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24 19:4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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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시인ㆍ소설가

얼마 전, 정부의 쌀 재고량이 증가함에 따라 ‘쌀의 사료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쌀과 사료라는 말이 우리의 정서상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소식을 접하면서 격세지감이랄까,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었다. 단순히 격세지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묘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쌀을 사료로? 막상 말을 듣고 나서야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예전에는 아니, 이 말을 듣기 전까지도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인가? 쌀이 부족해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게 불과 삼사십 년 전이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오르더라도 우리 민족에게 있어 쌀이 귀한 대접을 받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역사를 접어둔다 해도 쌀이 부족해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혼분식을 장려하고 식량증산이라는 구호 아래 단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독려를 아끼지 않았던 게 불과 삼사십 년 전이다. 웬만한 곳엔 식량증산에 관한 표어가 나붙고 해마다 증산왕을 선발하여 표창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오게 된 것이 폼질 면에서는 형편없지만 소출량은 많은 ‘통일벼’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넉넉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면서 그에 관한 노래들까지 만들어져 불리었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 검사를 했다. 일부계층이 아닌 이상 일반 서민들 대부분은 혼식 장려가 아니더라도 형편이 어려워 사실상 집에서는 꽁당 보리밥을 먹으면서도 자식들 도시락은 기 꺾이지 않게 하려고 쌀밥을 싸 주곤 했음에도 학교에서는 혼식을 안 한다고 일일이 검사를 해서 시험 점수에 반영하기까지 했다.

그도 그렇지만 우리 민족에게 있어 쌀은 단순히 식량으로써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쌀은 모든 것의 기준이고 척도이며 또한 화폐였다. 아니, 그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그 이상인 기축통화(基軸通貨) 구실을 했다고도 할 수가 있다. 거의 모든 게 쌀을 기준으로 거래되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 보낸 자식들의 하숙비도 한 달에 쌀 몇 말이라 해서 당시의 쌀값으로 환산해 치렀고, 다른 거래에서 역시 으레 쌀을 기준으로 했다. 지금도 농촌에는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말이다. 쌀이 아닌 다른 곡식은 ‘잡곡’이라 부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오죽하면 그 잡곡에도 ‘쌀’이라는 말을 붙이겠는가. 보리쌀, 좁쌀, 수수쌀, 율무쌀……

그렇던 쌀이 다 소비되지 않고 남아돌아 재고량이 쌓이고 해마다 보관비만 늘어 사료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좀 과장하자면 지상 낙원의 또 다른 말로도 통했던 쌀밥이었다. 오죽하면 북한 김일성은 이팝(입쌀밥)에 소고기국을 먹게 하겠다고 호언하며 ‘인민’들을 현혹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이제 현실을 현실이다. 닥친 현실에 따라 사료화해야 된다면 해야 되겠지만 그것도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식량안보라는 문제도 따져봐야 될 것이고, 농촌경제 문제 역시 다각도에서 계산해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묘한 감정이 쉬이 떨쳐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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