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비빔밥·냉면이 탄생한 유일한 도시
진주는 비빔밥·냉면이 탄생한 유일한 도시
  • 글/김상목·사진/이용규기자
  • 승인 2016.09.28 19:15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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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양·남진주 기생문화와 풍부한 물산으로 진주 다양한 음식문화 발달
진주에서 문체부 주최 ‘한식문화 이야기-진주의 맛을 담다’ 첫 행사 열려

 
문체부가 주최하는 ‘한식문화 이야기-진주의 맛을 담다’ 행사가 내달 1~2일 임진왜란 진주대첩으로 유서 깊은 진주성에서 열린다.

이번 진주에서 열리는 한식문화 이야기는 “한식을 단순한 음식으로 보기보다 문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체부에 한식 팀이 구성된 이래 처음으로 개최되는 행사이다.

문체부 한식 및 문화행사 지원팀의 최종철 팀장은 “지금까지 농림식품부 등에서 한식을 요리나 메뉴 등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세계화를 진행해 와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한식이 세계제일이 되기 위해서는 여기에다가 인문학이 녹아있는 문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팀장은 “이런 차원에서 교방문화가 발달했고 진주비빔밥과 진주냉면 등이 탄생해 음식과 관련해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깊은 진주를 한식문화 발굴을 위한 첫 행사지로 선택했다” 고 말했다. 최 팀장의 말처럼 경남의 진주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비빔밥과 냉면이 모두 탄생한 도시이다.

이와관련 강신웅 지리산막걸리학교 교장(전 경상대 인문대학장)은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음식은 비빔밥과 냉면이다. 그런데 비빔밥과 냉면이 모두 탄생한 곳은 진주가 유일하다. 전주는 비빔밥, 평양은 냉면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진주는 비빔밥과 냉면 모두가 유명하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진주에서 이렇게 비빔밤과 냉면이 탄생한데 대해 “진주가 북평양, 남진주로 불릴만큼 기생문화가 발달해 고급음식에 대한 수요가 많았고 진주는 경남전역에서 물자가 모여 물산이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비비밤과 냉면이 지금은 대중음식이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일반인은 먹을 수 없는 고급음식이었다는 것. 특히나 냉면은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따라서 진주는 기생문화의 발달로 고급음식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물산이 풍부해 이를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되었다는 해석이다.

강 교장의 이런 분석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로 진주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정인재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따라서 이들이 관직에서 퇴직한 후에는 낙향해 여유를 만끽하면서 풍류문화를 즐기기 위해 기생문화가 발달했다. 북평양, 남진주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조선시대 진주는 기생문화가 활성화 돼 있었다. 이에따라 진주에는 교방청(권번·기생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기관)이 있었다.

진주 기생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한데 임진왜란 때 논개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는 최초의 만세운동을 전개한 산홍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1868년 논개를 기리는 제사를 지낼 때(의암별제) 참여한 기생수가 300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진주에서는 기생문화가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

강 교장은 특히 진주비빔밥의 유래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 줬다. 진주비빔밥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에서 유래했다는 것. 강 교장이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가을에 벌어진 1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한 분을 삭이지 못해 이듬해 6월에 벌어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에 닭이 우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하라”는 강경한 명령을 전달한다. 이에따라 경남인근의 모든 왜군이 집결해 10만의 병력이 진주성을 에워싼 상황에서 당시 진주성 전투를 지휘하던 김시민 장군은 성이 함락될 것을 예상하고는 성내에 있는 모든 채소와 소를 잡게 하고 이를 비빔밥으로 만들어 민관군을 가리지 않고 나눠먹게 한 후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일화이다. 진주비빔밥에 육회고명이 들어가는 것과 선짓국이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진주성 싸움에서 유래됐다는 것. 

강 교장은 이같은 진주비빔밥의 탄생이야기를 하고는 “전주비빔밥과 달리 진주비빔밥은 그 유래에 대한 강렬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이를 잘 활용하면 세계적인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주비빔밥의 보급과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에서 음식 명인으로 선정된 정계임 진주향토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은 “지금은 전주비빔밥이 더 유명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진주비빔밥이 더 완전한 음식이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또 “냉면도 음식궁합의 입장에서 보면 진주냉면은 음식의 궁합이 잘 맞도록 구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평양냉면은 제육을 곁들여 내는데 제육은 냉면의 면 소재가 되는 메밀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재료인 반면 진주냉면은 소고기 육전을 내는 데 소고기와 메밀은 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음식 재료간의 궁합으로 보면 진주냉면은 철저한 이론적 기반 하에 만들어졌다는 것.

정 원장은 또 “진주비빔밥은 그 재료 등을 볼 때 세계최고의 항노화 음식”이라고 강조하고 “다만 음식을 만드는데 손질이 많이 가 요즘처럼 인건비가 비싼 시대에는 활성화되기가 쉽지  않은 게 흠”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정 원장은 “정부에서 나물 등을 가공하는 공장을 설립하여 비빔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인다면 비빕밥이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문체부가 개최하는 ‘음식문화 이야기-진주의 맛을 담다’가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음식문화의 원류를 발굴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상품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면 이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기대되는 부분이다.      

