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하동군 생활개선회 김인순 부회장
[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하동군 생활개선회 김인순 부회장
  • 배병일기자
  • 승인 2016.07.20 15:22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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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농촌 사랑으로 행복한 삶 개척하다

과거 농가의 여성은 농업 생산 보조자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농업의 범위는 농산물 생산(1차, 2차)에 그치지 않고 농산업이 확대됨에 따라 여성들도 농업의 생산 주체로 등장하게 됐다.

농업의 6차 산업을 실현하는 여성농업인은 농업·농촌이 직면한 과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희망으로 부상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농가인구 중 여성이 51.1% 농업 주종사자 중 여성이 53%를 차지하는 등 농촌의 성장 동력으로써 여성농업인의 역할 및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원장 강양수)는 여성농업인을 전문 농업 경영인력으로 육성을 통한 여성농업인의 직업적 지위 및 경영능력 향상, 맞춤형 지원을 통해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창조성·전문성·리더십을 겸비한 여성농업인 육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지에서는 경남 여성농업인 생산 현장을 소개하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우리농촌에서 여성농업인이 농업 생산의 주체로서 그 역할과 향후 전망 등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여성 농업인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 하동군 생활개선회에서 ‘손맛이 좋은 회원’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인순 부회장.
병환 중 시어머니·줄줄이 시동생 농부의 아내로
시련은 인내로 극복, 희망은 행복한 인생 밑거름
생활개선회 ‘손맛이 좋은 회원’으로 정평 나있어

◆내 인생의 시작
‘임금님 진상품’으로 널리 알려진 대봉감의 주산지인 하동군 악양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농촌여성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김인순 생활개선회 부회장이다.
땅거미가 조용히 내려깔린 시골길의 비포장도로를 덜컹대며 달리는 막차 버스 안에서 막내 외삼촌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어렵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시어머니는 건강이 더 악화되어 결혼한지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돌아가시고 시동생들은 줄줄이 중·고·대학생들이고 군대 간 동생과 함께 네 명 모두를 책임지다 보니 앞이 캄캄했다.
나는 농촌생활의 모든 일들이 익숙하지 않았고 첫 아이를 임신 중이라 몸이 허약해 갔다. 그해 가을 수확을 앞두고 태풍이 닥쳐 신종 23호 벼가 온 논바닥에 다 떨어져 버렸다. 수확을 모두 망쳐버린 것이다.
농촌생활이란 한번 농사일을 망치면 허리가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줄줄이 들어가는 학비에 태어나는 아이까지 식구는 늘어나니 옆을 돌아볼 틈이 없이 살았다. 그러다보니 큰 딸은 유치원도 보내지 못해 항상 가슴 아팠다. 하지만 슬프다고만 있으며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하동군 생활개선회 회원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위해 손수 짠 털보자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부부의 열정과 끊임없는 연구, 노력이 성공비결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산에 고사리 채취를 위해 갔다가 취나물이 눈에 띄어 뿌리 채 다 밭으로 옮겨 심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웃에서 이웃으로 한집 두 집 늘면서 장사꾼도 들어오고 언젠가 모르게 너도 나도 취나물 붐이 일고 말았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세월이 가다보니 시동생 네 명을 다 결혼시키고 우리 살림도 조금씩 늘어나고 딸 셋만 키우다 막내딸과 일곱 살 터울로 아들도 낳아 천하를 얻는 듯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던 2000년 가을 벼 수확을 한 다음 남편이 녹차를 심자고 했다. 논 5280㎡에 관리기로 녹차 씨앗을 심고, 산 6600㎡에 호미로 혼자서 다 심었다.
녹차 심은 사이사이에  논에다가 취나물 씨앗을 뿌렸다. 어린 취나물 밭을 매고 가꾸어 수확을 앞두고 갑자기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마저 쓰러지면 안 되지, 남편을 살려야지, 오로지 남편 간병에만 열중하다보니 딸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축하한다는 말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논에는 취나물을 수확해야 하는데 일꾼들만 남겨놓고 남편이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솔잎즙을 만들기 위해 솔잎을 따러 산으로 갔다. 첩첩 산골이라 하늘도 보이지 않는 소나무밭에서 소나무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낮에는 취나물 캐랴 밤에는 남편 시중에 2시간 밖에 잠을 못자니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남편의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어 갔지만 농사일은 도와줄 수 없어 내가 도맡아 해야 했다.

