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中國)의 종교(宗敎)(XII)
칼럼-중국(中國)의 종교(宗敎)(XII)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5 18: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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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중국(中國)의 종교(宗敎)(XII)


지난번에 이어 중국 종교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중국에는 구태여 종교의 이름을 빌지 않더라도 하늘과 귀신을 경외하는 믿음이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천(天)에 대한 관념이나 신앙만 분석한다 해도 천은 자연·천성·천명·천리(天理), 주재의 천, 의지의 천 등으로 해석되는바 여기에는 순수한 자연으로서의 무신론적인 하늘과 신성(神性)을 포함한 ‘하느님’으로서의 유신론적인 하늘로 양분할 수 있다. 바로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따지기 전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기풍이 만연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느님과 귀신이 보편화되었는데도 일반적으로 종교성은 박약하다. 바로 하느님과 귀신은 절대 다수의 중국인의 관념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유·불·도 3교를 젖혀놓고라도 중국의 많은 사상 중에는 종교적인 인소(因素)가 많다. 조상 숭배 및 조상 배사(拜祀)를 비롯하여 자연에 대한 경외사상, 천인 합일사상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 속에 자기의 사후와 관련짓거나 또 가만히 팔짱을 끼고 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비현실적인 흐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전목(錢穆)은 중국 전통문화 속에 창설된 종교는 없을지라도 자연과 인류 외에 따로 최고의 존재인 하늘을 설정하여 이를 경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듭 말하거니와 중국은 하늘 때문에 종교성이 강렬하지 못했으며, 또한 하늘 때문에 특정 종교를 지니지 않는 일반시민에게도 종교성을 소유케 된 것이다.

종교성이 박약한 것을 당군의(唐君毅)는 이렇게 밝혔다.

① 실제적인 후생(厚生)에 중점을 두지 사후를 생각지 않는다. ② 중국문화는 개인에 대한 부귀한 자를 유덕한 사람으로 대우했다. ③ 중국 윤리사상은 개인의 쾌락과 행복을 추구치 않았다. ④ 부모와 조종(祖宗)에게 효도함으로써 자기 생명의 의의를 찾고 또 보답했다. ⑤ 부모와 선조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얽혀진 역사의식은 우리들에게 천고(千古)를 거슬러 올라가 옛날의 어진 사람과 벗하게 한다. ⑥ 자기 사후의 영혼 불멸을 추구하는 것은 곧 생전에 사회적으로 절박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⑦ 중국사상 속에 묵가(墨家)만이 귀신을 믿고 귀신에게 복을 구할 뿐 유가 · 도가는 자기의 지혜와 덕성으로 처세할 다름이지 신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았다.

한편 위정통(韋政通) 또한 중국에 종교성이 강렬치 못한 원인을 중국 고대로부터 이미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같은 범주에 들었다는 역사적 연원에서 찾으면서, 다신신앙(多神信仰)과 정치가 종교를 리드한다는 정치사회적 여건 때문이라고 했다. 다신신앙이 종교성을 약화시킨 것은 사람마다 내심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적당한 신을 대상으로 기도하여 발산시키기 때문이요, 정치의 간섭은 종교 조직의 증대를 방지했고 때로는 분열 약화했기 때문이다. 종교성이 박약하기 때문에 종교로 말미암은 분쟁이나 유혈의 비극, 그리고 정치사회에 미치는 종교의 횡포는 없었지만 국민의 얼과 힘을 한데 모아 강력한 기독교의 대행진으로 건설한 신대륙의 기적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밖에 중국종교의 특징은 많다. 예수가 신격적인 사람이라면, 중국의 공자나 인도의 석가는 인격적인 사람이었다. 고대의 삼황오제가 사람에 존경을 받은 것은 그들이 인류에게 실제의 공헌과 모범적인 인격을 갖춘, 결코 신격이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으로부터 출발하여 신격화된 예는 찾아볼 수 있다. 관공(關公)과 악비(岳飛)는 다 같이 실존했던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행의(行義)와 충성을 숭배한 나머지 신격화되었으니, 중국에서 평범한 개인이 숭배를 받아 신이 되는 경우 거의가 윤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인은 종교에 있어 관용적이며, 종교생활 자체가 낙관적인 점을 들 수 있다. 유신론, 혹은 영혼 불멸설을 대체로 믿고 있는 중국인은 공자를 숭배하는 사람이 도교적인 사고방식에 불교적인 내세를 환상하는 예도 결코 적지 않다. 이같이 절충적인 신앙 태도는 현실화된 중국인의 두뇌에 모든 이점을 섭취하자는 데서, 아니면 근본적으로 종교에 대한 견고한 신념을 세우지 못한 데서 연유했는지도 모른다. 그 낙관적인 태도는 멀리 유가의 성선설에서 출발했다. 순자(荀子)가 비록 성악설을 주장했지만 인간의 악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동시에 중국인은 불변의 법칙으로 운행하고 있는 우주의 질서를 믿는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관적인 태도를 행동으로 연결시킨 것은 강력한 윤리사상 때문이다. 성실과 효도·우애에서 자기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는 미덕이 곧 향선(向善)할 수 있는 추진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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