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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7회 국민강좌] 러시아 연해주지역 한인민족운동 - 국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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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12-04-27 11:57:44  |  icon 조회: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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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37회 국민강좌] 러시아 연해주지역 한인민족운동 - 국학원

[37회 국민강좌] 러시아 연해주지역 한인민족운동
박환 | 수원대 사학과 교수



1. 러시아지역 항일민족운동의 역사적 성격

러시아 극동지역은 한반도와 두만강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한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두만강 건너 연해주 곳곳에는 발해의 유적지들이 널리 퍼져 있으며, 1860년대 이후 이곳에 거주하였던 한인들의 숨결이 남아 있다. 또한 구한말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항일투쟁의 열기와 유적지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동포들이 다시 돌아와 재정착하고 있으며, 구소련의 몰락 이후에는 많은 한국업체들이 진출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1910년대 국내외를 걸쳐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의 민족운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연해주에서는 1905년부터 1908년까지 두만강 대안인 연추(현재: 크라스키노)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운동을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 대표적인 의병장으로서는 이범윤, 최재형, 홍범도, 안중근 등을 들 수 있다. 재러동포들은 이들 의병장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위협을 가하였다. 특히, 의병장의 1인인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이등박문을 포살함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의 활성화 및 국내외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하였다.

둘째,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지역을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민학교 등 민족학교를 설치하여 동포 자제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신문 등을 간행하여 국내외 소식전달과 항일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적인 신문으로는 『해조신문』과 『대동공보』 등을 들 수 있다. 『해조신문』의 경우 국내에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을 주필로 초빙하였다.

셋째,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될 기미가 있자 연해주 한인들은 유인석을 중심으로 13도의군을 조직하여, 국내로 진공하여 일제를 몰아내고자 하였다. 아울러 성명회 선언서를 발표하여 일제의 조선강점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선포하여 한국의 독립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넷째, 1911년 연해주 한인들은 한인자치기구로서 권업회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자치활동과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아울러 신채호, 이상설, 장도빈 등을 주필로 하는 권업신문도 간행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또한 이동휘 등을 중심으로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 일제에 대항하여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재러한인들의 이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섯째, 러시아지역의 한인들은 1919년 2월 25일 국내외에서 최초로 대한국민의회라는 정부를 조직하였다. 대한국민의회에서는 문창범, 이동휘, 최재형, 김철훈 등이 중심인물로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만주와 국내 등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한편 상해임시정부와 도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민족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여섯째, 대한국민의회는 1919년 3월 17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블라디보스톡, 크라스키노 등 여러 지역에서 3?1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에 있는 한인들은 한민학교를 중심으로 활발히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곱째, 3?1운동 이후 이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노인동맹단 등 다양한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여 대일투쟁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 중 노인단 소속의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일제를 경악케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여덟째, 3?1운동이후 재러동포들의 활발한 대일투쟁은 1920년 4월 일제의 한인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으로 일시 정체 상태를 보이게 되었다. 즉 일본군은 1920년 4월 4-5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등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습격하여 다수의 한인을 살상하는 한편 가옥 등을 파괴하였다. 신한촌의 경우 300여명을 사살했다고 하며, 우수리스크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인 최재형을 사살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1905년부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종결되는 시기까지 동포들의 인적 물적 지원 하에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기여하여 민족운동발전에 공헌하였다. 그런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종결된 이후 연해주 지역에서는 소련의 대한인정책의 변화로 인하여 더 이상 독립운동이 전개될 수 없었으며, 1937년에는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18만 동포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2. 러시아 지역 항일유적지
1. 블라디보스톡
독립문터,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이동휘집터, 개척리, 블라디보스톡 역, 일본총영사관, 고려사범대학
2. 이르크츠크
고려공산당 제1차대회 장소 및 그 내부
3. 하바로브스크
아무르강, 한인사회당 창당 장소, 조명희가 살던 집(콤소몰거리 89번지)
4. 우수리스크
우수리스크역, 우수리스크 고려사범대학, 4월참변 추도비, 수이푼 강, 우수리스크역,
이상설선생 유허비
6. 핫산지구
안중근 단지동맹비

