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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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4.04 18:2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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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폐허를 돌아본 자만이 우리의 조상이 얼마나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는지, 또한 얼마나 충격적으로 몰락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석양 아래 부서진 기둥, 우거진 잡풀 사이 잘라진 비석에 익숙해지면 트렁크 속 역사책에 의혹의 눈길이 닿을 수밖에 없다. 폐허는 우리를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 속으로 인도한다. 가을날 흩날리는 누런 잎들을 본 적이 있는가? 낙엽이 없으면 가을도 존재하지 않는다. 폐허는 바로 건축의 낙엽이다.


초년에 고향을 떠난 유랑자들은 고향에 대한 생각이 항상 이중성을 띈다. 즉 마음속의 고향이 구체적이면서도,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강줄기, 작은 나무 몇 그루, 허물어진 담장의 이끼 같은 모습은 매우 구체적인 모습에 속한다. 만약 이 정도라면 애타는 생각을 그대로 행동에 옮겨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고향에 돌아오면 또 언제나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매일 내 마음속에 맴돌던 것들이 이런 모습이었단 말인가? 그러므로 진정한 유랑자는 고향에 돌아가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이따금 고향에 들릴 일이 있다고 해도 재빨리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는 외지를 거닐면서 다시 하염없이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바보처럼 자신에게 물음을 던진다. ‘고향이 어디메뇨?’그래서 타향에 있을수록 더욱 향수에 젖는다. 향수가 짙을수록 오히려 고향에 돌아가기가 점점 더 겁이 난다.

고대 중국의 유랑자들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가는 이는 이백(李白)이다. 다른 유랑자들은 그것이 주도적인 것이든 아니면 피동적인 것이든지 간에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이백만은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명확한 목적이 없어야 유랑이 순수해질 수 있다. 순수한 유랑은 기점도 없고 종점도 없다. 그는 이것으로 생명의 본질을 이해한다. 그러나 일찍이 그는 하나의 기점을 가설한 적이 있었다. 바로 ‘고향’이 그것이다.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이 시는 역대로 중국인들의 정신적 지표가 되었다. 그에게 고향은 마치 달처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갈 수 없으며, 읊조릴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것이 바로 순수한 유랑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고향’이다. 장기간 관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어딘가에 묶여 부자유스러웠던 것도 아닌데, 그는 왜 한 번도 귀향하지 않고 밤마다 고향을 그리워하기만 했는가?

어느 일본 학자는 이백이 일부러 평생 ‘타향 체험’을 자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생에 걸친 타향 체험, 이것이 바로 영원히 고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는 유랑자의 체험이다.

고향의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미 삶의 끝자락에 이른 노인이 어머니를 부르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한 마디 외침만으로도 방랑과 귀향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

인생에서 맛보는 경험 가운데 매우 소중한 것의 하나가 바로 타향 체험과 고향 생각이 뒤섞이고, 방랑을 향한 욕망과 회귀 본능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를 부채질하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국경을 초월하고, 고금을 뛰어 넘어 영원히 매력적인 인생의 패러독스로서 무한한 감성을 선사해준다.

방랑과 향수에 대한 더욱 진한 느낌, 감성들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저 조그만 심장 가득 체험 할 수밖에 없다. 황혼에 접어든 제왕이든 아니면 초라하게 늙어가는 거지이든 북쪽 하늘가를 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느껴보지 않는 타향객이 있을까?

최치원의 〈비 내리는 가을밤〉이라는 시가 고향을 더욱 그립게 하고 있다. 「가을바람 쓸쓸하여 처량하게 노래 불러도. 세상사람 그 누구도 알아줄 이 없어라. 창밖엔 밤늦도록 궂은비만 내리는데. 등불 아래 고향 생각 만리길 달려가누나.」

늘 곁에 계실 것 같아 성공하면 잘 해드려야지, 나중에 좀 더 편하게 모셔야지, 뒤로 미루는 사이 부모님은 우리 곁을 떠나고 만다. 청명(淸明)·한식(寒食) 성묘 길에 어른이 흘리는 눈물과 아이들의 눈물은 그 무게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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