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고 진실하고 솔직하게 일하는 사람 되어야”
“참되고 진실하고 솔직하게 일하는 사람 되어야”
  • 산청/정도정기자
  • 승인 2015.12.27 18:19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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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용 산청군 신등면장

 
산청군 신등면은 신라시대 적촌·궐성현으로 고려 성종 14년 단계현으로 개칭하고 조선세종 14년 단계현과 강성현을 합해 단성현으로 개칭된 이후 1914년 3월 1일에 이르러 단성현 법물면이 현재 신등면으로 개칭되었으며 산청군의 동남부에 위치해 9개의 법정리와 56.9㎢의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1195가구로 220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40.5%인 893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세대일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노인세대가 42가구 45명에 해당하고 독거노인 세대가 1368명에 해당할 만큼 독거노인의 비율이 많은 지역이다. 주요 농특산물로는 딸기가 97세대로 연간 100억원의 소득을 올릴만큼 주종을 이루고 청정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아피오스를 비롯한 친환경 농산물이 많이 생산되며 단계 한옥단지와 이충무공 유적지, 장승배기생태공원, 물방아재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으며 예부터 많은 선현도학자가 배출된 고향 신등면에서 올 연말 퇴직을 앞두고 공직 마무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박대용 신등면장을 만나 그간의 공직생활을 돌아본다.


다음은 박대용 신등면장과의 일문일답.

-공무원 임용시기는
▲1977년 1월 임용해 오는 31일자로 퇴임하므로 만 39년을 근무했다.

-성장환경을 말한다면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 독자로 자랐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후 학업을 접고 친지가 경영하는 사업체로 취직해 생활고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모친께서 전답을 팔아서 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하셨다.
당시 성적이 좋았었고 가정형편이 원만한 동기생들은 진주 소재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반면 나로서는 가정형편상 진주로의 유학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라 고향 소재 신등농업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됐다.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졸업후 1년간은 집안의 농사일을 도우며 보냈다.

-홀 어머니를 모시고 계시나
▲나는 진주에서 출퇴근을 하고 모친은 단계에 혼자 계신다. 올해 연세가 81세인데도 건강이 허락하니까 도시생활을 싫어 하신다. 그래서 시간이 되는 대로 가서 찾아 뵙는다.
홀로 나를 키우셨는데 더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마음 한켠에 늘 남아 있다. 퇴임 후 당분간은 모친과의 시간을 자주 가질 예정이다.

-가정형편이 그렇게 힘들었나
▲그렇다.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할 정도였다.

-공무원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세살에 선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홀어머니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1년동안을 집안일을 도우며 지내다 보니 학창시절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사실을 아는 주변인들로부터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보라는 권유가 있어 1976년 5월경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일단은 생활고가 힘들다 보니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고 행정적인 업무가 나의 적성과 맞겠다는 판단을 했었다.
결국은 생활고의 해결을 통한 모친의 부양과 나의 적성이 맞아 떨어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한 것이 공무원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된 것이다.

▲ 박대용 신등면장과 직원들이 업무회의를 하고 있다.
-임용후 39년간 공직생활을 회고한다면
▲최초 신안면에 발령을 받고 8개월 가량 근무한 후 고향인 신등면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다. 그후 전산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경남도로 전산교육을 가서 도내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군은 교육에서 1등을 하게 되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본청으로 인사발령을 선택할 수 있는 특전을 주었고 이에 따라 본청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청의 근무란 사실상의 인맥관계에 의해 평점이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러한 인맥관계가 없었던 나로서는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산업과 지역경제계에서 금서농공단지를 조성하는 상황에서 특별회계 담당으로 선배들로부터 업무를 많이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계기로 경리계를 거쳐 1995년경 6급으로 승진을 하게 됐고 고향인 신등면 재무담당으로 복귀해 당시 체납세액을 전부 회수하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공직생활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2003년까지는 한방약초축제를 실내체육관에서 간소하게 치렀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문화관광과에 근무할 당시 한방약초축제를 두 번(4회, 5회)개최했다. 당시는 예산이 부족해 몽골텐트 60여개를 설치하고 약초화분과 물고기 전시 등을 비롯해 서울의 기자단을 방문·홍보를 부탁했다.
일본·중국과 각종 언론에 홍보를 통해 팸투어를 조성하고 약 30여만명의 관광객이 한방약초축제장을 찾아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지금은 축제가 국제적인행사로 자리매김 되어 전국 최우수 축제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축제가 전국적인 행사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므로 예산·행사기획·관광객유치 등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려웠다. 그때 직원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고민하면서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쳤던 일이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공직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업무와 관련해서 징계를 받는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보다는 민원인들이 법과 행정상 불가능한 일을 뻔히 알면서도 송사를 진행해 온다든가 인터넷을 통해 음해하는 등의 행위가 가장 힘들었다.