3. 항일독립운동 관련 자료
1. 홍범도가 직접 작성한 편지
ㄱ. 홍범도의 편지(1909년 11월 13일)
뵈온지 오래되어 아쉽습니다. 삼가 살피지 못하여 이처럼 추운 날씨에 여러분 기체만강하온지 궁금합니다. 저는 예전과 다름없으니 다행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일전에 오셨을 때에도 말씀하셨거니와 이곳에 당하여 우리 겨레도 시급하옵고, 군대의 물건을 사는 것도 매우 시급합니다. 겸하여 타처 각사에서는 조속히 필납하였는데 귀처에서는 어찌하여 여름부터 다른 곳보다 먼저된다고 하였으면서도 차일피일하니 어찌된 일이 온지 알 수 없습니다. 귀처로 말미암아 나란일은 말할 것도 없고 내왕인의 신발값도 되지 못할 모양이니이번에 강00편으로 의연금을 조속히 송부하여 주시며, 만약 금번에 보내주지 못할 양이면 귀처 公員을 허커로 오게 하옵소서. 오직 급하와 불비례.

1909년 11월 13일 홍범도(인)
ㄴ. 홍범도의 편지(1910년 2월 11일)(대리로 쓴 것으로 추정)
전후 한달이 지났으나 우울함이 날로 심합니다.
삼가 살피옵건데 요즈음 몸이 평안하신지 우러러 마음속 깊이 빕니다.
저는 아직은 옛날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므로 우러러 아래오니 얼마가 되었던지 영수증에 기록된 원조금을 내려보내 주시길 천만 바라옵니다.
경술 2월 11일 홍범도(인)

ㄷ. 홍범도의 편지(1910년 3월 28일)
맹춘에 아룁니다.
여러분 기체만강하옵신지 우러러 문안들입니다. 저는 예전과 다름없사오니 다행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귀처 의연금 모집하는 것을 얻어 들은 즉 군대물건을 구입할 때에 되겠다 하옵기에 이날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더니, 어제 천리도에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오연발 한 정에 30원식 정가한다고 하니, 귀처의 여러분께서 사람을 하건돌 첨지 崔致彦집으로 보내시어, 오연발을 사서 보내주시기 바라며, 만약 이때를 당하여 허락하지 않으면 귀처에서 얼마간 모집한 것은 의연금이 아니오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금일로 거둔 돈을 가지고 하건돌로 왕림하여 총을 살 것이오며, 돈이 있어도 총을 사기 극히 어려운 처지이오니 헤아려 주십시오. 저는 바빠 불비례.
경술 3월 28일 생 홍범도(인)

2. 이범윤이 쓴 편지
이범윤은 간도관리사로 파견되어 간도지역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종사하는 한편 러일전쟁 발발시에는 러시아편에 서서 일본측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하여 의병을 조직하고 활동한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국내진공과 관련된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ㄱ. 이범윤이 1910년 4월 초 8일에 쓴 편지
하물며 살피옵건데 건강하시온지 문안드리오며, 저는 예전과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필시 염려해주신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귀편에서 틈(허물)이 있은 것은 최근에 편지 내왕이 있어 대강 짐작할 바이어니나와 누가 옳고 그른 것은 일삼아 증습할 때가 아직 못된 것은 座下께서도 통촉하실 바이기로 더 번설치 아니하고, 다만 긴급한 사정으로 신탁하는 바인데, 5월 20일 내로 월강시킬 것을 실상 피치못할 모양입니다. 이전에 서강과 서태령에 몰래 서로 약속하기를 적지에 사람을 투입하는 것을 주선하였더니, 방금 일본과 청국사이에 흔단으로 지체할 수 없는 중, 러시아 관헌과 청나라 관헌이 신신이 부탁하기를 엇지하던지 급히 渡江케 하라. 만일 도강하면 우리도 그저 방관만 할 것이 아니오니, 속히 도강하라하고 또 우리의 형편으로도 시각이 급한 사유가 있사오니, 아무쪼록 좌하께서 이 시기를 일치말게 극력 주선하되 일절 번설치 말고 주선 하옵소서. 만일 금번에 위기되오면, 장래 여망도 끝날 것이니 널리 생각하시와 낭패없이 조처하심을 고대하나이다.
경술 4월 초 8일 생 리범윤 상(인)

