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처럼’ 고인에 마지막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해
‘내 부모처럼’ 고인에 마지막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해
  • 합천/김상준기자
  • 승인 2016.05.11 18:42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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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원 출신 장례지도사’ 합천고려병원 윤재호 장장

 
가족과 장례절차를 상담하고, 장례용품 준비부터 시신관리, 장례식 주관 등 장례에 관한 절차를 관리하는 장례지도사는 우리사회의 여러 직업 가운데 특이한 것으로 손 꼽힌다. 일반인들은 장례지도사라고 하면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직업에 비해 궂고 험한 일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직업을 군의원까지 지낸 사회지도층 인사가 직접 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바로 합천고려병원 장례식장의 윤재호(55) 장장이 주인공이다. 윤 장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합천군의회 재선 의원을 거친 후 장례지도사로 5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합천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으며, 틈 나는대로 봉사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고인을 내 부모처럼 모시는 윤 장장을 만나 보았다.  <편집자주>
 

다음은 윤재호 장장과의 일문일답.

-병원 장례식장 일은 언제부터 했으며, 하루 일과를 소개하자면
▲지난 2011년 2월 28일부터 합천고려병원(이사장 주청자 원장 김강훈 정형외과 전문의) 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와 장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영안실에 가서 제일 먼저 고인(故人)한테 인사하고 다음에는 빈소가서 고인 한테 향을 피우고 술 한잔 올리고 합천읍 연호사를 참배하고 하루일과를 시작해 장례식장 화장실과 주차장 청소를 한다. 이어 장례출장 준비를 하고 발인제, 노제, 평토제 등 진행과 축문을 낭독하고 고인을 산소 또는 납골당에 ‘내부모님 같이 정성껏 잘 모셔주고’ 양복 바지등에 흙칠갑이 되어 장례식장에 오면 다른 고인 입관과 저녁 상식 올리고 하는 일이 매일 수례바퀴처럼 되풀이되는 일과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재산 등 가정에 약간 화목이 안될 경우에는 큰 며느리가 오면 다른 며느리나 여형제간에 사이가 안좋은 경우가 있는 유족에게 장례지도사로서 유족에게 사정해 부모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하고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고 화해를 시킬 때 보람을 느낀다.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서 저승 갈 때는 호주머니 없는 수의 한벌 입고 가는데 인간은 크게 욕심을 버리고 순리되로 사는 것이 진리이다.

▲ 장례에 관한 절차를 관리하는 윤재호 장장.
-장례지도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언론인, 합천군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군민들과 향우들을 상대로 생활했고 장례지도사는 한마디로 이승에서 저승 가시는 분 상대를 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이 있다. 가정에서 불의의 사고 등으로 돌아가시는 분은 자식이 직접 손으로 부모님 눈을 감겨 주면 눈을 감는 경우도 많다. 이승에서 못한 것 저승에 가실 때 용서를 구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텐데 장례지도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합천농협 조합장 출마로 군의원 5대 임기 11개월을 못채우고 사직하고 야인생활을 할 때 어머니(당시 85세)몸이 불편에서 합천병원에 입원시키고 2010년 8월부터 2011년 1월 3일 주야로 병간호 하면서 두문불출 하며 내인생을 되돌아보게 됐다. 당시 장례지도사가 고인 시신을 모시고 장례식장 이송하는 것을 보고 장례지도사가 앞으로 내가 할 직업이라고 결심했다. 경상대 평생교육원 장례지도자반에 입학해 6개월 수강해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군의원 두번 하면서 어려운 경제사정, 그리고 가정은 힘든 것은 현실이다. 한 읍면 군의원 1명 선출할 때 그 당시 합천군의회 3선의원으로 의장이신 이민택 의원님이 아름다운 양보를 해주시고 지금도 그분에게 감사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고향 대양면 안금리 주민과 대양면민, 대양면 향우님에게  다시한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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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군의원서 장례지도사로 
5년째 고인을 내 부모처럼 모셔 
어머니 병간호하면서 직업 결심

“합천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
‘윤발발이’ 별명…천성 타고나
매년 고향에 경로잔치·봉사도  

합천군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군민들 위한 납골당 건립 추진

화장시설·봉안당 개선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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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원까지 한 사람이 험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주위 분들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늦게나마 집사람(박정선), 아들(봉근), 딸(근영)이 새식구 며느리(김은옥) 등 가족만 생각하면서 장례지도사로 합천고려병원에서 ‘처음 같이 내부모님 같이 정성껏 잘 모시겠다’는 신념으로 고인에게 극락과 천당에 가시는데 마음으로 두손 모아 빌고 있다.  

