갖추고 있다.

공간영역의 포괄성만 세계로 인식하지만 굿에서는 세상이 형성되는 태초의 천지개벽 상황에서부터 현실문제의 해결은 물론 앞으로 생이 다하는 미래까지 확장된 세계를 포착하고 있다. 이승과 저승은 물론 지하세계와 수중세계까지 설정한다. 물고기는 물 속이 자기들의 세계인 것처럼, 두더지는 땅 속이 자기들의 세계이고 새들은 하늘이 자기들의 세계이다. 신령들의 세계는 또 다른 차원의 저승세계이다. 인간중심의 지상세계가 아니라 다 차원적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 굿의 세계관이다. 이 세상은 과학만으로 살 수 없고 종교만으로도 살 수 없다. 종교 없는 과학은 이치는 있지만 실천력이 없고 과학 없는 종교는 사람을 맹목적이게 하는 장님으로 만든다고 했듯 종교와 과학은 서로 보완해서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2012-04-24 13: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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