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 20대 총선후 정국
안개속 20대 총선후 정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4.14 19: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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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균/(주)동명에이젼시 대표·칼럼니스트
 

20대 총선은 여야 지도부가 어디에서도 이 나라를 어느 곳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약속과 다짐도 보여주지 못한 이정표 없는 선거였다. 국정 운영의 방향과 목표라는 비전이 실종된 것이다. 막장 공천극을 끝낸 여야의 공식 선거운동은 한편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텃밭인 영·호남을 향한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읍소와 구걸, 협박은 낯이 화끈거릴 정도다 그저 용서해 달라거나, 미워도 다시 한 번 찍어달라 같은 읍소와 지역구 개발 공약만 판을 쳤다. 이번 총선은 결국 국정 방향과 노선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완전히 실종된 선거로 끝나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진박’의 등장과 비박계 공천 학살, 그리고 ‘옥새 파동’은 우리 정치를 십수 년 후퇴시키기에 충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노와 운동권당이라는 꼬리표를 여전히 떼어내지 못한 채 야권 후보 단일화에만 목을 매는 모습을 연출했다. 새 정치를 하겠다고 모인 국민의당도 내부 계파 갈등으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신 국민들이 정당과 정치권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총선 이후 불 보듯 뻔한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더민주 내 친노-비노 간 충돌은 우리 사회를 또 한 번 소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 사이 주요 민생과 경제 법안은 20대 국회 초반에도 겉돌 가능성이 높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쯤 선거를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 총선에서 한가지 눈여겨볼 것은 여야를 장악해 온 친박과 친노 패권주의의 균열 조짐이다. 새누리당은 대구의 무소속과 야당 바람으로 인해 그동안 독주해 온 친박계가 주춤했다. 더민주 역시 호남에 불어닥친 국민의당 바람에 친노계가 숨을 죽였다. 문재인 전 대표가 광주와 호남을 두 번이나 찾아 ‘용서’를 구했으나, 거대 여야의 극단적 대결정치에 지친 민심이 양당의 패권주의에 제동을 걸었다.

여당의 막무가내식 공천과 친박과 비박으로 갈린 권력투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권의 수준을 의심케 만들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했다. 그만큼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 분당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의 골은 깊다. 향후 전당대회와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서 또다시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세력이 합리적이고 조화롭게 이 과정을 치러내지 못하면 대선 결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는 산업 경쟁력과 성장 동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빈부 격차가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경고가 계속해서 쏟아지는데도 유권자들 판단을 도울 만한 논란조차 없이 그저 상대방을 비난하기만 했다. 안보와 경제가 동시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정치권에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얘기가 많았다.

새누리당은 진박공천이라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음에도 야권 분열 구도 하나에 의지해 이 선거를 치루었으나 총선결과는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더민주당 역시 친노와 계파공천 파동을 재연하면서 대안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호남을 잃었지만 전체적인 선거결과는 일단 성공한것으로 보여진다. '양당 체제 심판'을 내세운 국민의당은 정치 불신과 호남 지역 정서에 기대어 반사이득을 거둔결과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수도권에서 보여준 국민과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총선은 지난 4년간의 적폐와 누적된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장차 4년을 움직여갈 정치적 동력을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핵심 과정이다. 각 당 대표들은 국정 현안을 둘러싼 토론회조차 한번 하지 않고 그저 지역 정서를 자극해 표를 구걸하는 일에 치중했다. 20대 국회가 19대 국회와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바랬던 국민과 유권자의 기대는 접어야만 하는가. 이번 총선이 보여준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모든 현안은 결국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마저 정책과 비전은 눈을 씻고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분열과 권력 투쟁뿐이었다. 19대 국회 내내 통합과 해결의 길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으로 치달았던 정치권이 앞으로 4년간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든다. 국민은 짙은 안개 속에 이정표가 잘 보이지 않는 정치권을 바라봐야만 하는가. 우리의 정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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