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업무추진비는 밥값?…정보공개도 ‘눈 가리고 아웅’
지자체 업무추진비는 밥값?…정보공개도 ‘눈 가리고 아웅’
  • 산청/정도정·함양/박철·거창/최순경기자
  • 승인 2016.09.18 18:05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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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신문사가 지난 7~8월 두 달 동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전국 81개 군수(산청군은 정보공개 거부)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확보 공개했다. 이 매체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군수들의 업무추진비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밥값’으로 나타났다. 또 대다수 군에서 사용처, 인원,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제멋대로 내역을 표시했다. 업무추진비가 대체 뭐길래 이리 불투명하고 말도 탈도 많을까?


■거·함·산 3개군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분석

▲ 양동인 거창군수
양동인 거창군수
2014년 7월~2016년 5월 총 1억1500만여원 
주 내역은 시책추진·기관운영 업무추진비  
간혹 행사비 기록 세부집행 내역 알 수 없어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썼는지 검증 불가능




▲ 임창호 함양군수
임창호 함양군수 
2억2000만원 3개군 중 금액지출 가장 많아
하루만에 수 백만원 금액 집행 빈도도 높아
날짜·사용내역만 기록 상세히 알긴 어려워
3개군 중 집행내역은 비교적 고르게 분포해  




▲ 허기도 산청군수
허기도 산청군수
2016년 4월까지 자체 집계결과 9585만여원
세부내용은 비교적 상세하고 알기 쉽게 작성
그러나 지난해 6월부터 세 가지만 내역 표시
소속직원 격려·직원 경조사·유관기관 협조




◆정부 3.0이 무색하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정부 3.0’은 공공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다. 타 분야는 제껴두더라도 각종 정부기관·단체장들의 업무추진비에 있어서 만큼은 ‘글쎄요’다.
행자부령 제23호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2015년 4월 1일 시행)은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 업무추진비’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보조기관, 의회사무기구의 장, 소속 행정기관의 장 및 하부행정기관장의 직무수행에 드는 비용과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행사, 시책추진사업 및 투자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비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칙에는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장 등의 업무추진비 집행대상 ‘직무활동 범위’도 상세히 명시돼 있다. 지자체장에 해당하는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재민·불우소외계층에 대한 격려·지원 ▲시책·지역홍보(언론관계자·협약식관계자·내방객 등에 특산품·기념품·식사 제공) ▲학술·문화예술·체육 유공자 격려·지원(격려금품·식사) ▲업무추진을 위한 회의·간담회·행사 ▲현업(현장)부서 근무자 격려·지원(군경·기타 국가기관·시위현장·공공행사 현장종사자) ▲소속 상근직원 격려·지원(상근직원유족·퇴직공무원·평가입상자·환경미화원 등 현장근무자·비상근무직원, 연말·명절선물) ▲업무추진 유관기관 협조(유관기관 공동행사·회의·퇴임·전출입·기념식·이전개소식) ▲직무수행과 관련된 통상적인 경비(내방객 다과·음료, 축·부의금품) 등이다.

이처럼 업무추진비 집행기준을 법제화한 것은 공직선거법 저촉 문제와 예산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상 ‘법령에 의한 금품제공행위’는 기부행위 제한의 예외 사항이기 때문에 집행규칙대로 쓰면 공직선거법 저촉 문제가 해소된다. 또 집행대상과 사용범위를 상세히 열거해 집행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용범위를 초과해 집행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 되므로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쓰라고 정해놓긴 했는데 제대로 썼는지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같은 규칙 제5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집행 등에 관한 세부기준 및 지출 증빙 서류의 기재사항 등은 행정자치부장관이 별도로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해 막대한 혈세 지출에 대한 감시와 검증 의무를 외면했다. 게다가 정부 차원의 통일된 업무추진비 공개 지침도 없다. 이는 주먹구구식의 정보공개에 대해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니 기관마다 입맛대로 공개해도 제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가령 업무추진비로 식사를 했다면 날짜, 음식점 상호, 금액, 대상인원, 단체명·성명(대표자) 정도는 명시하고 증빙서류(영수증)를 제대로 갖춰야 ‘투명하게 공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누가 봐도 납득이 가도록 제대로 공개하는 기관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입만 열면 정부 3.0 운운하는 건 가관이다.

◆거·함·산 3개군수의 업무추진비 실태
위의 인터넷신문사가 확보 공개한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전국 81개군수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중 거·함·산 3개군수의 자료만 별도로 분석했다. 당시 공개를 거부한 산청군은 별도 청구해 자료를 확보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사용내역만 보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군은 전무했다.

