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 시골 초등학교 ‘승마’로 비상하다
폐교 위기 시골 초등학교 ‘승마’로 비상하다
  • 함양/박철기자
  • 승인 2016.04.21 18:50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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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특성화학교 함양 위림초 강은희 교장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 열에 아홉은 도시 지역에 산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이농현상으로 청년과 아이들을 보기 힘든 시골은, 역사의 터전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이다. 시골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던 학교들도 아이들이 떠나자 하나 둘 폐교되고, 팍팍한 도시생활 속에 옹달샘처럼 품고 있던 고향 유년의 추억들도 더불어 문을 닫고 있다. 최근 이 같은 폐교 바람 속에서 추억의 보금자리를 지켜내자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 교육부가 시행하고 있는 학생 수 기준 폐교 마지노선은 60명. 이를 넘겨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일부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자체나 지역기업, 동창회, 학부모 등이 손잡고 도시 학교가 흉내낼 수 없는 차별화된 교육 여건과 시스템을 조성해 학생들을 모으고 명품학교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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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까지 활력 넘치던 학교 학생수 감소로 폐교위기
전임 이정구 교장선생님 승마교육 위기 돌파 바톤이어
농촌지역 학교 재생 모델로써 교육의 질 향상 노력할것

청정 인프라와 특성화교육 어우러진 명품학교로 부활
소통하는 사랑은 학생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진로결정 많은 경험 필요…학교시설 노후화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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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 대상학교로 선정된 후 지원이 끊겨 정비해야 할 시설들이 많다. 때에 찌든 마룻바닥 모습.
◆폐교 위기…솔루션1 ‘승마’
함양읍에 위치한 위림초등학교(교장 강은희)는 1947년 개교 이래 65회 졸업생까지 배출한 전통 있는 학교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학생으로 북적이던 이 학교 역시 40여명까지 학생이 줄며 폐교 위기에 몰렸다. 각 마을 단위의 분교들은 일찌감치 전멸하고 석복초, 광월초, 배재초 등 지명도 있던 읍·면 지역의 초등학교들도 줄을 이어 폐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위림초 역시 줄어드는 학생으로 인해 2011년 폐교 대상학교로 선정됐다. 곧 폐교될 거라는 소문 속에 학부모들은 학구를 위반하면서까지 아이를 인근의 큰 학교로 진학시키고, 학교에 대한 지원도 거의 끊어져 시설과 교육환경은 날로 열악해져 가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학교를 살리자는 목소리는 이어졌으나 뚜렷한 해법이 없는 가운데 폐교 위기감은 날로 더해갔다.

이런 가운데 2012년 3월 이정구 교장이 공모로 부임했다. 활력을 잃어가는 학교 살리기 솔루션을 고민하던 이 교장의 눈이 머문 곳은 ‘승마’였다. 인구 4만의 작은 시골에 승마장이, 그것도 학교에서 불과 1km 남짓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함양승마클럽·대표 정명수).

‘하늘이 준 기회’라며 무릎을 친 이 교장은 정 대표와 의기투합해 협약을 체결했다. 마침 고향 교육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찾고 있던 정 대표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말을 탈 수 있게 해주는 등 학교 살리기에 적극 동참했다. 이 교장은 승마를 교기로 지정하고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승마부를 개강했다.

그해 7월 경남 최초로 학교 내 승마교육장을 개장하고 교사들은 ‘승마교원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경남도교육청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개발에 응모해 ‘승마교육 길잡이’라는 자료집을 개발하는 등 승마특성화교육으로 상급기관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위림초 학생들 위주로 이루어지던 승마는 지역 연합 방과후활동으로 관내 다른 학교 학생들도 참가하고, 2013년에는 함양중학교에도 스포츠클럽활동으로 승마부가 개설됐다.

