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늙어가고 있다
고향이 늙어가고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2.02 18:3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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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사자어금니보다 든든하고 믿음직한 한국인의 고향은 농촌이며, 시골이다.


고향은 묘지일지라도 즐거운 곳이며 잊을 수 없는 좋기만 한 곳이다. 그래서 타양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친근감 있고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고향산천에는 조상들의 산소가 있다.

그런 고향이 불에 탄 북어 껍질마냥 오그라들고 있다. 고기도 놀던 물이 좋고, 병아리도 텃세하며, 여우도 죽을 때는 머리를 고향언덕을 향해 돌린다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명절에 발길을 고향 앞으로 돌리고 있는가.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에는 아이들이 사라져버렸다.

텅 빈 골목은 고요와 깊은 침묵만 흐르며, 논밭에서 소리 지르며 황소를 다루시던 아버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고, 그 자리는 할머니들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다.

설이 오면 새 신발기대에 뜬 밤을 새우던 순진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난의 슬픔을 달래기도 하였지만, 세월 따라 점차 빈집이 늘고, 고향도 점점 늙어가고 있다.

사잣밥을 목에 걸고 다닌 저 노인들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고향도 우리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갈 것이다. 맹수도 제 새끼를 두고 온 골에는 신경 쓰고 돌아보는 법이다.

그런데 명절이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마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향후 10년이면 한국인의 고향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태어난 고향을 잃어버린 것은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우리에게서 고향을 빼앗아가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번 설에 고향가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그냥 가져오지 말자. 가격보다 열배의 용돈을 두둑이 쥐어드리고 오자.

우리가 시골 분들 덕을 볼 수는 없다. 힘든 일과 틀리의 불편도 내색 않고, 묵언수행 하듯 말이 없는 분들이지만 그 어떤 호통이나 고함보다 삶의 함축된 깊이를 담고 있다.

말없는 그 마음은 바다처럼 청정하고, 고요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이며, 삶을 통달한 철인의 모습이다. 이런 분들에게 산 호랑이 눈썹 뽑듯 망상의 기세로 속이며, 제 이익만 차리려는 보이스피싱이며, 교활한 사기꾼들이 달라붙고 있다. 고향을 지키신 그분들은 욕심도 없이 그저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비시는 싫증나지 않는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논밭과 비닐하우스 속에서 목욕하듯 땀 흘려 한평생 묵묵히 일만 하신 분들이다.

삯일에 땀 흘리는 것을 보면 죽은 할아버지도 가슴 아파 보지 않고 돌아눕는다 하였다.

그분들은 손마디가 갈라지고 무릎관절과 허리디스크가 떠날 날 없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온 분들이다. 산 사람은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된다. 다시 안 볼 것처럼 야박하게 굴지 말자.

힘든 삶속에서도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로, 밥알 하나도 소중히 여기시는 부처님 같은 분들이다. 남을 위로할 줄 알고 짐승에게도 인정 베풀며,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현세의 무거운 짐을 도맡아온 분들이다. 그분들 앞에서 산도 허물고 바다도 메울 것처럼 허풍떨며 돈 잘 번 자랑만 하지 말고, 금일봉씩 듬뿍 쥐어드리고 오도록 하자.

사흘 살고 나올 집도 백 년 앞을 보고 짓는 것이다. 무시하며 형식적으로 대하지 말고, 최선의 예의를 갖추어 세배 드리자. 효는 하늘의 상도(常道)이자 땅의 의로움이다.

죽어 술 석 잔보다, 생전의 한 잔 술로써 잘 대접하자. 한사람이 효도하면 가정이 흥하고, 백 사람이 효도하면 한 고을이 흥하고, 전 국민이 효도하면 나라가 흥한 것이다.

도덕성을 갖춘 예의바른 언행으로 농촌 분들의 기를 살려드려 함께 즐기는 민족고유의 설이 되도록 하자. 착한 일을 하여 좋은 과보를 받는 선인락과(善因樂果)가 삶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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