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4년차 서투른 농부의 ‘속이지 않는 농사’ 이야기
귀향 4년차 서투른 농부의 ‘속이지 않는 농사’ 이야기
  • 함양/박철기자
  • 승인 2016.09.05 18:43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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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백전면 윗새재농원 홍정표 대표

▲ 4년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는 함양 백전면 윗새재농원 홍정표 대표. 홍 대표는 “나 같은 젊은 사람들로 인해 농촌 문화에 활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6년 여름은 잊기 어려울 거 같다. 평소 잘 안 와닿던 ‘온난화’란 낱말을 한번쯤 입에 담아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가혹한 여름이었기에. 더위에 관한 이전의 여러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여름은 불타올랐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땅 위의 초목금수 모두가 헉헉거리며 아우성이었다. 아니 바다조차 끓어올랐다. 수온 상승으로 온갖 바이러스들이 급속히 번지며 양식장을 초토화시키고, 콜레라 같은 ‘후진국 병’까지 득세했다.

농부 어부들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도를 넘은 폭염과 가뭄에 애써 지은 작물들이 못 쓰게 된 곳이 부지기수다. 1년 농사 헛지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달 30일 함양군의 오미자 주산지 백전면의 한 오미자농장을 찾아가는 길. 곳곳의 오미자들의 작황은 눈에 띄게 나빴다. 잎은 말라 시들고 열매는 자라다 만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농부들의 시름이 여간 아닐 듯하다.

해발 500미터 정도에 위치한 백전면은 고랭지 농사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의 각종 작물들은 맛과 저장성 등 품질이 좋아 인기가 높다. 백운산 자락 마을 입구에서 4년 전 이곳 고향으로 돌아와 농부가 된 홍정표(58) 대표를 만났다. 귀향 4년차인데 찌든 도회지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이미 백전의 청정자연을 닮은 순박한 기운이 온몸에 아우라로 둘려져 있다. 걱정 한 점 없을 듯 편안한 초보 농부의 미소가 눈길을 끈다. 곧바로 오미자 농장으로 향했다.

▲ 함양 백전면은 오미자 주산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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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신발사업 건설업하다
녹록치 않은 도시생활 청산해
부모님의 고향으로 귀농 결심

“소신 있게, 남 속이지 않고…”
편한하고 순박한 미소가 매력
꾸밀줄 모르는 토종 함양사람

해발 500m 청정자연 고랭지
오미자·오이 등 작물 ‘우수’  
맛과 저장성 좋아 고객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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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5분여 오르니 산림으로 둘러싸인 7부능선쯤에 발그레한 오미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해발 700m쯤 된단다. 오는 길에 보았던 다른 밭의 오미자들과는 상태가 확연히 다르다. 열매와 잎, 줄기들의 상태가 활기차다.

처음 홍 대표가 귀농해 이곳에 오미자를 심자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심는다고 ‘머라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올해 홍 대표의 선택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폭염과 가뭄에 다른 곳은 피해가 상당하지만 그의 오미자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여긴 원래 자연산 오미자가 지천이었다. 그런 곳에 오미자를 심으니 토질이나 습기 같은 게 적당해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별 관리를 하는 것도 없는데 품질이 좋다. 고랭지의 유리한 조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의 말처럼 고지에서 자라는 600~700여평의 오미자밭이 자연산과 달라보이지 않을 만큼 좋다.
그가 재배한 오미자나 오이 같은 작물은 다른 상품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오미자 같은 경우 거의 갑절을 비싸게 받는다. 그런데도 잘 나간다. 특별히 유기농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닌데 비결이 뭘까?

“고랭지라 그런지 모든 게 품질이 월등하다. 오이 같은 경우 출하될 때를 기다려 진주공판장에서 하루 아침에 몽땅 가져간다. 신선도 등 품질에서 (다른 게) 못 따라오니까. 주로 오미자, 절임배추(등이 잘 나가는데), 배추도 고랭지 거라서 겨울부터 다음해 가을까지도 아삭아삭하고 짓물러지지를 않는다. 다른 곳 20kg에 3만원 할 때 우린 3만5000원씩 받아도 (잘 나간다). 가격이 비싼데도 고객들이 먹어보고 자꾸 선전을 해주니까…”

특별한 재배기술보다 좋은 토질과 기후 등 자연의 혜택을 최대로 입고 있다는 얘기다. 대신 홍 대표는 한 가지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진 못한다. 오미자, 오이, 고추, 콩, 팥, 상추, 절임배추 등 다양한 작물을 때에 맞게 재배한다. 그래서 그는 하루도 쉴 틈이 없다.

