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
꽃이 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4.24 19: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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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시인
 

개표가 끝난 14일 날 저녁 귀신이 보인다는 지천명을 넘어 이순으로 내려서는 열여섯 명의 늙지도 젊지도 않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레 선거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저런 뒷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내 한 사람이 정치이야기는 하지말자. 우리나라 정치는 누가해도 마찬가지라며 말을 끊었다.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잠시 후, 한 사람이 정적을 깨며 말하기를, 왜 그렇게 말하느냐? 이런 자리 이런 모임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를 못한다면 우리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해볼 것이냐? 우리가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하고 그동안 선거에 참여를 해왔기에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가 이만치라도 나타난 것이 아니겠느냐? 어차피 우리에게는 남의 일이긴 하다만, 이런 자리에서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부담 없이 서로가 할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서야 나도 곁을 들어 새겨들을만한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가 촌구석에서 무지렁이로 땅이나 파먹으며 하늘만 쳐다보며 한 평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우리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 사이 같은 이런 모임에서는 마음 편하게 이런 이야기를 해버릇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거들었다.
20대 국회의원선거는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누구도 이렇게 투표를 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되어야만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구나 싶게 나왔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정치권에서 헤아려볼 수 있을 만큼은 결과로 보여주며 속내를 드러냈다.

유권자들은 또 4년을 기다리며 속이 쓰리고 아파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이 되고 안 되고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당선이 된 사람을 찍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뿐이고, 낙선한 사람을 찍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직은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 당선자의 생각이나 정책도 낙선자의 정책이나 생각도 전부가 옳고 전부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정책을 내가 가지거나 가지지 못했을 뿐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증세를 해서 복지를 하든 감세를 해서 복지를 펴든, 지금의 국가경제 정책을 성장에 중심을 두든 부의 재분배에 중점을 두든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고 이번에 표로써 말을 한 것이다. 다만 그러한 명분을 걸고 나라를 위해서 유권자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선거운동 때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만 몰려다니는 것처럼 보이며 왜 그 모양 그 꼴이 되고 마느냐? 에 대한 강한 질책의 뜻을 나타낸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라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꽃이 지고 있다. 눈을 들어 머언 산을 바라본다. 살펴보면 푸른색이나 녹색도 천차만별이다. 당선된 국회의원 300명도 이렇게 개인별로는 따져보면 각양각색일 것이다. 하지만 모여서는 부디 하나의 산 하나의 봄날, 하나의 여름산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를 우리는 희망할 뿐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分明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 철/激情을 忍耐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洛花...../訣別이 이룩하는 祝福에 싸여/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綠陰과 그리고/멀지 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向하여//나의 靑春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訣別,//샘터에 물 고이 듯 성숙하는/내 靈魂의 슬픈 눈”
평거동 분수대 공원에 가면 이형기시인은 그의 시 <낙화>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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