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릉의 푸대접 심각하다
고려 왕릉의 푸대접 심각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02 18:5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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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서울ㆍ경기도 일원에 산재한 왕릉과 경기도 강화군에 산재한 고려 왕릉을 찾아간 때가 있었다.


조선 시대 왕릉에 가보면 웅장하고 아름답고 멋있어 감탄사가 나온다.

넓은 광장같은 바닥에 잔디밭이 조성되었고 봉분의 평균 높이 3~4m로 높고 봉분 보호석이 둘러 있어 각종 짐승이 토굴을 파지 못하도록 둥굴게 조성되었다. 봉분 주위에는 석등 2개 이상. 호석 2개 이상. 문관석. 무관석 2개 이상 세워져 있고 정돈된 상석은 기본이고 망주석. 마석. 안석 등이 갖추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봉분 입구에는 기와 지붕의 모양을 가진 안내판이 영문. 한글로 충분한 설명이 붙었다.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출입시간이 정해진 곳이 많다.

그러나 고려 역시 475년간 34명의 왕이 다스린 5백년 왕조로 직계조상이지만 철저하게 외면되고 푸대접이 심각하다.

개성에 있는 공민왕릉외 타 지역 왕릉들은 봉분만 있고 그 흔한 잔디밭조차 정비되지 않았다. 너무 초라하고 좁아 왕릉이라는 할 수 없고 일반 서민무덤보다 못한 초라한 모습에 저절로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다.

석등조차 없거나 문관석.무관석도 없고 기타 안석은 전혀 없다.

상석 하나만 있거나 사람 모양의 석상은 완전히 여러 조각으로 박살난 상태로 방치됐다.

가능은 사적 370호로 지정됐으나 이름 뿐이다. 가능은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 김약선의 딸의 능으로 아들 충열왕을 낳은 분이지만 푸대접이 심각하다. 석릉(碩陵)은 사적 369호로 지정됐다. 역시 푸대접이 심각하다. 석릉은 희종(1204~1237)의 무덤이다. 어머니는 정태태후 김씨이며 부인은 성평태후 왕씨로 최씨 정권과 대항하고 치적이 많은 왕이다.

홍릉(洪陵)은 23대 고종(1192~1259)의 무덤이며 팔만대장경을 만든 엄청난 공적을 남긴 분이다. 봉분 주위에 있어야 할 각종 석물이 없거나 파괴되었고 사람 모양의 돌조각은 부서지고 문.무관석은 물론이고 무덤의 보호석이나 울타리 조차 없어 누구나 들어가 훼손이 가능하다.

그 흔한 잔디밭과 기와 지붕의 안내판조차 보이지 않아 왕릉이라고 향토주민이 말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고 서민 묘 보다 못한 초라한 형색이고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이다. 곤릉(坤陵)은 사적 371호로 고려 강종의 부인 원덕 태후 유씨의 무덤인데 파헤져진 모습이다. 석물도 없고 담장석은 무너져 있다.

강화도 고려 궁지가 사적 133호로 지정됐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탄 이후 160년간 복원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 왕릉은 있는 것이 너무 많고 고려 시대 왕릉은 없는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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