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남들과 어울리는 맛에 사는 것이다
인생은 남들과 어울리는 맛에 사는 것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12 18:5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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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사람을 대할 때에는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스승이 제자를 대하듯, 어질고, 자상하고, 차분하게 대하여 상대의 마음이 편안토록, 예의바르고 친절한 말씨를 사용하자.


그래야 복이 찾아든다. 사람은 얼굴보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 삶은 언제나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오늘 어려운 처지의 사람도 몰라보게 발전할 수 있고, 오늘 잘나간 사람도 크게 잘못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이라 하여 산채로 관에 처넣을 것처럼 언행을 거칠게 대하지 말라.

모든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지루하거나 불평도 있을 수 없다. 몸의 세포가 끊임없이 죽고, 생겨나듯,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며, 흐르는 물도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이다.

지금 나의 폐로 들어온 공기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렇다면 만나는 사람이 싫거나 미운 마음보다는 만남이 반갑고, 헤어짐이 아쉬울 뿐이다. 소멸은 소멸로 끝나지 않고 언제나 소멸에 맞먹는 생성을 가져온다. 그래서 죽음도 다시 태어남을 수반한다. 이것이 윤회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 인생은 남들과 어울리는 맛에 사는 것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고, 세상은 넓지만 죽음에서 도망 갈 곳도 없다.

누구든 자신감으로 꽉차있을 때는 거친 세상을 향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죽음의 공포가 덮치는 순간, 나약하고, 허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죽음을 보고 배워야한다.

세상에는 버릴 사람이나 버릴 물건이 하나도 없다. 욕심 때문에 좋고 싫은 마음이 생기고, 놓친 고기가 커 보이며, 남의 밥에 콩이 굵게 보여서 불행한 것이다.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 왕처럼 살수도 있고, 거지처럼 살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지식만 쌓일 뿐, 유명무실(有名無實)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망상(妄想)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배워서 배운 것을 실천에 옮겨야한다. 배움을 실천하지 않으면 부질없는 헛수고다.

사또 떠난 뒤에 나팔 불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보자

마음공부도 너무 욕심을 부리면 상기 병에 걸리게 된다. 열이 머리로 올라 머리가 아프며, 가슴이 답답하고, 입술이 트거나 갈라지며, 육신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반항한다.

항상 온 몸의 기운을 발바닥 아래로 내려 보내보라. 즉, ‘기해단전 요각족심(氣海丹田 腰脚足心)’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다스려 나가야한다. 무슨 일에서나 욕심은 금물이다.

감사가 행차하면 사또만 죽어나듯, 탐욕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분노만 커져간다.

마음이 도적이고, 늑대며, 선녀이자, 부처다. 행복도 불행도 다 대인관계에 달려 있다.

마음을 바로 닦고, 바로 다스리면, 행복이 온다. 등에 업은 아이를 찾아 헤매듯 행복을 먼데서 찾고 밖에서 구하려 말라.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사람은 열 번 된다.

사람차별하지 말라. 사람의 개성도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마음 편히 대해주자. 마음이 편안하면 잔병도 없어진다.

욕심만 버리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고, 그릇을 비우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법정 스님은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 졌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나’라는 마음을 버려보자.

나에게도 잘못은 있고, 남에게도 공덕은 있다. 이 사람 만남도 오늘이 마지막라고 생각하라. 마음만 잘 다스리면 천하가 다 내 품 안에 있고,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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