▲ 윤재호 합천군의원 시절 의회 발언 모습.
-군의원에 출마하게 됐던 계기는
▲기자로 활동하면서 새벽 3시부터 신문을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고 꼭 아침 식사 가는 집이 있다. 현재 하창환 합천군수(당시 합천군청 지역경제과장) 집이었는데 할아버지(당시 96세 별세)가 자기 아들 하창환 군수보다 윤재호를 더 많이 챙겨주고 사랑을 해주었기에 오늘의 윤재호가 군의원 두 번 할 기회를 주신 것도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정심회 회장인 정경선 형수님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역을 위해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군의원 출마 선언을 하고 이민택 의장님이 조건없이 아름다운 양보를 해주셔서 당시 38세의 어린 나이에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재선 의원으로서 산업건설, 복지행정위원장까지 지내면서 누구보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평을 받았는데
▲초선때는 이른 새벽부터 16개 마을을 오토바이를 타고 비가 오면 우의와 장화 싣고 다니면서 주민들과 대화을 하고 하곡, 추곡수매 때는 정부수매 푸대를 들어주고 주소와 성명을 푸대에 적어주고, 농민들이 특등 많이 등급을 받으면 막걸리 한잔이 꿀맛으로 느끼며 의정활동을 했다. 재선때는 내 고향도 아닌 합천읍, 용주면, 대병면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합천 초계면 출신인 김혁규 전 도지사와의 인연으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군민 일부는 빨갱이라고 비아냥대는 분도 있었다. 당선후에 모든 일을 처음처럼 주민 상대로  밤낮없이 마을을 다니면서 의정활동을 열정적으로 주민과 대화를 하면서 주민 복리증진을 최선을 다했다. 지역구내의 아주머니 택호도 다 알 정도였다.

-군의원 시절 가장 보람을 느낀 의정활동을 꼽자면
▲제가 적극 나서 전국에서 학교 무상급식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당시 심의조 군수님과 집행부에 건의하여 마을 교량 한건 시행하지 말고 합천군의 백년대계 2세 건강을 위해서 집행부에서 결단을 내려 달라고 했다. 당시 기획실장이던 하창환 현 군수, 예산계장인 이인도 재무과장, 예산계 차석인 공기택 군수 비서실장 등이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어 감사하다. 도내에서 최초로 의원발의로 새마을지도자지원조례를 제정했고, 자연마을까지 경로당을 건립할 수 있게 집행부에 5분 자유발언과 군정질문 통해 촉구해 현재 합천군내 520개마을에 경로당을 건립해 농촌에서 고령화시대 노인들이 공동체로 경로당에서 점심과 저녁은 해결하고 있다.

-다시 정치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현재는 생각하지 않는다. 합천고려병원 장례식장 장례지도사로서 마지막 고인(故人)이 되시는 군민에게 사랑과 봉사로 최선을 다하겠다.

-기자로도 다년간 활동했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4년7개월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합천군 관내 심장병, 신부전증, 결손가정, 등록금이 없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 등의 사연을 기사화 하여 도움을 주었고 각종 희귀병, 어려운 학생들에게 7억6000여만원을 모금해 37명의 수술과 등록금 마련에 일조했다.

-고교 재학시절 4-H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전국대회 입상 등 큰 성과를 낸 것으로 아는데
▲합천종고 임업과에 입학해 축산포 연구생으로 집에서 부내와 한우사육, 밤나무 일반농사, 부모님과 같이 등교 하기전에 일을 했다. 학교에서 4-H 및 영농학생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교육감, 농업기술원장, 도지사, 농촌진흥청장, 농림부장관, 내무부장관 표창 등 수차례 수상과 경남4-H경진대회 과수접목 부문 1등을 차지해 전국대회인 중앙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 영광을 안았고, 경남4-H대상(10마력 경운기)남자부분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위안잔치를 수년째 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언제나 소중한 내고향 안금 주민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분에 장례식장에서 고생해서 번 작은 돈으로 경로잔치를 하고 있다. 앞으로 제가 힘 닿는데까지 경로위안잔치 등 고향주민들과 같이할 생각이다.

-합천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천성을 그렇게 타고 난 것인가
▲제가 합천군에서 부지런한 사람중 5명 안에는 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윤발발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른 아침 닭장에서 먼저 나온 닭이 먹이를 많이 주어 먹고 건강하겠지만 나 한테는 부모님 한테 받은 자랑스런운 재산이고 천성이다.

-끝으로 합천군의 봉안당 개선을 비롯해 타 시군에 비교해 장례문화의 개선점은
▲지금도 화장율이 합천군도 70~80%이상 되는데 화장시설이 없고 봉안당이 부족하다. 특히 합천군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산청군 본향원은 전국에서 으뜸가는 시설로 납골당이 현재 2동 건립해 산청군민에게 15년에 17만5000원(관리비 포함) 타시군은 15년 67만5000원(관리비 포함)에 분양되며, 특히 산청군민은 매장도 할 수 있다. 합천군에서도 산소가 없는 군민들에게 저렴한 가격과 안정적인 납골당에 모실 수 있도록 국도비를 지원받아 하루빨리 납골당을 건립할 것을 군민의 한사람으로 건의한다. 합천/김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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