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상소(持斧上疏)
지부상소(持斧上疏)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18 18:3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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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지부상소(持斧上疏)


사냥을 중지하시고 정사를 돌보십시오. 옛날 임금은 하루 사이에도 만 가지의 일을 보살피되 깊이 생각하고 멀리 걱정하였으며, 그 좌우에는 올바른 선비를 두고서 정직한 말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부지런하여 감히 편안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야만 덕(德)의 교화가 순박하고 정치가 아름다워 국가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놀이에 미친 사람이 아니면 사냥꾼과 더불어 매나 개를 풀어놓고 꿩이나 토끼를 쫓으며 산과 들을 달리면서 스스로 그칠 줄을 모르시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노자(老子)가 이르기를 말을 달리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미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유념하옵소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절대 권력의 왕을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한 칼날 같은 선비의 기상이 섬뜩하기 까지 하다.

위 내용은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신라 진평왕(眞平王:재위579∼632) 때 김후직(金后稷)이란 사람이 왕에게 올린 최초의 상소로 상소이다. 왕은 그의 상소를 듣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세 아들을 불러놓고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죽게 되었으니, 내가 죽으면 왕이 사냥을 다니는 길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 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가는데 어디선가 “가지 마십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시종에게 물어보니 이 소리는 김후직의 묘에서 나는 소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임종할 때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을 전해주었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뉘우쳐 다시는 사냥을 가지 않고 정사에 힘썼다고 한다. 김후직의 상소는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올린 상소로서 후대에 충성스러운 직간(直諫)의 모범이 되었다. 그가 죽어서까지 왕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무덤 속에서 했다는 충간은 ‘묘간(墓諫)’이라고 하여 선비들의 기림을 받았다. 그의 묘는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국도 옆에 지금도 남아 있다.

군왕은 마땅히 경술(經術)을 좋아하여 날마다 유신(濡臣)과 더불어 경사(經史)를 토론하고 정치를 토론하여 그 이치를 묻고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기에도 겨를이 없는 터인데, 만고(萬古)에 걸쳐 변할 수 없는 윤상(倫常)을 무너뜨림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군왕이 나라의 흥망을 가늠하는 것은 오직 인(仁)과 불인(不仁)에 달려 있습니다. 하루빨리 마음을 돌이키소서. 지금으로부터 708년 전 고려 충선왕 1년(1308년), 47살인 우탁(禹倬:1263∼1342)은 관리들의 잘못을 따지는 감찰규정이란 자리에 있었다. 충선왕은 그 해 8월에 즉위하여 10월 24일에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이었던 숙창원비와 눈이 맞아 자주 들르게 된다. 이것은 부친의 부인을 범하는 것으로서 유교의 윤리로는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문을 들은 우탁은 상복을 입고 그 위에 거적을 메고 도끼를 든 채로 대궐로 들어가 상소문을 올렸다. 이 같은 상소문을 올리자 왕의 곁에 있던 신하는 왕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상소문을 펴고도 감히 읽지 못했다. 그러자 우탁은 호통을 치며 “경은 왕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로서 그릇된 점을 바로 잡지 못하고 악으로 인도하여 지금에 이르니 경이 그 죄를 아는가?”하고 꾸짖었다. 이에 신하들이 놀라 벌벌 떨고, 왕도 부끄러워 다시는 선왕의 후궁과 통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부상소’란 글자 그대로 도끼를 들고 가서 왕에게 드리는 상소로서, ‘내 말이 틀리다면 도끼로 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이니 목숨을 걸고 상소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칠 테니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하자 대궐 밖에서 사흘 동안 엎드려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고 청했던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의 ‘지부상소’,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반대한다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4∼1907)의 ‘병자지부상소’, 도 있었다. 조(兆)단위 분식 회계를 하여 곪을 대로 곪은 조선업, 무고한 희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 2천명의 검사와 5천6백의 수사관을 거느린 검찰고위 간부라는 카는 사람이 브로커에게 취해서 뇌물이나 받아먹고 내부 정보나 흘려주다가 들통이 나니 요리조리 거짓말이나 둘러대는 법조 비리의 말세에 코를 막고 귀라도 씻어야겠다. 한양에서 불어 보는 바람에 왜 이렇게도 구린내가 나노! 에이 퉤퉤…나무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효도는 처자 때문에 시들게 된다. 는 옛말이 귓전을 스친다. 이 사람들아 5천만 민초들 앞에 엎드려서‘지부상소’라도 좀 해 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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