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칼럼-무더위를 이겨내는 여름 한방차 제호탕
한의학 칼럼-무더위를 이겨내는 여름 한방차 제호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8.04 18: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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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권/산청 동의본가 한의원 원장
 

김종권/산청 동의본가 한의원 원장-무더위를 이겨내는 여름 한방차 제호탕


제호탕(醍醐湯)
                                                          최영년(崔永年)
년년척서태의방(年年滌暑太醫方)
백련오매백밀탕(百煉烏梅白蜜湯)
배사궁은여관정(拜賜宮恩如灌頂)
선향불양오운장(仙香不讓五雲漿)
해마다 더위를 씻어주는 어의의 처방
오매와 좋은 꿀을 백 번 달여 만든 탕
절하며 받은 임금님의 은혜가 정수리에 물을 부은 듯하고
묘한 향기는 좋은 술에 뒤지지 않는다

오늘은 구한말 최영년의 제호탕이라는 한시 한수로 칼럼을 시작해본다. 일 년 중 더위가 제일 기승을 부리는 이때 저마다 에어컨 또는 시원한 계곡과 바다로의 휴가로 더위를 피해보고자 하는데 우리 조상들이 이 무더위를 이겨내는 지혜는 어떠한 것이 있었을까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산과 계곡 바다를 찾아다니며 여유를 즐겼고 삼계탕이나 보신탕 같은 보양식을 먹으며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위가 막 시작되기 전의 절기인 단오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과 제호탕을 하사하여 더위를 무사히 잘 보내도록 격려하기도 하였다.
여름은 음식이 쉽게 상하기도 하고 우리 몸의 진액(津液)이 쉬이 소모되어 소위 ‘더위 먹는다’는 말처럼 배탈이 나기도 하고 입맛도 없고 식은땀이 나며 열이 나는 증상이 흔하다. 이럴 때에는 진액을 보충하고 소화기를 담당하는 비위(脾胃)를 조리하여 여름을 무사하게 보내는데 그런 효과를 내는 대표적인 약초가 바로 맥문동, 향유, 인삼, 황기, 매실 등이며 이를 주재료로 만든 음료가 바로 제호탕, 생맥산(生脈散), 향유차 같은 것들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제호탕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제호탕(醍醐湯)―동의보감

더위로 나는 열을 해소하고 번갈을 멎게 한다. 오매육을 별도로 가루를 내어 한 근. 초과(草果) 한 냥. 축사(縮砂)와 백단향(白檀香) 각각 다섯 돈[錢]. 달인 꿀 다섯 근. 재료를 잘게 가루를 내어 꿀에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인 다음 고루 저은 후, 자기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차가운 물에 섞어 먹는다.

그리고 향유차는 향유만을 달여서 물처럼 마시면 된다. 이 약재들은 주로 생진(生津:진액을 만들어 냄)하는 작용이 뛰어나고 오미자나 오매와 같이 맛이 신 것들이 많아 늘어진 기운을 수습하는 작용을 하며 황기나 인삼같이 기운을 보충해주고 땀을 수렴시켜 주는 효능이 있으며 향유, 사인, 백단향과 같이 방향성이 강해 소화를 돕고 여름철 쉽게 걸릴 수 있는 설사 등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 이런 사실들로 볼 때 여름철 건강유지법은 얼마나 우리 몸의 진액을 잘 보존하고 소화기능을 잃지 않느냐에 중점을 두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호탕의 ‘제호’는 우유나 양유를 깨끗하게 정제한 농축액이나 맑은 술을 말한다. 불교(佛敎)에서는 제호가 다섯 가지 맛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해지므로 불교에서 부처나 고승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을 때 ‘제호관정(醍醐灌頂 - 제호를 정수리에 붓는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제호탕과 관련된 유명한 야사가 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영의정 이덕형이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 재건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되어 자택에서 출퇴근을 못할 지경이라 대궐 가까이에 조그만 거처를 정하고 소실을 두어 식사 등의 수발을 들게 했다. 몹시 더운 어느 날 이덕형이 소실의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덕형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소실이 이 제호탕을 시원하게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덕형은 소실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 길로 나가서는 발길을 끊고 더 이상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 소실이 너무나 황당하여 이덕형의 지기인 오성 이항복 대감에게 가서 찾아가 고하니 오성 역시 의아하여 한음을 찾아가 그 연유를 물었다. 한음 이덕형 대감이 하는 말이 ‘내가 여름에 지치고 목말라 하는 것을 미리 알고 제호탕을 준비하니 어찌나 영리하고 기특한지! 그러나 지금 나라가 위급한 중에 한 계집에 빠져 큰일을 그르칠까 저어하여 마음을 굽힌 것’이라 하였다. 그 뒤 한음은 소실에게 꾸리고 살아갈 논밭을 몇 마지기 내어주고는 다시 찾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도 이처럼 제호탕 등의 여름철 한방 음료를 통해서 건강도 지키고 정신을 맑게 하여 무더위를 이겨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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