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책임과 권리가 상응할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
칼럼-책임과 권리가 상응할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8.23 18:5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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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책임과 권리가 상응할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


불교는 자비(慈悲)행을 실천하는 종교이다. 자비란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고통을 감소시켜주며, 베풂을 동반하는 것이 자비언행이며 이타(利他)적 실천을 말한다.

자비심은 선한 삶을 지향하며 인간을 성숙시키는 정신적 자양분을 발생시켜서 바르게 살아가는 동력을 부여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이 덕 저 덕 해도 다 하늘 덕이다.

개인적 욕망을 배제한 이타적 행위는 바른 이론에서 바른 실천이 따르고,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우리 모두 포용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거듭해나가자.

마음자리에 고요함, 맑음, 평화, 연민심, 지혜로운 정신적 특질들을 수시로 키워나가자.

마음은 ‘무아’ 무상하여 잡을 수가 없다.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고 늘어지면 고정관념, 편견, 고집, 착각, 오해로 변질된다. 그러면 갈등, 고통, 미움과 슬픔, 우울증이 유발된다.

우리나라의 ‘사회지도층인사’들 중에는 상사 앞에서는 의붓어미 눈치 보듯 살피면서, 자기 업무수행은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대충대충 하면서 이권만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지도층인사란 그 시대의 정신적 가치를 주도해나가는 인물들을 말한다.

법조인, 교육자, 의사, 성직자등 이권에 초연하고, 늘 약자들 편에 서서, 절망의 순간, 마지막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다.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더니,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오히려 서로를 견제하며 자기만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매몰돼 있는 사람들도 있다.

자비심 고갈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일반인들보다 윤리의식이나 도덕관념이 희박한 경우도 많다. 물욕과 윤리상실로 사회정의와는 반대의 길로 나아가며 개인의 치부영달, 권력과 권위에 도취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장이 안 되려면 해파리만 끓는다 하였다.

우습게 본 풀에 눈 찔린다고, 국민들은 이들에게 걸었던 기대심이 모두 허상이어서 그들의 ‘타락’에 분개해하고 비난하면서도 급한 일이 생기면 또 그들과 손잡으려 안달이다.

그런 것이 그들을 계속 지도층인사로 남게 만든다. 자비의 마음은 아는 사람, 낯선 사람, 멀고 가까운 사이를 떠나 친구와 적까지도 모두 평등하게 존중하고 도와주는 마음이다.

독선 아닌 합의, 독점이 아닌 상생의 통찰력이 가득한 마음이기에 그러한 차별 없는 소통 속에서는 다툴 일이 없어진다. 그 어떤 사람도 괴로운 일과 좋은 일이 반반씩은 있다.

살아가면서 열 사람 형리(刑吏) 사귀지 말고, 가벼운 죄라도 범하지 말자.

지도층인사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권리를 누리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이 따른다.

그들의 잘못과 비리는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난 것이다. 책임과 권리가 상응할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 서로가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전체를 통합해나가자.

통합만이 갈등과 대립과 소요를 가라앉게 한다. 사람의 이마는 똑같이 생겼어도 속은 전혀 다르다. 지도층 인사들이“저래서는 안 된다” 한탄하면서도 되지못한 인간, 또 못된 짓 했다며, 놀랄 것 없다는 식의 타성에 젖어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주지 말도록 하자.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너나없이 사욕(私慾) 보다는 공욕(共慾)에 앞장서야한다.

나무 접시가 놋접시 되지 않고, 병아리는 봉이되 않는다. 자비심 없는 자들은 분명 바른 사람이 아니다. 전 국민이 이기(利己)에만 치우치지 말고 이타(利他)정신으로 살아가자.

서로 사이만 좋으면 무엇이나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국민들이 지도층 인사들의 삶을 바라보며 힘들어 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성인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만고의 세월이 기나긴 칠 흙의 밤과 같다” 하였다. 지금부터 자비정신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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