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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5회 국민강좌] 사라진 고조선 역사 - 국학원
icon 당산대형
icon 2012-04-26 11:53:39  |  icon 조회: 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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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5회 국민강좌] 사라진 고조선 역사 - 국학원

[35회 국민강좌] 사라진 고조선 역사
성삼제 |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



조선 개국 이래 대한제국이 끝나기까지 500여 년 동안 조선과 대한제국의 왕과 황제, 문무관료, 사대부들은 물론 시골에 사는 초동에 이르기까지 단군조선을 포함한 고조선 역사에 대한 인식은 별 차이 없이 실제의 역사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는 단군은 신화로서 전설속의 인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고조선 역사에 대해 학자들과 일반인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청동기유물에 대한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말살정책으로 ‘국가는 청동기시대 이후에 성립 된다.’라는 논리를 조선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한반도에 청동기 문명이 유입된 것은 한사군 설치 전후라는 논리를 폈다. 이 역사학의 최신이론을 받아들인 조선학생들은 돌로 농사짓고 사냥하던 석기시대인, 기원전 24세기에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역사 기록을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일본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역사인식을 ‘청동기’ 하나로 단번에 ‘허구의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고조선을 역사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허구 또는 신화’라고 가르쳤다. 그 기준은 청동기 시대에 국가가 형성되는데 기원전 2333년은 석기시대로 국가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학문’의 이름으로 휘두른 칼에 잘려나간 고조선 역사의 후유증은 해방 60년이 되도록 아직도 고스란히 교육현장에 남아있다.

4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한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버금 갈 정도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박물관이다. 그 박물관 내, 고고관전시실 고고학연표에는 고고학적으로 완전하게 입증되지 않은 중국의 고대국가인 상(商)과 하(夏)나라는 표기하면서도 자국의 고조선은 빠져있었다.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은 독립전시실까지 두면서도 고조선은 독립된 전시실이 없이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전시실에 함께 전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 역사 인식도 ‘청동기에 국가가 성립하는데 기원전 2333년은 석기시대이므로 이를 고고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의 식민사학과 맥을 같이 한다.

세계의 유명한 박물관을 다녀보아도 자국의 최초 국가 형성을 청동기시대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곳은 없다. 대영박물관은 물론이고, 이집트나 인도의 박물관에도 고대 이집트왕국이나 인도왕국이 청동기시대가 열리면서 왕국이 세워졌다고 하지 않는다. 중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에도 이런 설명은 없다. 심지어 ‘국가는 청동기시대 이후에 성립 된다.’라는 논리를 우리에게 주입시킨 일본도 고대 역사를 청동기시대와 국가의 형성을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지 않다.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청동기시대가 전개됨으로써 고대 일본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기술은 없다. 검색 중 청동기시대에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논문 하나를 찾았다. 1960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9월호에 실린 시카코대학교 인류학과 로버트 M. 아담스 교수가 쓴 ‘도시의 기원’이란 논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청동기 문명의 도입과 고대 국가의 발생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우리나라 대학교수들과 교사들은 실증이 없다는 학문적 신념으로 고조선 역사를 역사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유명한 박물관에 가서 감명을 받는다고 한다. 그곳엔 세계적인 명화가 다 모여 있고 각 나라의 유물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대 석기시대의 석제품과 흙으로 만든 토기제품에서부터 신석기문화, 청동기문화 철기시대로 맥을 쭉 이어오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우리나라박물관에서 더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청동기 유물들이 무수히 많은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청동기
세계에서 가장 청동기 유물이 많이 발굴되는 지역이 우리나라다. 특히 숭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여러 꼭지잔줄무늬거울은 직경 21센티미터 안에 0.3밀리미터 간격으로 1만 3천개가 넘는 가는 선을 넣은 정교한 제품이다. 요즘의 발달된 문명으로도 그만큼 정교한 도형은 힘들다고 한다. 만일 이 유물이 영국의 시골지역에서 발굴되었다면 아마도 대영박물관의 가장 중심부인 메일 홀에 전시했을 것이다. 이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청동제품은 오직 잘려나간 청동검 조각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동검이 너무 흔해서 국립박물관은 물론 웬만한 대학박물관에도 청동으로 만든 검이 다 진열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청동검을 과학적인 기기를 사용하여 연대 측정을 했다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숯 덩어리 하나로도 유적의 연대를 추정해 내는 시대이다. 청동검이 언제 제작되었는지 과학적으로 연대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고조선 역사의 많은 부분이 밝혀질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연대측정을 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나라 청동기는 10세기 전후만 강조하는가?

고인돌
고조선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에 청동기 문명이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입증해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 고인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 세계에 약 7만 기의 고인돌 중 3만개 이상이 한반도에 있다고 한다. 본인이 확인한 바도 전북 고창 일대에 18000에서 2만개가 있고 평양 대동강변에 17000개의 고인돌이 있다. 세계의 절반이 우리나라에 있는 셈이다. 아시아와 유렵에 걸쳐있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고인돌이 어느 시대의 유물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많은 차이가 난다.

고인돌에 관해서 가장 많은 연구 결과물을 내 놓은 연구자가 변광현 교수이다. 그는 유럽에 있는 고인돌의 원형이 한반도라고 한다. 한반도 황주와 사리원 일대에서 고인돌이 처음 시작하였으며 그 후 요동지방과 남해안 지방으로 퍼지면서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해안지방을 거쳐 급속도로 전 세계에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북한 학자들은 고인돌이 기원전 4000년 후반에 시작되어 기원전 2000년 전반기까지 성행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북한의 연구결과를 우리 학계에서는 배척하고 있는데 반해 유럽의 연구 결과는 북한연구 결과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기원전 4000년 이상 된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다.