▲ 함양 위림초 이정구 교장(왼쪽)과 함양승마클럽 정명수 대표(가운데), 함양승마협회 이창구 회장(오른쪽 두번째) 승마교육 협약체결 장면.
◆솔루션2 ‘주마가편(走馬加鞭)’
이 교장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학교 살리기 움직임이 활기를 띠자 총동창회(회장 이재철) 등 주변도 발벗고 나섰다. 총동창회는 학교 발전기금을 내놓고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학생,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유소년승마단 지원금도 부담하고, 동창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위림초등학교 학구로 전입하기 운동을 펼치는 등 학교 살리기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승마 특성화학교로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힘을 모으자 각종 지원도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다. 한국 마사회로부터 승마 특성화학교 육성 등을 위한 자금 지원을 받았고, 경남도와 함양군 등에서도 지원이 이어졌다. 2013년 마사회에서 1억6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위림초등학교가 주도하는 ‘함양군 유소년 승마단’을 창단했다. 승마단은 학교와 함양승마클럽의 열정적인 뒷받침으로 각종 전국 대회에 출전해 탁월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또 지자체 지원과 함양승마클럽의 협조로 학생들이 고가의 수강료에 대한 부담 없이 승마를 즐기게 됐고, 선수 선발과 육성을 통한 엘리트승마도 활기를 띠고 있다.

승마교육이 틀을 잡고 학교가 내외의 이목을 끌자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3년 43명까지 줄었던 학생 수가 점차 늘고, 학교 활성화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 교장은 여기에다 교육환경과 질 업그레이드에 더욱 불을 지폈다.

서울 미동초등학교와 도농교류 교환학습을 실시해 교환학생들이 일주일씩 도시와 농촌을 경험하도록 했다. 함양에 와서 청정 자연 속의 교육환경과 승마를 경험한 학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전입을 희망하는 타지 학생들도 늘고 있다. 또 경남도교육청으로부터 식생활 현장체험교육 지원대상학교로 선정돼 함양 특산물인 산삼을 한 달에 한 번 급식으로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밖에도 수영, 야영, 스키캠프, 지리산둘레길 체험학습, 바둑 등 다양한 특성화프로그램을 도입해 교육 차별화에 박차를 가했다.

▲ 학생들이 승마체험을 하고 있다.
◆솔루션3 ‘새 선장과 함께 다지기’
4년간 학교 활성화의 틀을 다진 이정구 교장의 뒤를 이어 올 3월 부임한 강은희 교장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정문을 들어서자 천연잔디가 깔린 널찍한 운동장이 눈에 띄었다. 

학교 왼쪽으로는 ‘위천’이라는 맑은 강이 휘감아 돌고, 그 곁에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천년숲 상림이 어우러지고 있다. 그 강의 ‘까막소’라는 곳에서 멱감고 상림에서 풍뎅이, 집게벌레 잡으며 뛰어놀았다는 위림초 선배들의 전설 같은 추억의 보금자리다.

강 교장은 처음 위림초에 부임할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무엇보다 탁 트이고 널찍한 운동장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닭장 같은 공간에 갇혀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마음껏 뛰놀며 발산해야 하는데, 넓은 운동장과 바로 옆의 위천강, 상림숲 같은 아름다운 환경을 봤을 때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전임 교장선생님이 승마라는 기반을 훌륭하게 닦아놓은 것도 감사하고.”

강 교장은 57명이라는 학생 수가 너무 좋다고 한다. 교사 1인당 5~6명은 많지도 적지도 않고 어울려 놀거나 게임, 학습활동 등 모든 면에서 교육상 적당한 인원이라는 것이다.

