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우리사회
어처구니 없는 우리사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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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우리 집 마당가 석류나무 밑에 옛날부터 있어 온 맷돌 두 개가 나란히 차가운 겨울을 맞고 있다. 맷돌 하나는 선조의 손때 묻은 흔적이 물씬 풍긴다. 양식이 부족한 농경시절 대가족의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 하루에 한 두번씩 죽을 쑤어 끼니를 늘리는데 하도 많이 사용하여 마모가 너무 많이 되어 있다. 못 먹고 못살았던 옛날의 한서러움이 묻어 있다.

또 하나의 맷돌은 마모가 덜된 상태로 주로 두부콩을 갈아 두부 해먹고 떡고물을 만들 때 사용했던 가정 도구로 전해 오고 있다. 전통적인 순두부를 만들려면 콩을 믹서기에 갈지 않고 맷돌에 갈아야 제 맛이 난다. 맷돌은 밑돌과 웃돌이 제대로 맞물려 있게 하는 장치를 가리켜 “어처구니”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상상 밖으로 큰 물건이나 사람을 이르는 말” 또는 “어이가 없다”는 뜻으로 사용하여 오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으면 밑돌 웃돌이 서로 겉돌아 맷돌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겉도는 맷돌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처구니 없는 사회이다. 과거는 밑돌이고 미래는 웃돌이다. 과거의 밑돌이 더럽다고 모두 갈아내 버리고 미래의 웃돌 혼자 돌린다 한들 뭐가 갈리겠는가. 동북아 중심 국가를 만들겠다던 어느 대통령 취임사의 미래 의지는 과거사의 판도라 상자를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이미 물 건너갔다.

풀 케네디 교수의 말처럼 덩치 큰 네 마리 코끼리 사이에서 한국이라는 작은 동물이 치이지 않으면 다행인 형편이 되고 말았다. 나이 든 세대가 밑돌이라면 젊은 세대는 웃돌이다. 요즘 나이든 세대는 분한 마음에 “젊은 것들 진짜 고생이 뭔지 한번 해 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러다가 쫄딱 망해 봐야 부모세대 고마운 것도 알고 세상 무섭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이 든 세대들 끼리 모이면 자식 세대들에게 더 이상 설움을 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있는 돈 움켜쥐고, 집 깔고 앉아 자식 위해 땅 팔지 말자고들 한다. 부모세대, 곧 나이 든 세대들이 “서글픈 반란”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가진 것이 있는 경우의 이야기이다. 가진 것 조차 없으면 완전히 찬밥 아닌 쉰죽 신세다. 집에서 키우는 개만도 못한 처지가 되기 일쑤다. 어처구니 없이 들리는가, 이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사회의 밑돌과 웃돌을 괴던 “어처구니”는 다 어디로 갔나. 이 사회의 중심을 잡아 주던 원로도 분명 그 어처구니 중 하나 였을 것이다. 하지만 원로는 다 죽었다. 아니, 다 죽였다. 시국 선언한 원로들을 하루아침에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 매도하지 않았다. 추기경 마저 이상한, 노망난 늙은이 취급하지 않았나. 더 말해 뭐하겠나. 남은 “어처구니”가 대통령인데 대통령은 이미 밑돌, 웃돌 연결시킬 어처구니가 아니라 스스로 밑돌 없이 웃돌 하겠다고 나서지 않나. 그러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도쿄(東京)대 의학부 명예교수인 요로 다케시(養老孟司 )가 쓴 “바보의 벽”이란 책에 인간의 뇌는 당초 알고 싶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의 인지”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소통이 안 되는 벽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는 정말이지 서로 말이 안 통한다. 논리고 뭐고 소용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겉돌고 있는 것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이 “바보의 벽”이 가로 막고 있다. 나라 전체가, 정당 전체가, 사회단체 모두가 바보의 벽 쌓기에 분주한 가운데 결국 나라 자체가, 정당 자체가, 사회단체 자체가 바보가 되었나 보다.

이런 와중에 여당은 디도스 사건에, 야당은 FTA 반대, 전당대회 분열로 폭력이 난무하고, 국회도 폭력이 난무하고, 국회의원의 보좌관들은 금품수수에 휘말리고 있다. 안정의 밑돌 없이 개혁의 웃돌만 돌려 대겠다는 것이다. 나라의 맷돌이 겉돌면서 이래저래 소리 없이 국민만 불안으로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청년 실업자와 명예퇴직자 양산의 바람이 불고 사회의 허리가 할 수 있는 40대의 범죄율과 자살률이 함께 늘어가고 있지 않는가.

요즘 식당가에선 매운 맛의 음식이 잘 팔린다고 한다. 맛 전문가들은 불황의 탓이라고 한다. 불황 일수록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맵고 자극적인 맛이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온통 겉돌고 있는 우리 국민은 매운 맛으로나마 격한 스트레스를 억누르며 독해질대로 독해지고 있다. 이제 이 독해진 국민은 무슨 일을 벌일지 그 누구도 장담 못하게 되어 있다. 어처구니 없는 세상으로 살아가는가. 어처구니 없는 맷돌은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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