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돌과 몽돌
짱돌과 몽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2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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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찬인/하동군 기획감사실장
기대와 설렘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 지 30여년. 어느 새 퇴직을 눈 앞에 둔 원로(?) 공무원이 되어 버렸다.

고개를 돌려 돌아본 30여년의 삶. 바람처럼 휑하니 스쳐가는 파노라마.나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했는가. 휑하니 스쳐가는 바람 속에 나도 없고, 내가 한 일도 찾을 수 없다.

애써 기억의 저편을 더듬으니 오직 잡히는 건 나를 키우는데 왜 그렇게 소홀했는지 하는 아쉬움뿐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고, 어느 조직도 ‘자신의 역량을 키우라’고 도와주지도 않았다. 스스로도 흐르는 삶 따라 그때그때 부딪쳐 왔을 뿐이다.

국민들이 ‘철밥통’이라 야유하고, 후배들이 그래가지고 계장, 과장하느냐고 비웃어도 정작 나는 부지런한 공무원이었다. 주어진 일과 상황에 따라 밤샘근무도 마다치 않고 참 열심히 일했다.

 높은 사람의 뜻에 내 의견을 맞추고, 주어진 상황을 적절히 잘 판단해서 처리하고, 그러다보니 세월이 쌓이고 쌓이면서 어느 새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는 바닷가의 닳고 닳은 몽돌, 그게 나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짱돌과 몽돌.

지리산 계곡의 뾰족뾰족한 짱돌이 노량 남해 바닷가에 도달하면 수없이 바위에 부딪치고 물에 씻겨 반들반들한 몽돌이 되어 버린다.

청년의 불꽃같았던 기운이 이제는 어느 누구와도, 어느 상황에서도 책잡히지 않는 몽돌이 되어 퇴직을 기다리고 있다.

초겨울 저무는 햇살에 지나온 공직생활을 반추하며 가끔씩 한숨을 내쉬곤 한다.  또 다시 시작한다면 짱돌이 되고 싶다.  모든 면에서 원만한 몽돌이 아니라 자기의 소리를 내어보는 짱돌이 되고 싶다.

기획이면 기획, 문화면 문화, 어느 한 분야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공무원이 되고 싶다.
짱돌이 굴러 굴러 30년이 지나도 짱돌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자기의 그릇을 키우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되고, SNS가 세상을 뒤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공무원이 추구해야 할 공직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국리민복(國利民福)은 공직의 최고 가치로 여전히 자리할 것이다.

국리민복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키우고, 전문적 지식을 함양하고, 나름의 공직철학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봉급을 주는 국민에 대한 보답이요, 내 가족을 사랑하는 길이요,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첩경이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다’라고 자괴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참 슬픈 이야기다.  공무원에게도 영혼이 있다. 출세에 비굴하거나 아부하지 않고, 공직의 가치에 자신의 초점을 맞추면 분명 공무원에게도 빛나는 영혼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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