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03 18: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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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우리의 사계절은 계절마다 멋과 맛이 다르다. 겨울의 멋은 뭐니 뭐니 해도 설경이고 제대로의 맛은 맹추위다. 입김을 하얗게 뿜으면서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순백의 은세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이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 설경속의 찻집은 눈 덮인 지붕위로 하얀 연기를 보드랍게 흩날리며 장작불에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가의 옛 사람들이 두고두고 간절하게 그리워지던 추억마저 이제는 세월의 갈피 속에서 옛 이야기가 되어 아련하게 잊혀져간다. 지난 겨울엔 눈다운 눈이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어 겨울의 제 맛을 느껴 볼 겨를 없이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고 내일이면 개구리가 놀라서 뛰쳐나온다는 경첩이다.


겨울의 진객들인 기러기와 청둥오리가 먼 길 떠난 빈자리엔 버들강아지가 하얀 솜털로 진작부터에 피어서 어쩌다 오가는 사람을 붙들고 봄소식이라도 전하고 싶은데 정작 사람들은 상대를 해 줄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고 부대끼는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나날의 연속이다. 하루의 말미가 아쉬워 아침 해가 하루만 늦게 떠줘도 좋으련만 인정머리 없게도 어김없이 떠오르고, 온갖 납입 고지서는 어찌 그리 길눈도 밝은지 문패 없는 집이라도 잘만 찾아온다. 어떤 때는 지구의 끝에서 펄쩍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알 때쯤이 되어야 옆 사람이 보이고 모르는 사람들이 걱정도 된다. 더 멀리 보면 더 힘든 사람들이 있고 또 있다. 그들도 모두 커다란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살림살고 생활하며 애들 키우는데 모자람만 없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천석꾼의 천 가지 욕심과 만석꾼의 만 가지 욕심과는 전혀 다르다. 고대광실도 아니고 작아도 내 집 한 칸이면 족하고 힘들게 하는 일이라도 언제까지 하자며 그만둘 일이나 안 생겼으면 하는 것이고 아이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것이 소원의 전부인 것이 나만이 아니고 오늘을 함께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지극히 소박한 절실한 바람이지만 처음부터 맨 바닥이라서 아무리 바동거려도 앞선 사람들의 끄트머리조차 따라잡기가 막막한 현실이 야속하지만 남들보다 적게 쓴다고 끼니까지 굶는 것도 아니고 구멍 나고 헤진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보면 소중한 내 것들이 그래도 여럿이 있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작은 여유와 가치를 가진 삶이다. 부자는 큰돈이 모자라고 가난한 사람은 적은 돈이 모자라는 것이니까 서로를 다독거리면 이루지 못할 것은 확실하게 아니다. 재주가 있으면 재능을 나누고 시간이 남으면 시간을 함께하고 가슴이 더워질 때면 정을 나누며 새 봄에 걸어보는 기대를 위안으로 삼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 봄맞이를 희망차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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