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찰이언(好察邇言)
호찰이언(好察邇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02 18:5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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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본래 ‘言〔말〕’은 음파를 나타내는 기호〔三〕와 입 구(口)자가 위 아래로 배치된 글자인데, 입〔口〕이 아래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곧 ‘言’은 아래에 있는 사람의 말이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그린 글자이다. 그러니 말이 통한다는 것은 아랫사람의 말이 윗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뜻한다. 임금이 아래의 이야기를 잘 들어서 백성들의 사정을 잘 알 수 있게 하려면 언로(言路)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개언로장(開言路章)’의 취지이다. ‘개언로장’은 태조가 즉위하고 난 뒤에 정도전(鄭道傳)이 태조에게 바친 노래로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문덕곡(文德曲)〉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임금에게 옥(玉)이 있다. 누구에게 옥을 다듬게 할 것이냐? 임금이 직접 다듬을 것이냐, 아니면 옥을 다루는 전문가에게 맡길 것이냐. 임금이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한다. 그러자 맹자가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임금에게 나라가 있다. 그럼 나라를 누구에게 다스리게 할 것이냐, 옥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처럼 나라를 현자(賢者)에게 맡겨야 하는데 임금이 직접 다스리려고 하니, 이는 나라를 옥보다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맹자의 이야기는 임금이 현자의 말을 듣고 나라를 다스리면 왕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임금이 꼭 현자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임금은 자신의 현명함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현자들의 말을 듣는 사람인데, 그렇게 하려면 언로를 열어야 한다. 임금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시대에 언로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개언로장’의 내용은 이렇다. 법궁유엄심구중(法宮有嚴深九重): 나라를 다스리는 궁궐이 구중궁궐보다 더 깊으니. 일일만기분기총(一日萬機紛其叢): 하루에 수많은 일을 다 다스린다. 요득민정통(要得民情通):군왕이 백성들의 사정을 잘 듣고자. 개언로달사총(開言路達四聰): 언로를 열어 사방에서 듣는 것을 이루셨다. 개언로군불견(開言路君不見):언로가 열려 있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아후지덕 여순동(我后之德 與舜同): 우리 임금의 덕이 순임금과 같으시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것처럼 순임금이 순임금이 된 까닭은 ‘호찰이언(好察邇言)’, 곧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지금 한국 사회는 주류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 있어서 낮은 사람의 말을 전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 또한 개혁의 대상이 아닐까 한다. 정도전이 썼다고 하는 태조의 ‘즉위교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홀아비, 과부, 고아,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을 일컬어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고 하는데 왕도 정치를 베풀 때 가장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돌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구휼(救恤)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라” 이 내용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따왔다고 불 수 있다. ‘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 하(下)〉편에 보면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왕도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맹자의 대답은 이렇다. “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홀아비〔환: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부〔과:寡〕’라고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홀로 사는 사람〔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 없는 것을 ‘고아〔고:孤〕’라 한다.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가난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이다. 문왕께서 왕도 정치를 펴실 때 이 네 부류를 먼저 보살폈다” 여기서 ‘환(鰥)’은 본디 물고기의 일종이다. 홀아비는 근심과 걱정 때문에 밤에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물고기와 같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세 부류, 곧 과부, 홀로 사는 노인, 고아가 편히 잠든다는 뜻은 아니다.‘주역(周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 백성들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그들을 겁줄 수는 없다. 지극히 어리석지만 아무리 지혜롭다 하더라도 속일 수 없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이 승복하고 얻지 못하면 백성들이 떠난다. 떠나고 나아가는 사이에 호발(毫髮:아주 작은 것)의 차이도 용납할 수 없다”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정치권에서 잘 받들어 자만하지 말고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면서 부모처럼 우러러보게 하면 즐거움을 길이 누려서 위태롭거나 망하거나 뒤집히거나 실추되는 재앙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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