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희 진주시장 시정운영 뒤에서 돕는일 할 것
이창희 진주시장 시정운영 뒤에서 돕는일 할 것
  • 대담 / 황인태 본지 회장
  • 승인 2016.04.03 18:28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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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 이재호 회장

▲ 이재호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 회장은 2014년 제8대 이길영 회장 잔여임기를 맡아 회장에 취임한 후 지난해 1월 제9대 회장에 올랐다.
1948년 태어나 우리나라 나이로 69살인 이재호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장은 50년이 넘게 진주시 중앙동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이다. 진주시 대곡면에서 태어나 16살에 진주시내로 들어와 지금의 중앙동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남의 집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다가 1987년, 마흔 살에 지금 진주교회 앞에서 한일전기 상사를 창업해 제법 돈도 벌었다. 한일전기 상사는 한때 진주에서 전기재료 상으로서는 두 번째 규모가 될 정도로 번창했다. 이 전기재료 가게를 운영해 본가 7남매의 동생들과 처가 쪽 8남매 동생들을 모두 가르치고 결혼시켰다. 본가에서는 차남이었고 처가에서는 맏이어서 그렇게 된 것인데 결혼할 때 아파트를 사서 분가시킨 동생들도 많다.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도 처남에게 물려줘 현재 처남이 경영하고 있다. 평생 좌우명이 적선여경(積善餘慶, 선을 쌓으면 경사스런 일이 생긴다.)인데 이 좌우명에 따라 동생들 뿐 아니라 남을 돕는 일을 즐겨해 왔다.

그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2014년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 회장을 맡게 됐다. 맡아보니 일 년에 들어가는 자신의 돈만 무려 공식적으로 3000만원이 넘는다. 마누라가 알면 맞아죽을 것이라고 하는 이 회장은 그래도 기존에 벌어놓은 돈이 있어 아직은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개인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회단체를 맡고 있지만 그래도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는 법정단체이고 효자·효부 상 시상 등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어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평생 봉사활동을 하는 게 몸에 배어 있어서 이렇게 내 돈을 들여서라도 회장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후임을 맡을 사람이 있을지는 걱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재임 중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의 활동 목표에 대해 이 회장은 “마침 진주시는 100년 이래 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 또 이창희 시장이 이런 시대적 여건에 맞게 방향을 잘 잡고 시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장의 시정운영방침을 잘 뒷받침 할 수 있도록 바르게살기운동이 뒤에서 돕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 회장과의 인터뷰는 본지 황인태 회장이 담당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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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좌우명 적선여경(積善餘慶) 따라 봉사활동 하며 여생 보내
전기재료상 한일전기 운영해 본가 7남매·처가 8남매 모두 키워
14년전 친구 권유로 협회와 인연…재원출연은 회장 의무라 생각        
2014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대회 진주서 개최한 일 기억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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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 사무실에 액자로 걸려있는 이재호 회장의 좌우명인 적선여경(積善餘慶).
대담 / 황인태 본지 회장
-젊어 보이시는 데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1948년생입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69살입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그냥 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또 운동을 많이 합니다.

-운동은 어떤 운동을 주로 하십니까?
▲대부분의 운동을 다 좋아하는 데 골프는 싱글 수준이고 티칭 자격증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전거에 빠져 있습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데 월악산을 한 번에 올라갈 정도의 실력이 됩니다.

-월악산에서도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까?
▲네. 임도로 정상까지 갈 수 있습니다.

-대단한 실력이네요.
▲제가 운동에는 좀 소질이 있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 회장이 되신 게 언제입니까?
▲2014년 10월 8대 이길영 회장의 잔여임기를 맡아 바르게살기운동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2015년 1월 제9대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이 뭡니까?
▲바르게살기운동은 원래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정화위원회로 시작된 것인데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바르게살기운동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1989년 4월 1일이 바르게살기운동 창립일입니다. 봉사단체 새마을 운동, 자유총연맹 등과 함께 법으로 정해진 법정단체입니다.

-진주시협의회도 이날 창립이 됐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자주 들어도 사실 바르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데.
▲바르게살기운동이 추구하는 이념은 진실, 질서, 화합 등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며 살자는 게 바르게살기운동입니다.

-진실, 질서, 화합을 추구하며 살면 바르게 살아진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가 이 세 가지 목표를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르게살기운동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실, 질서, 화합입니다. 아마 이 단체가 처음 생겼을 때 국론분열이 많고 사회가 분열된 점이 많아서 화합을 목표에 넣은 것 같습니다.

-현재 회원은 전국적으로 몇 명이나 됩니까?
▲전국적으로 약 70만명인데 올해 목표가 100만명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진주시협의회는 회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약 1000명 정도 됩니다.

-진주시협의회의 조직구성은 어떻게 돼 있습니까?
▲회장 밑에 청년회, 여성회, 산악회 등이 구성돼 있습니다.