3. 한글본 성명회 취지서
ㄱ. 성명회 취지서(융희 4년, 1910년 8월)
슬프다. 해외에 거류하는 우리동포여. 동포는 한번 머리를 들어 우리 조국 한반도를 돌아보며 한번 뇌를 기울여 우리동포 조선족을 생각할 지어다. 저 화려한 삼천리 강산은 우리 시조 단군의 세전물이 아니며 신성한 2첨만 민족은 우리시조 단군의 혈손이 아닌가. 우리의 사랑하는 바도 이 한반도 이 조선족이며 우리의 공격하는 바도 이 한반도 이 조선족이라. 낫고자하여도 가히 낫즐수 없으며 떠나고자 하여도 가히 떠날 수 없는지라. 이럼으로 우리는 차라리 2천만의 두뇌를 능히 베어버릴지언정 우리 조국은 잃어버리지 못할지며, 차라리 우리의 생명은 능히 바칠지언정 타족의 노예는 되지 못할지로다. 그러한대 저 한악무도한 왜적이 만근 수십년이래로 저의의 일시 강력을 믿고 우리의 황실을 핍박하며, 우리의 정부를 위협하여 1차에 외교를 늑탈하고 재차에 내정을 간섭하여 우리의 독립주권을 침해하며, 우리의 부모 형제를 학살하며 우리의 가옥토지를 강탈하여 우리로 더불어 하늘을 같이 하지 못할 원수를 지음은 우리동포 가운데 누가 마음이 아프며, 이가 떨리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우리가 오늘까지 인묵(忍?)한 태도를 가짐은 일면으로 우리의 실력을 양성하며, 일면으로 저의의 회개를 희망함이오, 결코 저의의 관천영지(貫天盈地)한 죄악을 용서함이 아니어늘 저 정의를 알지 못하며, 인도를 멸시하는 왜적은 그 악을 더욱 베풀어 소위 합방문제를 또 창도하여 우리의 국기까지 꺽고자 하며, 우리의 역사까지 불노코자 하며, 우리의 민적(民籍)으로 하여금 저의의 노안(奴案)으로 삼고자 하는도다.

오호통재라. 동포여 동포여 오늘도 가히 참을가 이 문제도 가히 용서할가 이 문제는 우리 대동역사의 최종 문제가 아닌가. 우리 대한동포의 무장(武裝)을 입을 날도 오늘이며, 피를 뿌릴 날도 오늘이도다.

그러나 일은 차서가 있으며, 때는 선후가 있을 뿐 아니라 오늘 20세기 국민의 행동은 세계 열국의 여론에 의지치 아니함이 불가한지라. 고로 먼저 열국 가운데 우리 나라와 일직 교호(交好)의 동맹을 맺은 나라에 대하여 왜적의 불법 무도한 사실과 및 합방 반대의 의견을 문자로 통하여 그 오신 오해를 풀며 또 열국의 광명정대한 여론을 구하여 왜적의 죄를 성토함이 우리동포의 제1차 급행할 일이라 이를지도다. 사세가 이와 같음으로 분이 갖고 뜻이 같은 동포의 의론이 한때에 발하여 지난 음력 7월 13일 해삼위 한인 거류지내에 다수한 동포가 회집하여 성명회를 조직하고 러시아 청국 각지에 재류하는 여러동포에게 공포하오니 조국을 사랑하며 동족을 사랑하는 우리동포여. 급히 힘을 모으며, 소리를 같이 하시오. 동포에게 바라는 바는 다만 뜻을 같이 하며, 소리를 같이할 뿐이요. 동포의 없는 흠을 구함이 아니오니 어서 빨리 찬성하여 우리의 목적을 달하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씻게 하소서. 아 주저하지 말지어다. 우리 사랑하는 동포여, 아 지체하지 말지어다. 우리 사랑하는 동포여

찬성하는 동포의 주의할 일
1. 해삼위 이외에 재류하는 동포에게는 의연금을 청하지 아니함.
1. 찬성하시는 이는 본회에서 보낸 편지에 성명을 쓰고 그 아래 착함이나 혹 도장을 누름
1. 성명과 착함은 각국으로 가는 장서에 후록할 것이니 정확하고 분명하게 하시오.
1. 일을 다 진행한 후에는 여러 동포에게 통지하기 위하여 장서의 본문과 및 기타 사실을 신문으로 공포함

隆熙 四年 八月 日
류인석 리범윤 김학만
차석보 김좌두 김치보

<참고문헌>
김학준, ?러시아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을 아는 사전?,한길사, 1992
박환, ?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사?, 탐구당, 1995
박환, ?재소한인민족운동사?, 국학자료원, 1998
박환, ?박환의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러시아기행? 1.2, 국학자료원, 2001
박환, 허승철, ?시베리아의 여명을 뚫고?, 지식마당, 2003.
박환, ?대륙으로 간 혁명가들?, 국학자료원, 2004.

<홈페이지>
1. 러시아지역
동북아평화연대
고려인돕기운동

2. 관련 홈페이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2012-04-27 11:57:44
61.32.11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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