-민원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말한다면

▲송사를 통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비방을 감수하면서 때론 속도 상하지만 일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는 민원인에게 다가가 이해를 시키려 노력했다. 유연하고 냉정한 대처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생철학이 있다면
▲참되고 진실하고 솔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등면의 주요 특용작물은
▲약 100여개 농가가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아피오스·초석잠은 아직 소수 농가에 불과하다. 딸기재배는 30%가 토경재배를, 70%는 고설재배(하이베드)를 실시하고 있다. 전량을 농협에서 회수, 가락시장으로 수송해 경매에 의해 판매되고 있고 신등면의 주 수확작물이다.

-신등면장으로서 주요 성과
▶다 함께 잘사는 복지농촌 실현
 소외되고 어려운계층의 소홀함을 없애기 위해 찾아가는 방문 상담(109세대,151명)을 통한 복지대상자 발굴과 저소득층에 대한 질 높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해 경제적 지원과 자립 강화(6명), 노인 복지 서비스 지원(노령연금 784명, 장수수당 73명), 노인 일자리 창출(우유배달 2명), 노인들의 여가 및 문화 공간 확보, 35개 경로당의 시설확충 등 노인들과 소외계층의 복리증진 시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일손부족 해소를 위해 군 자체사업으로 실시한 농산물건조기 지원사업과 저온저장고 지원사업을 추진해 2012년부터 농산물건조기 82대, 저온저장고 27대가 지원되어 안정적인 농산물 보관으로 농산물의 유통과 농가소득 증대에 큰 역할을 했다.
▶주민 휴식 공간 및 다시 찾고 싶은 마을 조성
언제나 그곳을 지나면 “아! 다르구나! 시원하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 언제든지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와서 다슬기도 잡고 고기도 잡으며 쉬었다 가는 휴식 공간을 만들고자 소나무숲(모례, 가림) 주변에 적치된 개인소유의 농자재와 폐자재를 제거해 소나무숲과 어울리는 관상수, 화단, 울타리 조성으로 내방객들에게 안락한 휴식 공간을 제공했다.
▶단계딸기 공동체 활성화 사업 추진
2등은 1등을 위해 노력하지만 1등은 자만하기 쉽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1등이다’는 자만심을 없애고 고품질의 딸기 생산과 신등 딸기의 우수성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어울림 한마당 행사를 중앙청과조합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 6일 개최해 성공리에 마무리했고 단계딸기의 온라인 쇼핑몰 및 홈페이지 구축으로 농가와 소비자가 직접 유통하는 직거래 체계를 확립하는데 앞장섰다.
▶주민숙원사업과 테마가 있는 주거환경 조성 추진
농가의 노동력 부족과 주민불편 해소를 위해 논·밭 주변의 농로와 세천을 정비해 주민보행과 홍수예방에 기여했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노후·불량주택 개량·보수 및 슬레이트 지붕철거, 농촌주택개량사업, 빈집정비사업, 슬레이트처리 지원사업 등 70여건 1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퇴임 후 할 일은
▲39년간을 긴장속에서 출·퇴근하며 열심히 달려왔다. 당분간은 쉬고 싶다. 사실상 앞으로 5년정도는 더 일해야 할 나이라 쉬면서 할 일을 찾아 보겠다.

-자녀들은 어떻게 지내나
▲큰아들은 해병대 부사관으로 근무중이고 둘째 딸은 결혼했으며 막내아들이 대학졸업반이라 취업준비 중에 있다. 막내가 취업을 해야 내가 좀 편히 지낼 수 있지 싶은데 걱정이다.

▲ 박대용 신등면장 곡식 수매현장 점검 모습.
-산청군 발전을 위한 한마디
▲산청군은 천혜의 자원인 지리산을 끼고 있다.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하는 가운데서 관광자원화를 위한 개발이 필요하다. 차라리 개발 이전인 50년 전으로 돌아가 자연 그대로의 산청이거나 되돌릴 수 없다면 케이블카 설치를 비롯한 관광자원개발이 필요하다.

-후배 공무원들에게 39년간의 경험을 말한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후회없이 업무연찬을 통해 업무지식을 습득하고 정확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고 순환보직제를 통해 전반적인 업무를 섭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등면민에 대해 감사의 말씀 한마디
▲잘할 수 있을 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고향에 와서 의외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지도와 격려 덕분으로 공직생활을 잘 마감하고 가는 것 같다. 감사드리고 두고 두고 신등면민을 사랑하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변치 않을 것임을 약속드린다.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후배 공무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무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 공직의 어느 분야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꿈은 절대로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 나아가 주민 그리고 국가에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 삶의 보람과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므로 어느 누구라도 프로의식을 가져야만 최고의 전문가가 된다고 본다. 산청/정도정기자

■박대용 면장은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출생 △단계초등학교 졸업 △신등중학교 졸업 △신등농업고등학교 졸업 △진주산업대학교 졸업 △신안면, 신등면, 재무과, 경제도시과, 문화관광과, 의회사무과, 건설과 △의회사무과 전문위원 △신등면장(현) △부인 김경귀 여사와 2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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