학교 살리기에 있어 강 교장은 무엇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통이 되면 배려도 사랑도 다 아우를 수 있다. 소통을 거친 사랑이 조그만 씨앗으로 퍼져간다면 반드시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고 믿는다. 학부모들에게도 뒤에서 얘기하지 말고 나에게 바로 말해 달라고 했다. 말을 끄집어낸 순간 그 일은 50% 해결이 된 거다. 그것은 교사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좋은 교육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그는 우선 (사랑의) ‘매’를 언급했다.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고 ‘학력만 높이면 좋은 선생’이라는 생각에 매도 많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애들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때부터 함께 동화도 많이 읽고 애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매 없는 게 참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임한 지 두 달째, 위림초의 구세주가 된 승마특성화교육에 대해 강 교장은 먼저 진로 측면을 강조했다.
“진로라는 게 어릴 때의 경험이 중요한데, 승마가 진로교육에도 아주 좋다. 요즘은 승마 때문에 전학 온다는 학생도 있을 정도다. 말을 타봄으로써 얻는 성취감과 발산, 그 외에도 자세교정 등 여러 가지에 좋은 것은 입증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우리 학생들 참 행복한 것 같다. 도시에선 개인과외로밖에 접할 수 없는 승마를 (이런 시골학교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위림초는 또 2013년 함양교육지원청 다문화가정자녀교육 지역중심학교로 지정됐고, 다양한 방과후프로그램과 맞춤형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옥임 교감은 “단소, 난타, 축구 등 동적인 활동과 논술, 원어민영어 등 학교에서 지원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9강좌로, 학교 규모에 비해 다채롭다. 다문화 자녀의 경우 언어와 문자 습득 등의 한계 때문에 학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교사들이 별도의 개인지도에 나서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특성화교육과 프로그램은 위림초의 빼어난 입지적 조건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학교 반경 1~2km 안에 천연기념물 상림, 승마장, 골프연습장, 수영장과 헬스장 등을 갖춘 국민체육센터, 국궁·축구·테니스 등 구기종목을 망라한 종합운동장, 공연과 체험·전시·강연 시설을 고루 갖춘 문화예술회관과 사회복지관, 박물관 등 문화·체육 인프라가 놀랄 만큼 즐비하다. 거기다 대규모 스포츠파크도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며 2020년 산삼엑스포를 위해 상림을 중심으로 많은 문화관광 관련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모두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안쪽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이토록 완벽에 가까운 교육 인프라를 갖춘 학교는 흔치않다.

▲ 학생들이 도예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미션…‘시골 학교 부활의 모델로’
앞으로 학교 운영에 대해 강 교장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안팎이 충실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우선 전임 교장선생님이 승마라는 큰 타이틀을 걸어놓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잘 유지 발전시키고, 대외적으로 학생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위림’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눈여겨볼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학교 내실 다지기가 중요하다. 폐교 분위기 때문에 지원을 못 받다 보니, 시설이 90년대에서 멈춘 것 같다. 교육청 지원이 절실하다. 열악한 면이 아직 많지만 적정한 규모라 공부 여건이 좋다. 학습과 특성화교육활동 등 학습 여건 조성에 최대한 주력할 생각이다.”

전국적으로 폐교 위기를 극복한 학교들의 사례를 보면 차별화된 특기적성교육이나 방과후·맞춤형교육 등을 통한 ‘아이들의 행복’과 학부모, 주민 등의 협력에 답이 있는 듯하다. 교육의 질은 학생 수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시키느냐에 관건이 있다는 말이다.

위림초등학교는 이정구 교장 재임 4년 동안 승마의 교육적 가치와 효과를 극대화해 회생의 틀을 다졌다. 이제 바톤을 넘겨받은 강은희 교장이 승마에 더 탄력을 붙이고 안팎으로 내실을 다진다면 탄탄한 미래가 열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노력 덕에 위림초의 ‘네임 밸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점은 더욱 희망적이다. 폐교 위기의 학교가 천혜의 교육환경과 교육의 질 향상으로 선망의 대상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농촌지역 학교 재생의 모델로 부활해 앞으로 펼쳐질 위림초등학교의 행보에 기대와 애정어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말미에 강 교장은 “맑은 물이 흐르는 위천과 상림을 앞마당으로 가진 우리 학교, 그리고 한창 피어나는 새싹과 연산홍들이 우리 아이들처럼 너무 예쁘다. 이 아름다운 자연처럼 심성이 고운 아이들이 되고, 모두 한가족처럼 어우러지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향한 강 교장과 교사들의 애정이 아름다운 자연에 안긴 위림초등학교에서 어떻게 꽃피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함양/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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