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미녀, 문저리
바다의 미녀, 문저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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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IT교육 컨설턴트
제목을 보고 여름 바다의 늘씬한 팔등신 비키니 여인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또 문저리는 여인의 이름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미안하다. 문저리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 이름이다. 표준말로는 보리멸이다. 보리가 익는 철에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보리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문저리는 보리멸의 마산 거제 통영 지방 사투리다. 한 뼘 가량의 늘씬한 몸매에 등 쪽에는 연한 황색을 배 부분은 연한 담색을 띈다. 머리와 주둥이는 길고 가늘고 삐죽하다. 날렵하고 세련된 새침한 미녀를 생각나게 한다. 바다의 요정 혹은 백사장의 미녀라고도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수채화 빛 원피스를 입은 키 큰 미녀가 백사장을 거니는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

필자는 고향이 마산이 아니다. 마산에서 산지 10여년이 되어가지만 바다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그 중에도 바다에서 물고기들이 수면을 따라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바다낚시에 문외한이던 필자가 바다에서 처음 낚은 물고기가 문저리다. 바다낚시의 초보자인 내게 잡혔으니 어지간히 운이 없는 녀석이다.

낚시를 모를 때 녀석을 잡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청개비(갯지렁이)를 바늘에 꽂아 바다에 던져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 보면 낚싯줄이 움칠움칠 끌려 들어갔다. 그 순간 느긋하게 낚싯줄을 감으면 영락없이 녀석들이 낚여왔다. 기술도 필요 없고 긴장 할 필요도 없었다. 몇 마리를 잡으면 요리를 할 줄 모르니 옆에 있는 낚시꾼에게 나누어 주고 빈 낚싯대만 들고 돌아왔다. 그야말로 낚시는 즐거운 휴식시간이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따라 낚시를 다니다 보니 낚싯대도 하나둘 늘고 낚시 용어도 몇 마디 주워듣게 되었다. 대충 묶던 낚시 바늘도 낚시 매듭을 따로 배워 묶었다. 무엇보다 챔질 요령을 배워서 초리대 끝을 뚫어지라 바라보다 급하게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어떤 때는 너무 빨라 고기를 놓치고 때로는 너무 세게 챔질을 해 물고기의 입이 찢어졌다. 낚시가 끝날 때 보니 잡은 고기도 그리 많지 않고 몸은 지쳐 파김치가 되었다. 희한하게도 낚시를 알면 알수록 긴장하고 피곤해졌다. 
어느 날 발목까지 오는 얕은 물에서 아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문저리 몇 마리가 몰려다녔다. 장난기가 발동한 필자는 청개비를 꽂은 낚싯줄을 손가락에 감고 있었다. 그런데 낚싯대보다 더 쉽게 문저리를 낚을 수 있었다.
그 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중에 많은 것이 헛되고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낚시는 바늘과 줄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인생에 바늘과 낚싯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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