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풀도 울며 돌아가는 처서(處暑)
칼럼-풀도 울며 돌아가는 처서(處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8.23 18:52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

 
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풀도 울며 돌아가는 처서(處暑)

어느덧 여름 기운이 꺾이는 처서다. 풀벌레소리와 더불어 아침저녁 선선하고 해가 제법 짧아졌다. 풀들도 뻗어나기보다 씨를 맺는다.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고 하는 입추는 한참이나 지났지만,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한낮 최고 기온이 30~35℃를 넘나들며 무더운 날씨다.

처서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끼어 있는 24절기 중 하나로 8월 23일 무렵이다. 이때가 지나면 들에 있는 풀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거나 자란다 해도 그 정도가 미약하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이 시기가 지나면 사료용으로 목초를 베어 말리기 시작한다. 또 논둑의 풀도 깎아주고 산소의 벌초도 한다. 여름내 매만지던 쟁기와 호미도 깨끗이 씻어 갈무리한다.

올해의 최고 기온을 지난 12일 경북 경산시 하양읍의 40.3℃를 기록했다. 이제 한반도는 겨울이 있기에 아열대가 아닌 아열대성 기후다. 그렇지만, 이번 더위도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처서’가 되면 한풀 꺾인다고 하지만 여전하다.‘처서’는 어제인 양력 8월 23일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드는 절기로 여름 더위가 그치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 빨리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가을절기인 처서를 짚어 본다. 입추가 지나도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처서 때가 되면 사그라지는 이유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자리 즉 천구상의 태양의 궤도인 태양의 황경이 150도에서 15도 사이에 있기 때문인데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處暑)가 지나가면 모든 식물은 생육(生育)이 정지되어 시들기 시작하여, 풀이 시들고 말라 몸이 꼬이는 모습을 표현한‘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속담들은 처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됨을 알리는 말이다.

이렇게 처서(處暑) 15일간의 변화를 <고려사>에서는 5일씩 총 3후로 나눠서 기록을 적고 있는데. ‘초후’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차후’는 천지에 쌀쌀한 가을 기운이 돌며, ‘말후’는 논에서 곡식이 익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을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하다. 옛날에 농부들은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고 불렀는데,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처서에 비가 오면 그해 흉작을 면치 못한다고 생각했다.

맑고 강한 햇볕을 받아야 벼의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피우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 결국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으로는.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오면 십리 천석을 감한다’ 전북 부안, 청산에서는 ‘처서 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 라는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이 같은 속담은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처서 무렵의 마지막 더위는 까마귀의 대가리가 타서 벗겨질 만큼 매우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써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북한속담이 있다.

또한 처서 때에는 농사의 풍흉을 알아보려는 다양한 농점을 보는 풍습이 있는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농가에선 처서에 비가 오는 ‘처서 비’를 가장 달갑지 않는 ‘두려운 비’로 생각했다.

처서 풍습으로는 선조들은 이 시기에 습도가 높은 여름 동안 눅눅해진 책과 옷 등을 밖에 내다 말렸는데, 이런 풍습을 ‘포쇄’라고 했다. 옛날에는 습기에 취약한 한지로 고서를 만들거나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장기간 보존하고 싶은 물건들은 장마철이 지난 후 햇볕에 잘 말려주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보통 농부는 곡식을, 선비는 책을, 부녀자는 옷을 햇볕에 내다 말렸다고 한다.

산소의 벌초도 이 시기를 택하여 많이 하는데, 그 이유로는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은 누그러지고 찬바람이 불어 풀들이 성장을 멈추기 때문이다. 또 추석을 앞둔 8월 말 9월 초 사이에 벌초를 해야 성묘하러 갈 때까지 깨끗한 산소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 여름은 5월과 8월 평균기온 역대 최고, 40℃가 넘는 역대 최고 기온, 열대야, 폭염일 수 역대 최고 등등 전례없는 이상기후를 기록했다. 절기만큼은 정확했었건만, 이젠 절기마저도 제 정신이 아닌 듯하다.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 했으니 이 더위가 바로 문명사막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