-역대 회장은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초대회장부터 5대 회장까지는 원종록 회장이 맡았고 그 이후 진주시의회 의장을 하셨던 6대 이갑술 회장, 7대는 이영석 회장, 8대는 대흥농장 하시는 이길영 회장이었습니다. 저는 2014년 10월 이길영 회장의 사퇴로 잔여임기를 맡아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이 회장님이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와 인연을 맺은 것이 언제입니까?
▲14년 전에 7대 회장이었던 이영석 회장의 권유로 바르게살기운동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그 때 라이온스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인 이영석 회장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인연을 맺게 됐는데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바르게살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진주시협의회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연간 교통질서캠페인, 독거노인 돌보기 봉사활동, 효자·효부상 시상식 등이 있습니다. 이 중 효자·효부상 시상식이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는 효자 효부를 매년 10명 씩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효자·효부상은 어떻게 시상이 됩니까?
▲매년 10명씩 선정해 시상을 하는 데 진주시 32개 읍면동에서 각 10명씩 추천을 받아 현장 실사를 통해 최종 10명을 선정합니다. 실사를 나가보면 정말 효자와 효부들의 노력에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10년째 병수발을 하는 것을 비롯해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효자와 효부가 많이 있습니다.

-협의회장을 수행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은?
▲2014년 10월 8일 바르게살기운동 전국대회가 진주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가 유등축제기간이었습니다. 유등축제기간이라 눈코뜰새 없이 바쁠텐데도 이창희 진주시장을 비롯해 진주시청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전국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 제 임기중에 이런 전국대회를 개최했다는 사실과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데 대해 큰 자부심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의 운영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진주는 도약의 호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르게살기운동 진주시협의회도 진주시정과 발을 맞추어 진주시가 하려는 일들이 잘 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창희 시장님의 시정운영을 뒷받침 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서 활동하려고 합니다.

-바르게살기운동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시의 보조금이 충분합니까?
▲본부에는 보조금이 없고 32개 읍면동에는 시청의 보조금이 있습니다. 읍면동에서는 보조금으로 활동을 하고 본부에는 회장이 재원을 출연해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회장이 재원을 출연하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정관에 회장은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자로 선임한다고 돼 있습니다. 정관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재원출연 등은 회장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간 얼마정도 들어갑니까?
▲제가 해 보니까 연간 3000만원 남짓 들어갑니다. 집에 있는 아내가 알면 맞아죽을 일이지만 실제 그 정도 들어갑니다. 품위유지비까지 포함하면 더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겁니다.

▲ 이재호 바르게살기 진주시협의회 회장은 “바르게 회장을 맡아보니 일년에 3000만원이 넘는 개인 돈이 들어간다”며 “마누라가 알면 맞아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회장 임기 3년 동안 1억원이 넘는 돈이 바르게살기운동을 위해 투입된다고 봐야하겠네요?
▲그렇습니다. 2번 임기 채우려면 약 2억원의 사재가 출연되는 셈이지요.

-그렇게 돈이 들어도 할 만큼 의미가 있는 자리입니까?
▲저는 평생 봉사 활동하는 게 몸에 배여서 괜찮은 데 앞으로는 걱정입니다. 과연 이만 한 돈을 쓰면서 바르게살기 지회장을 하려는 사람이 나올지 사실 걱정입니다.

-이 회장은 이 많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합니까?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충당합니다.

-그동안 돈을 많이 번 것 같습니다.
▲그렇지는 않고 아직은 아이들에게 부담 줄 정도는 아니라서 제가 벌어놓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고 있는 가게를 5년 전에 처남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였던 것입니까?
▲전기 재료상을 하였습니다. 한일전기라고 진주교회 앞에 가게가 있습니다. 이 가게를 평생 운영했습니다.

-사업은 잘 됐습니까?
▲큰돈은 벌지 않아도 먹고 살만큼은 벌었습니다. 이 가게를 운영해 본가 7남매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으며 처가 쪽 8남매도 모두 제가 돌보았습니다.

-사업이 잘 되었던가 봅니다.
▲1987년 창업하여 그때는 연간 매출이 20억에 해당될 정도로 전기 재료상으로서는 큰 편이었습니다. 진주에서 두 번째 정도 되는 규모였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가게는 잘 되었습니다. 그 가게를 운영하여 본가, 처가 모두 먹고 살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본가와 처가를 다 책임진 이유가 있습니까?
▲본가는 7남매인데 제가 차남입니다. 그런데 형이 좀 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너무 의협심이 강해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잦았습니다. 진주 시내를 주름잡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둘째인 제가 책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들의 공부와 결혼을 그래서 제가 다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처가는 어떻게 하다가 책임지게 됐습니까?
▲처가도 제가 맞이었습니다. 8남매였는데 아무래도 제가 맏이고 벌이도 괜찮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책임지게 됐습니다. 결국 제 가게도 5년 전에 처남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제 좌우명이 적선여경입니다. 여기 사무실에 걸려있는 저 액자의 글도 적선여경입니다. 한자로 積善餘慶으로 쓰는 데 적선을 하다보면 인생에 경사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평생 제가 마음에 두고 실천하는 말입니다.

-진주시내에 온 것은 언제입니까?
▲대곡이 고향인데 16살에 집에서 농사짓다가 우연히 시내에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중앙동에서 50년째 살고 있습니다. 중앙동을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

-자녀는 어떻게 됩니까?
▲3남 1녀인데 다 잘 살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진주시내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고 큰 딸은 오래전에 공무원 하는 사위에게 시집을 갔으며 막내는 현재 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철저히 “네가 버는 것은 네 것이고 내가 버는 것은 내 것”이라고 교육을 해 와 각자 자기생활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번 것은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가버리겠다는 말을 해 왔습니다. 자식들도 제가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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