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6.06 19:02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로버트 레드퍼드가 감독을 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1992)의 주제곡을 보면 「강물이 흘러가듯 인생도 흘러간다. 강물이 굽이치듯 삶도 굽이친다. 흐르는 강물은 흐르는 시간에 다름 아니다. 흐르는 강물이 너절한 것들을 씻어버리듯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은 빠르게 삶을 삼켜버린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시간이 삶을 삼켜버리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바로 ‘망각(忘却)’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삶에서 이 망각이란 것은 없어서는 안 될 안정제이다. 잊어야 할 것들을 잊지 못하면 그 또한 불행이다. 아픈 상처, 쓰라린 기억들을 움켜쥐고 있어봤자 소용없고 부질없는 짓이다. 반면 황홀한 성취와 달콤한 찬사도 언제까지나 쥐고 있으려 하면 안 된다. 이런 것들을 오래 쥐고 있으면 썩게 된다. 이런 것들도 적당한 시기에 흘려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의 고수이다.

가끔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거기에서 나는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무엇이든… 본래‘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유대 경전 주석서인『미드라시』의 ‘다윗 왕의 반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細工)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이에 세공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때 솔로몬이 일러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였다.

모진 훈련을 견뎌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세계 정상에 올랐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훈련의 모토, 삶의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한다. 진정한 승자는 정상 등극의 기쁨과 그 환호와 환희의 순간 역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환희와 환호를 강물처럼 흘려보내지 않으면 다음번의 승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 환희와 환호에 취해 더는 나아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운동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신맛, 쓴맛, 단맛을 다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으로 깨닫고 가슴과 뇌리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이다. 그것은 숙명처럼 여기고 굴복하는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오늘의 성공과 성취마저 지나쳐 갈 것이기에 거기에 취하지 않고 더욱 스스로를 잡아당겨서 내일의 승리를 준비하고 기약하겠다는 성찰이요 자신의 나태함과 안주함을 경계하는 서슬 퍼런 삶의 절규이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승리에 오만하지 않기 위해 다윗 왕이 자신의 반지에 새겨놓고 몸에 지녔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이 말은 결국 흐르는 강물의 가르침이 아닌가. 권력도 명예도 부(富)도 사랑도, 또한 실패와 치욕과 가난과 증오도 모두 지나가리라! 라는 것을 흐르는 강물은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가수 임재범의 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사에도 「눈물도 초라함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대목이 세 번이나 나온다. 류귀숙이 쓴 수필집의 제목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며, 김별아의 소설 또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인간이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현재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릴 때 그럴 가능성은 더 커진다. 또한 얼마를 가졌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삶의 결과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하지 않았는가. 십 년 가는 권력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을 통해 오늘의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이처럼 인간의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한 가운데 있게 되면 그것을 잊게 되는 것 같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저승에서 만났는데 이 회장께서 “정 회장 오랜 만이오 우리 막걸리나 한 잔 합시다.” “이 회장님 돈을 한 푼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이승에서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있구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