◇거창군 = 23개월간 1억1500만여원을 지출한 거창군의 경우 특히 부실했다. 전직 이홍기 군수와 올해 4월 보궐로 당선된 양동인 군수가 이어서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내역이 하나같이 ‘시책추진업무추진비·기관운영업무추진비’다. 간혹 거창국제연극제 등 행사나 명절 직원격려품 구입 등이 가물에 콩 나듯이 나타나긴 하지만, 세부 집행내역을 전혀 알 수 없어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썼는지 검증하기는 불가능했다. 3개 군 중 열혈로 이름난 거창군민들이 지금까지 잠잠한 것이 신기하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함양군 = 임창호 함양군수는 같은 기간 2억2000만원 가까이 써 3개 군 중 집행금액이 가장 많았다. 또 하루만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집행한 빈도도 가장 높아 의혹을 살 여지가 많았다. 함양군도 다른 군과 마찬가지로 날짜와 간단한 사용내역, 금액만을 표시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상세히 알긴 어려웠다. 3개 군 중 집행내역이 비교적 고르다는 점이 그나마 돋보였다.

◇산청군 = 허기도 산청군수의 경우 지난 2014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22개월간의 집행내역을 보내왔다. 총사용 금액이 표시돼있지 않아 자체 집계해본 결과 9585만여원을 사용한 걸로 나타났다. ‘문화분야 활성화방안 간담회, 관광해설사 노고 격려, 전통시장 직원 격려’ 등과 같이 집행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식사, 경조사비, 특산품’ 등으로 구분해 집행대상을 명시하는 등 세부 내용이 비교적 알아보기 쉽게 작성돼 있었다. 직원 경조사비도 성(姓)까지 밝히는 등 성의가 보였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지난해 6월부터 갑자기 월별로 묶어 ‘업무추진 소속직원 격려, 직원 경조사비, 유관기관 협조’ 등 세 가지 항목으로만 내역을 표시하고 식사 ○회, 경조사비 ○회, 격려품 ○회 등으로 뭉뚱그렸다.

군수의 연봉은 대략 9000만~1억원가량인데, 여기에 직책급업무추진비가 연 800~900만원 정도 추가된다. 이는 내용증빙이 필요 없는 돈이니 월급과 같다. 업무추진비는 지역 등급 등에 따라 다르지만 연 1억~2억5000만원쯤 된다. 이번 정보공개에서 확인한 결과 전국 82명의 군수가 23개월 동안 180억원가량을 썼다. 여기에 훨씬 규모가 큰 시와 광역시, 광역단체장과 광역·기초의회 등의 업무추진비까지 감안하면 전체 규모가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앞에서 본 것처럼 상세내역 없이 시늉만 하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공개는 의미가 없다. 업무추진비가 어떤 성격의 예산인지 대다수 국민들이 잘 모르고 관심도도 낮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선심 쓰며 알게 모르게 표를 구걸하는 데 아까운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현실이다.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의 ‘구린’ 공생, 뒷짐 진 중앙정부
업무추진비 사용과 정보공개의 불투명성은 지자체장뿐 아니라 지방의회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부활 25년을 맞은 지방자치는 전국 구석구석에서 추문과 기상천외한 비위들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는 자정력을 상실한 지 오래됐고, 토호세력의 권력 차지 수단이 돼 각종 비리와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자체장에 대한 의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은 실종됐고, 지방의회마다 윤리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제식구 감싸기’로 인해 있으나마나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와 지방의회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실정이다.

지방의회의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감시는 집행부가 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의회사무처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사무처 직원의 실수만 형식적으로 적발하고 지방의원들의 비위엔 고개를 돌린다. 예산심의권을 가진 지방의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지자체장의 업무추진비 등 예산에 대한 감시는 지방의회가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한다. 의원들 또한 인사·예산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자체장과 대립하길 꺼린다. 이 때문에 의원들의 가식적인 호통과 공무원들의 ‘시정하겠다’ 소리로 대충 넘어가 버리는 행정사무감사 풍경이 익숙한 현실이다.

한 마디로 뒤가 구린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동병상련적인 공생관계다. 서로에게 면죄부를 주고받는 꼴이다. 이로 인해 지자체 업무추진비 등에 대해 주민들은 혈세가 제대로 쓰이는지 알 수가 없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중앙으로 가면 사정이 더욱 심해진다. 당장 업무추진비 공개의 지침이나 규정을 마련해야 할 행자부 등 정부부처들부터 공개에 소극적이다. 지난해 8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50개 중앙행정기관 누리집에 공개된 기관장 업무추진비 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사용 금액과 날짜만 공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재부 예산집행 지침에 맞춰 업무추진비의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누리집에 공개한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결과를 두고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관계자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는 업무추진비 사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더 큰 권력을 지닌 국가기관의 집행 내역이 불투명한 것은 정부 3.0 취지에 역행한다. 정부 차원에서 업무추진비 공개의 통일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부처는 공개에 소극적인 데 대해 ‘국책사업 등의 정보를 공개하면 이익단체의 저항이나 민원인 접근 등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운다.

결국 지방, 중앙 할 거 없이 업무추진비는 ‘국민들이 몰라야 하는 돈’인 것이다. 국민들이 맡긴 세금을 내 주머니에 넣고,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써야 기관장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사고방식이다. 이런 집단이기(利己)와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깨지 않는 한 업무추진비는 영원한 ‘기관장 쌈짓돈’으로 남을 우려가 높다.  산청/정도정·함양/박철·거창/최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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