“사과 같은 거는 처음 5000평 정도 할 계획이었다. 근데 지금은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대량 재배엔 초기 투자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사지어 얼마나 벌까? 귀농 첫 해엔 300만원 정도, 다음해에 1000만원, 3년차에 2000만원쯤 벌었는데, 올해는 그동안 투자해 놓은 게 결실을 거둬 5000~7000만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귀농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부산에서 신발회사 다니다가 신발사업을 시작했는데 돈을 많이 잃었다. 후반기에는 건설업(설비)을 했는데 일하는 거보다 돈 받는 게 문제가 많이 걸려서 결국 정리했다.” 녹록치 않은 도시생활에 신물이 났으리라. 그는 연로하신 부모가 사는 고향으로 계획보다 좀 일찍 돌아왔다.

“귀농귀촌 교육도 받았고, 2014년에 강소농교육도 100시간을 이수했다.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다. 강소농 열 몇 명이 ‘고운볕’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나 서로 정보공유도 하고…. 예전에는 같은 작목반끼리 모임을 했는데 경쟁이 많았다. 다른 품목끼리 모이니 서로 도움이 되는 등 이점이 많다.”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기분이 어떨까? “처가도 함양읍이다. 처가도 가깝고 하니 정서가 잘 맞다. 또 우리 마을이 군에서 단합 잘 되기로는 1등이다. 마을에 20가구가 살고 백운마을에 귀농귀촌한 분들이 60~70가구쯤 산다. 게다가 양친 모두 살아 계신다. 87세, 85세신데 우리 집은 장수 집안이다. 할머니도 구순 넘게 사셨다. 그래서 우리 집은 한 대가 늦게 간다. 가족들과 함께 마음 편하게 산다.”

맹자가 군자의 세 가지 인생의 즐거움(君子有三樂) 중 첫째로 꼽은 것이 ‘부모구존 형제무고(父母俱存 兄弟無故)’다. 홍 대표는 첫 번째 낙부터 제대로 갖춘 거다. 안온하고 순박한 미소가 어디서 나오는지 답이 나온다.

생활신조를 물으니 “소신 있게, 남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이게 다다. 숫제 ‘왜 사냐건 웃지요’다. 인터뷰 하는 분들이 대부분 한 가지라도 더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정 대표는 사족을 더 붙이는 법이 없다. 그런데 참 신선하다. 달변으로 자기를 잘 포장할 줄도 모르고 날 것으로 냅다 털어놓는다. 해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꾸밀 줄 모르고 멋없는 토종 함양사람임에 틀림없다. 어눌한 표현의 바닥에 깔린 순박과 진실이 직격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그저, 참 착한 분이구나 싶다.

꿈이나 포부가 있냐고 했더니 “나 때문에 농촌 문화에 활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마을엔 젊은 축에 드는 사람이 셋뿐이다. 나머지는 다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내가 세 번째로 젊은 사람이다. 나 없으면 마을에 활력이 별로 없다”고 한다. 최소 ‘7학년’부터 8, 9학년 어르신들만 에헴거리는 마을에 ‘5학년’젊은이가 돌아오니 아연 활기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 적막한 시골마을의 활력소가 되는 젊은이로서 어깨가 무거울 듯하다.

귀농귀촌하는 이들이 애초 농사를 만만히 보고 덤볐다가 실패해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그는 “농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들깨를 예로 들면 일은 엄청 많은데 소출은 얼마 안 된다. 500평 지어봐야 한 30만원 벌라나? 그런데 고객 때문에 안 하고 싶어도 해야 한다. 힘들다. 내 먹을 거 자급자족한다는 생각으로 하니 좀 마음이 편해진다. 농사는 하느님이 도와야 된다. 인간 몫은 한 30% 된다. 안될 때는 힘들고 잘 되면 힘든 줄도 모르는 게 농사다”라며 나름의 농사철학을 털어놓는다. 불현듯 그가 내놓는 농산물들은 돈을 많이 더 내고 사먹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

마지막으로 그는 시골생활에 대해 “도시에선 모든 게 편리하지만 참 갑갑하다. 시골에선 일하는 건 자유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되니. 그런데 자유가 좋지만 한편으론 퍽 힘든 게 자유다. 농사는 때, 시간이 있는데 그걸 놓치면 농사 못 짓는다. 시간 맞춰야 한다는 그게 어렵다면 어렵다. 헌데 만사 편하고 좋다. 도시에서 늘 만성질환처럼 따라다니던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없으니 그게 가장 크다. 무엇보다도, 높았던 혈압도 많이 내려가고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 이 이상 뭘 더 바랄 게 있나?”며 순박한 미소를 작렬한다.

해발 500m 청정자연 속에서 땀흘려 양친과 가족들 건사하며 화목 이루고, 스트레스 없이 마음 편하고, 건강 챙기고…. 여기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한없이 편안한 홍 대표의 순박한 미소를 마주하며 이런 분은 정말로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묻지 않은 고랭지에서 때묻지 않은 농심으로 키운 오미자가 볼수록 탐스러웠다. 함양/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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