변광현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가 적지 않다. 스톤헨지 주변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고인돌과 유사한 고인돌들이 있다. 최근 영국의 학자들은 스톤헨지 주변 묘지에서 발굴된 유골의 주인공은 아시아 계열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청동기 문화를 수반하고 영국으로 왔다는 것이다. 초기 청동기 문명을 연구했던 유럽학자들의 청동기 전파이론은 참으로 흥미롭다.

핀란드 학자 아스페링(1842-1915)은 청동기 문명이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류의 알타이산 일대에서 발생하여 훈족계 이주민에 의해 우랄지방으로 전파되고, 우랄지방에 전파된 청동기가 다시 북유럽의 핀란드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아스페링의 학설이 주목을 끄는 것은 핀란드가 고아시아인종으로써 자신들의 뿌리 찾기 일환으로 청동기 문명을 연구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핀란드는 바로 옆에 있는 나라, 스웨덴과 달리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언어의 어순이 비슷하고 핸드폰의 확산이 그러하고 빨리 빨리 문화도 비슷하고 육개장을 잘 만들고 인종학적으로 같다.

덴마크 학자 와르셰(1821-1885)는 청동기가 중국을 비롯한 극동지역에서 나타나 알타이와 우랄산맥을 거쳐 북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와르셰가 말하는 중국이 고조선의 영토일 가능성이 크다.

명도전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이 해산된 후에도 본인은 고조선 탐색을 계속했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라고 되어 있다. 고조선 영토에서 무수히 발굴되는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고조선의 몰락은 한나라의 침공 때문으로 고조선 영토에서 발굴되는 화폐는 대부분 한나라 화폐라고 하면 그나마 설명이 될 터인데 한나라 이전의 연나라의 화폐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명도전을 오늘날의 달러처럼 썼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이 또한 믿을 수 없다. 적대적인 관계에서 고조선에서 연나라화폐가 대량 통용되었다는 것은 더욱 믿기지 않는다. 또한 명도전의 출토지역이 고조선의 영토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명도전에 대해 조사하다가 논문자료를 찾았다. 서울시립대학교 박선미 교수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고조선의 영역뿐만 아니라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일 개연성이 있다는 시사를 받았다. 그의 논문에 러시아 학자 부찐이 그린 지도가 실렸다. 부찐이 그린 ‘고조선의 영역’이 명도전 유적분포지역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조선을 표시한 지도는 5종류로 조선총독부가 그린 평안도 중심의 작은 고조선과 요동중심의 윤내현의 지도, 고등학교 교과서의 지도, 북한의 리지린이 그린 지도, 러시아 부찐이 그린 지도이다. 부찐의 지도가 의미 있는 것은 우리역사와 관련이 없는 객관성 때문이다.

중국 흑룡강성에서 발행하는 고고학계 학술지 <북방문물> 2004년 제4기 논문집에는 장보촨 교수가 쓴 ‘명도폐연구속설’이 실려 있다. 명도전에는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 3종류가 있고 그중에 첨수도와 원절식도폐가 고조선 화폐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그는 2000년에 작고했다.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고조선 연구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을 폭발성을 가지고 있다.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면 명도전에 쓰여 있는 문자들이 고조선 문자라는 이야기가 된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종래 그림인줄 알았던 고대 바위그림에서 문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환단고기
공무원이 부정혐의에 대한 감찰을 하거나 조사할 때 이를 증명하는 방법은 부정혐의를 받는 사람이 억울하다는 관점에서 철저하게 조사해 보고 한편, 부정을 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한 후 이를 비교해 판단한다.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조사하면 할수록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근거가 되었다.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이 기록된 것은 지금까지 나온 자료 중에 《환단고기》밖에 없다. 1923년 중국 낙양에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묘비가 발굴되었다. 이 묘비에 쓰인 남생과 그 증조부까지의 관직과 이름이 《환단고기》의 기록과 같고 오히려 책에는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묘비가 발굴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기록이다.

고인돌과 청동검이 고조선 역사를 밝혀낼 중요한 유물이라면 《환단고기》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는 상고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문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기간 특정 종교에 의해 전승되었다면 《환단고기》에 많은 가필과 윤색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원형도 그만큼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환단고기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검증되지 아니한 몇 가지 근거만으로 ‘몹쓸 책’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학 연구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삼국유사》임신본 변조 여부는 크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임신본 원본을 변조한 조선총독부도 나쁘지만 해방 후 6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조선총독부를 옹호하는 글이 시중 서점에 널려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일본이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이 백주에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는 우리가 주었다고 본다. 앞으로의 역사왜곡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왜곡되고 말살된 고조선 역사를 회복시켜야 한다. 조선총독부가 고조선 역사를 신화로 만들었던 잣대, ‘청동기=고대 국가 성립’이라는 논리가 도리어 고조선 역사를 되살려 놓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앞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한 세대 두 세대 이상 평화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하나의 계기는 한국, 일본,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이다. 이 분쟁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심각한 분쟁으로 커지겠지만 이 갈등을 잘 관리하고 극복해 나간다면 동북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이 역사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 비전을 고조선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홍익인간과 제세이화는 그러한 이념적 토대를 제공해 주고도 넘쳐 난다. 상처받은 고조선을 다시 우리 곁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2012-04-26 11: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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