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성숙
나이와 성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4.25 18:4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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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사람에 따라서 성숙은 나이와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늙어갈 따름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경험을 많이 해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성숙해지지 않는다. 고로 세상을 바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환상 속의 세상을 깨야 한다.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 하나는 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숙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어갈 뿐 성숙하지 않는다. 성숙해지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투시한다는 얘기다. 늙어가는 사람이 노회(老獪)해지는 것은 많이 보았어도 지혜(智慧)로워지는 것은 그다지 보지 못했다.

늙음과 성숙은 차원이 전혀 다른 얘기다. 속담에 ‘늙은 개는 공연히 짓지 않는다’도 있고, ‘늙은 말, 콩 다 달란다’도 있다. 전자는 경험이 많은 사람은 쓸데없는 짓을 않는다는 성숙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늙어갈수록 탐욕이 강해지는 것을 말한다.

왜 성숙해질 수 없는 것일까? 한 가지로 요약하자면 환상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환상 속에서 살다가 사라진다. 평생 환상을 깨부수지 못하는 것이다. 환상은 실재가 아니다. 환상 속에 사는 것은 실재를 보지 못하고 살다 죽는 것이다. 실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나 강렬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현실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현실을 집어넣는다.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편견과 아집과 탐욕과 어리석음이 잔뜩 끼어 있다. 마치 꿈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세상 사람들 중 반은 깨어 있고, 반은 꿈꾸는 상태다. 깨어 있는 반마저도 각성된 삶이 아니라 비몽사몽(非夢似夢) 중에 사는 삶이다. 그들이 판단하고 주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환상 속의 일이다. 환상에 젖어 사는 것은 실재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들의 삶은 더 이상 실재라 할 수 없다. 실재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가 없다. 세상을 그저 흐느적거리며 살다가갈 뿐이다. 뿌연 안개 속을 헤매다 지쳐버린 도로 위의 너구리와 같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너구리 말이다. 너구리같은 사람이 세상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성숙한 소수가 아니라 늙은 다수 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방향이 올바르다고 믿고 있다.

더구나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도처에 깔려 있다. 경쟁심, 모방, 분노, 시기, 질투, 탐욕, 아집, 소유욕, 자기과시, 편견 등 다양한 부정적인 에고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태도 그리고 편견과 아집이다. 첫째, 탐욕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채워질 수 없는 욕심 덩어리인 탐욕 때문에 수많은 대체물을 획득해도 항상 불만족스럽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영역에 집착한다. 그 외의 것에는 둔감해진다. 둔감한 사람이 사물과 사태의 본질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민감한 사람만이 진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성숙해진다. 둘째, 대다수의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판단한다. 다른 삶의 방식은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간혹 서로 이해할 때가 있지만 순간이다. 아니면 그리 중요치 않은 범위 내에서 한정된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아집이 없다. 사태의 흐름을 주시하고 거기에 따라갈 뿐이다. 셋째,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편견이 눈과 귀, 나아가 삶을 가로막는다. 편견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진리를 볼 수 없다. 어떤 진리에도 도달 할 수 없다. 그래서 눈과 귀가 여러 방면으로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미리 결론을 짓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태의 흐름을 무심한 상태에서 지켜보아야 한다.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태도 그리고 편견과 아집은 사람들의 성숙을 가로 막는 세 가지 독이다.

노예 신분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했던 로마제정시대의 에픽테토스가 한 말이 절실하게 들린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유롭지 못하다’ 제때 익지 못한 설익은 과일이 독성을 품듯이 어른들의 미성숙에는 악취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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