강신웅 지리산막걸리학교 교장(전 경상대 인문대학장)
“진주 음식문화 발달은 많은 인재와 자원”

 
-진주에서 음식문화가 발달한 이유가 무엇인가
▲진주는 고려말 이조 초까지 조정의 인재가 많이 배출된 지역이다. 당시 중앙의 인물이 가장 많이 배출된 지역이 진주이다. 이런 진주출신 인물들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해 진주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급음식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그래도 이런 수요를 충당할 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진주는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진주는 이웃 하동, 산청, 함양, 사천, 의령, 합천 등지의 물산이 모이고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해산물까지 풍부한 곳이어서 고급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풍부했다. 1910년 당시 경남일보 사장을 맡았던 장지연(시일야 방성대곡 사설을 쓴 사람)이 자신의 진양잡영칼럼에서 풍부한 물산, 요염한 기생, 대나무 밭을 진주 3절이라고 썼다. 그만큼 예로부터 진주는 물산이 풍부한 곳이어서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

-진주비빔밥은 그 유래에 대한 설이 다양한데
▲교방문화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지만 다수설은 진주대첩과 관련된 유래이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진주는 호남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진주가 막아줬기 때문에 왜군들의 곡창지대인 호남 진출이 좌절됐고 이로인해 보급에 문제가 발생한 왜군의 전략에 큰 차질을 준 전투이다. 진주대첩은 1차전투와 2차 전투가 있는데 1차 전투는 승리했고 2차 전투는 패배했다. 1차 전투에서 패배해 호남진출이 좌절되자 이에 분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을 반드시 함락해 닭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하라,는 강경한 명령을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이듬해인 1593년 6월 당시 남부에 있는 왜군 10만명이 진주성을 에워쌌다. 전투의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당시 김시민 장군은 성내에 있는 모든 식재료를 다 사용해 비빔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시민 장군이 지시에 따라 성내에 있는 채소와 소를 모두 잡아서 비빔밥을 만들어 모든 사람이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는 그날 진주성이 함락됐고 7만 명에 달하는 진주성내 민관군이 모두 전사했다.
진주비빔밥에는 다른 비빔밥에는 없는 육회고명과 선짓국이 나온다. 진주비밤밥에 육회 고명이 얹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때 소를 잡아서 육회를 만들었기 때문이고 선지국이 나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 스토리가 진주비빔밥의 유래에 관한 다수설이다.

-진주냉면은 어떻게 해서 탄생했나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낙향한 관리들이 기생집에서 술을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불의 기운인 술을 깨기 위해 찬 음식이 필요했고 진주에서 풍부한 메밀과 해산물을 이용해 육수를 만들어 먹은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메밀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남이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진주는 삼천포, 통영 등에서 풍부한 해산물이 공급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진주냉면은 평양냉면과는 달리 해산물 육수를 활용한 냉면이 발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계임 진주향토음식문화 연구원 원장(음식 명인)
“진주 비빔밥·냉면은 최고의 항노화 음식”

 
-진주비빔밥의 특징이 무엇인가
▲진주비빔밥은 육회가 고명으로 나오고 쏙대기 나물이 들어간다. 또 보탕이라 해서 밥을 비빌 때 바지락 국물을 활용해 비빈다. 이렇게 하면 밥도 잘 비벼지고 맛도 좋아진다.

-쏙대기 나물이 무엇인가
▲쏙대기는 일종의 돌김에 쪽파를 살짝 데쳐서 버무려 만드는 것이다. 독특한 맛이 있어서 다들 좋아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쏙데기가 잘 생산되지 않아서 이 나물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전주 비빔밥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주 비빔밥은 콩나물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각종 비빔밥이 개발되어서 차이가 별로 없어졌지만 원래 전주비빔밥은 콩나물 비빔밥이다.
 이에반해 진주비빔밥은 각종 채소가 들어가는 비빔밥이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 문답에서 전주는 콩나물이 유명하고 진주는 비빔밥이 유명하다, 고 썼다. 전주비빔밥은 비빔밥으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무엇인가
▲육수를 만들 때 해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왜 해물을 활용하나
▲아마 진주에 해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주 냉면은 왜 활성화 되지 못했나
▲진주 냉면은 평양냉면에 비해 강한 맛이 없다. 평양냉면은 동치미김치 등 톡쏘는 맛이 있다. 그런데 진주냉면은 해물육수 등을 사용하다 보니 톡 쏘는 강한 맛보다는 담백한 맛이 있다. 이게 현대적인 입맛에 맞지 않아 활성화 되지 않은 것 같다.

-영양학적으로는 어떻나
▲영양학적으로는 진주냉면이 더 좋다.

-왜 그런가
▲평양냉면은 메밀국수에 제육(돼지고기 삶은 것)을 덧붙인다. 그런데 메밀과 돼지고기는 궁합이 맞지 않다. 그래서 건강상 좋은 건 아니다.
이에반해 진주냉면은 메밀국수에 육전이 첨가된다. 소고기와 메밀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음식으로만 볼 때 진주냉면이 더 우수한 음식이다.

-진주냉면을 활성화 할 방법은 없나
▲요즈음은 강한 맛 보다는 담백한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이 점차 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진주비빔밥을 활성화 할 방법은 무엇인가
▲진주비밥은 채소를 다지는데 손이 많이 간다. 제가 해보니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빕밥 한 그릇에 1만5000원 이하로는 어렵다. 이렇게 해서는 팔리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해서 채소 다지는 공장을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채소나물을 공급한다면 진주비빔밥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진주비빔밥이 영향학적으로는 최고의 항노화 음식이다. 이런 점에서 나물을 값싸게 공급하면 진주비빔밥을 싸게 만들 수 있고 대중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글/김상목·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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