◆생활개선회원 활동으로 열정 있는 농촌여성

천성이 부지런하여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30여년간 생활개선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회원들 사이에 ‘손맛이 좋은 회원’으로 정평이 났다.
친정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옛 손맛과 농업기술센터와 농업기술원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전통식문화 교육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농업기술센터에서 조리사자격증 획득 무료교육이 있다고 해서 신청했다.
일꾼들과 녹차를 따다 10km가 넘는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센터까지 다니면서 교육을 받아 조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딸 셋 학비 대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두꺼운 얼음을 깨고 미나리 작업도 해봤고 조리사 자격증 덕분에 아침 여섯시부터 저녁 열한시까지 교육장 식당 주방일도 해봤고 낮에는 들일하고 집안일과 소 마구간을 저녁에 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었다. 아픈 남편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사랑과 자식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았다.
논에 심어 놓은 녹차가 강바람이 차서인지 수확시기가 늦어 생각보다 소득이 낮았다. 남편과 의논 끝에 매화나무를 심기로 하고 신종 매화나무를 심었다. 2013년도 드라마 ‘허준’의 인기로 매실이 인기를 얻었다. ‘동의보감’에 조선시대 역병에 걸린 백성들의 치료약이었던 푸른 보약 매실 수확으로 소득을 많이 올려 동참한 사람들은 고맙다고 인사 전화가 종종 걸려왔다.

▲ 하동군 생활개선회 회원들이 친환경 재료로 고추장을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마음먹기 나름
세월은 흘러 딸들도 대학 공부를 마치고 하나둘씩 취직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큰딸이 결혼하겠다고 의견을 물었다. 결혼을 결정하고 날짜까지 받았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가. 딸 결혼 때 먹으려고 김치 담을 고춧가루 빻으러 갔다 마을 건강관리실 소득실 고추방아 기계에 손이 절단되고 말았다. 부산제일병원에 가서 2차에 걸쳐 이식수술을 했지만 장애 3급을 받았다.
두달 만에 퇴원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 바깥세상에서 부딪쳐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너무도 막막해 병원 옥상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달랠 길이 없었다.
두 달의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해 여름 생활개선회 회장직을 사퇴하려하니 회원들께서 반대하므로 어쩔 수 없이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보니 비록 불편하지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금조성 및 불우이웃돕기 김장을 위해 배추를 심기로 결정하고 소나무 묘목장을 운영하다 폐농한 논을 치워주는 조건에 무료로 얻어 2000㎡의 논에다 배추를 심기로 했다.
회원들과 산업계 계장 그리고 면장 모두의 덕분으로 600포기 배추는 높은 가격을 받고 성공리에 출하시켰다.
악양 대봉감은 지리산 자락의 맑은 공기와 섬진강 유역의 깨끗한 물을 먹고 자라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 매년 대봉감 축제 때 솜씨를 발휘하여 감 튀김, 감떡, 감묵, 감 샌드위치, 감 잼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했다.
생활개선회가 울타리가 되어주어 나는 다시 힘을 얻어 곶감사업도 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유난히 나무 심는 것을 좋아해 나도 모르게 나무 심는 것이 몸에 배 있었다. 남편이 쓰러지던 해에도 돌배 묘목을 심어 지금 한창 수확이 나온다. 남들이 돈이 될까 걱정해도 그 매화나무가 황금알을 낳아주어 아늑한 새 보금자리를 지어 주었고 아들딸 손자사위 오순도순 즐기며 놀다갈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환경에 변화가 오더라도 항상 인내하며 대처하는 방법을 생활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성공길이라 생각해본다.
남편도 농업기술센터와 인연을 맺어 24년이란 긴 세월을 농촌지도자 임원생활 했고 나도 남편의 절반인 12년의 임기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해에 나의 기고만장한 36년의 결혼생활을 뒤 돌아보게 될 줄이야. 앞으로 남은 인생은 농업과 농업기술센터가 평행을 이루듯이 아무런 시련 없이 행복한 평행선을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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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 - 정맹금 농촌지도사(하동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진흥과)
부부의 열정이 녹아있는 농산품 생산

하동군 악양면에 살고 있는 김인순 하동군 생활개선회 부회장은 누구보다도 농업과 농촌을 사랑하고 농촌생활의 어려운 환경 속에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개척한 여성이다.

그녀에게서 열정 그 자체가 느껴졌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어려움을 헤쳐 가며 다정다감하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은 시샘이 날 정도로 돈독하다.

김인순 부회장은 순수하고 정감 있으면서도 다소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대하여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평상시에도 하동군 생활개선회 군임원 활동과 각종 교육이나 모임에 참석하여 말없이 궂은 일에 앞장서 회원들에게 모범이 될 뿐만 아니라, 타고난 열정과 끈기, 부지런함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며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우리를 즐겁게 한다.

부부가 함께 작목 트렌드를 읽어 농사를 지으면서 앞으로 농업이 나아가야할 방향도 생각하고 작물을 선택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즐기며 할 줄 아는 농업인이다.

김인순 부회장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미소를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엔 이런 방법으로 대봉곶감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예전에는 이런 저런 애로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모습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는 노력으로 김인순 부회장의 꿈이 커다란 결실을 보게 될 그날을 그려본다. 배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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