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의 역옹패설 보물지정
이제현의 역옹패설 보물지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16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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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고려 시대 최고의 명신(名臣)이자 대학자인 이제현(李齊賢)선생이 지은 역옹패설(櫟翁稗說)이 보물 1893호가 되고 익재난고(益齋亂藁)가 보물 1892호로 지정됐다.


보한집(補閑集)파한집(破閑集)과 더불어 고려 3대 문학 비평서인 역옹패설은 이제현 선생이 서기 1342년 56세 때 은퇴하여 자택에 머물면서 집필한 책이다. 역옹패설은 지금까지 순조 14년(1814)에 간행된 갑술본이 유일본이라고 생각했으나 계명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책이 더 오래 된 것으로 인정돼 지난 2016년 2월 보물로 지정됐다.

세종 14년(1432)세종대왕의 명으로 집현전 학사들이 선사(繕寫)해 만든 원고본을 강원도 감영이 있던 원주에 내려 보내 간행한 것으로 역옹패설 말미에 편성및 출판과정을 설명한 집현전 응교 김빈의 발문이 있다.

이제현(1287~1367)선생은 경주 이씨. 초명은 지공(之公)자는 중사(仲思)호는 역옹(櫟翁). 익재(益齋). 15세 때 성균시에 장원하고 이어 대과에 급제했다. 권세가 권보의 딸과 혼인했다.

고려 말 대학자이지만 조선 초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정주학의 기초를 세웠다. 왕명으로 충렬실록 등을 편찬하고 원나라 조맹부의 서체를 고려에 유행시키고 고려 민간 가요수를 한시로 번역하고 충선왕의 명으로 원나라 서울 연경으로 건너가 만권당에서 당대 문장가 조맹부. 요수 등과 교제했다.

30세 때 서촉을 주유하고 35세 때 토번으로 귀양간 충선왕을 따라 2만리 길을 장정하기도 했다. 이제현 선생이 연경궁 녹사와 춘추관에 들었을 때 노당 추적 선생이 태학(성균관)교수였기 때문에 학문을 배운 분으로 알려져 있다.

부친 이진(李瑱)은 검교시중까지 올랐는데 안향의 제자 9명중 한분으로 알려져 있다. 9명은 국재 권보. 역동 우탁. 노당 추적. 이재 백이정. 매운당 이조년. 덕재 신장. 근재 안축. 경재 안보 등으로 충청도 음성군 도통사에 모셨다.

이제현 선생의 생가 터가 개성시 선죽동 숭양서원 입구 우측에 있는데 유허비가 있어 그 내력을 알게 한다.
1798년(정조 22) 6월에 익재 이제현 선생의 15세손 덕봉공 이진택이 근찬하고 생원 청주 한종락이 근서해 세웠다.

경주시 안강읍 양원리에 구강서원(龜岡書院:문화재 자료 188호)이 있고 익재영정(문화재 자료 90호:덕수궁 미술관에도 소장)이 있다. 황해도 금천군에 도산서원(道山書院)이 있었으나 현재 복원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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