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차인회’ 차문화 발전 이끈다
‘대한민국 1호 차인회’ 차문화 발전 이끈다
  • 김상목기자
  • 승인 2016.10.11 18:3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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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차인회 김건호 회장

 
대한민국 1호 차인회이자 한국의 차문화를 선도해온 진주차인회는 1969년 10월 진주지역 차인 8명이 모여 진주차례회로 시작했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동안 1979년 한국차인연합회 창립, 1981년 차의 날 선포 및 김대렴공 추원비 건립, 2015년 차문화진흥법 제정 등 한국의 차문화와 차산업을 정립해 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진주차인회의 20대 회장인 김건호(72) 회장을 만나 진주차인회의 역사와 차의 매력,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다.

다음은 김건호 회장과의 인터뷰이다.

-진주차인회 취임은

▲2015년 1월 1일 취임해 올해 2년차이며 임기는 2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진주차인회 역사는
▲처음 시작은 1969년 10월 1일 비봉루에서 지역문화를 사랑하고 차를 좋아하는 효당 최범술 스님, 은초 정명수 선생, 태정 김창문 사장, 아천 최재호 선생, 다농 김재생 박사, 경해 강명찬 선생, 아인 박종한 선생, 무전 최규진 사장 등 8인이 모여 대한민국 1호 차인회인 진주차례회를 시작했다.
당시 태정 김창문 사장이 고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찻잔을 많이 수집했는데 이 찻잔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차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래서 69년도에 시작해 77년에 진주차도회로 명칭을 바꾸고 1979년 다시 진주차인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때 회장인 아인 박종한 선생이 서울에 올라가서 서울무역회관에서 박동선씨 등과 한국차인연합회를 만들었다.
이후 1981년 5월 25일 촉석루에서 차의 날 선포식을 가지고 선고 차인과 7만의 총에 대한 헌다례를 올렸다. 또한 한국차인연합회와 진주차인회의 주도로 하동 쌍계사 앞에 김대렴공 추원비를 건립하고 헌다례를 올렸다. 김대렴공은 신라 흥덕왕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차씨를 가져와 지금의 하동 쌍계사 일원에 심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이때부터 진주차인회에서 매년 5월 25일 촉석루에서 차의 날 행사를 가진 뒤 하동으로 이동해 김대렴공 추원비에서 헌다례를 올리고 있다.
2014년에는 차산업 발전 및 차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한국차인연합회와 함께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쳐 2015년 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차가 커피나 홍차에 밀려 생산은 많이 되는데 소비가 적었고 차 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전혀 없었는데 이 법의 제정으로 한국의 차산업을 정립하게 한 것도 진주차인회의 주도로 가능하게 했다.
진주차인회는 한국차문화의 시조이자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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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역사 전통…진주차례회로 첫 시작 
차문화·차산업 발전 기여 다양한 활동

김대렴공 추원비·차진흥 관련 법 제정 
한국차인연합회 창립·차의 날 선포 등

대학교 등 다양한 곳에 소장 유물 기증
삼육대 박물관 건립 앞장 현재 명예관장

   
‘차’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체 역할
차문화 알리는 다양한 행사 추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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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주차인회 회원은
▲현재 진주차인회 회원만 40명이 된다. 진주차인회 안에 우리 회원이면서 별도 차인회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연담차인회, 죽향차인회, 선차차인회, 문화원차인회, 다정다례원, 오성다도원, 소원내다원 등 7개 단위 차회의 회장들이 진주차인회 소속이다. 차와 관련된 행사를 할 때 항상 같이 하고 있다.

▲ 지난 5월 진주성에서 열린 2016진주차문화축제에서 진주차인회가 헌다례를 하고 있다.
-회장님이 차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지금으로 부터 52년 전에 차를 처음에 접했는데 그때는 감기약으로 접했다. 그때만 해도 특별한 제다법이라는게 없이 차나무를 잘라서 건조시킨 다음 그 잎을 따서 겨울이 되면 감기약으로 먹었다. 지금도 화개에 가면 할머니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차향과 함께 꿀을 넣어 마시면 감기가 낫고 했는데 본격적으로 차를 마시게 된 계기는 30년 전이다. 당시 제재소를 운영하면서 술을 많이 먹었는데 당시에는 술을 먹고나면 꼭 복국집에 가서 해장을 했는데 그날 해장을 못한 상황에서 찻집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다. 해장도 못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마시니까 해장이 됐다. 그래서 “아! 차가 해장이 되네?”라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다. 이때 이후로 차를 사고 차기를 사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차의 매력은 무엇인가
▲1999년 서울 삼육대 박물관장으로 가면서 미술품 수집을 하면서 2600점을 기증하고 박물관을 만들었다. 박물관장실에서 교수, 직원들을 불러서 차를 마셨다. 내 차자리가 기독교 대학인데 해우소라고 했다. 머리 아픈 일이 있으면 차를 마시면서 서로 대화로 풀었다.
일본은 다도라해서 차를 ‘도’로 승화시키지만 한국의 다도는 ‘중정’이다. 서로의 진심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 우리나라에 차로서 교류한 것이 옛날에는 왕가나 양반가에서 했지만 민간에서 신분을 초월해 교류한 것은 초이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세분으로 나는 항상 그 세분을 차인으로서 존경하고 있다. 초이선사는 스님이고 다산은 고위직 출신의 양반, 추사는 서화가였지만 차를 가지고 대할 때는 서로 친구였다. 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격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차를 통해 신분을 초월하고 연령을 초월하고 차로서 교류관계가 경지에 이르도록 했는데 그런 부분을 보면 한국의 차 문화는 이웃에게 대접하는 문화이자 사람과 사람사이에 좋은관계를 다져가며 이를 지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삼육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내셨는데 어떤 인연인가
▲1남 4녀를 두고 있는데 자녀 셋이 삼육대를 나왔다. 그래서 학교를 자주 방문할 일이 있던 중 종합대학교에 박물관이 없는게 안타까워서 총장을 만나 내가 수집한 유물을 기증할테니 박물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더니 승낙했다. 내가 2600여점을 기증해 1999년 삼육대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박물관장으로 12년동안 근무했다. 지금은 삼육대 박물관 명예관장으로 자문을 해주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곳에 유물을 기증한 것으로 아는데
▲산청 한방박물관에 동의보감과 고서를 기증했고 생초 박물관에 옹관 등 67점, 국립진주박물관에 임진왜란 관련 유물, 국제대 박물관, 진주교대 고서 기증 등 다양하게 했다.

▲ 진주차인회가 지난 8월 신안공원 분수대 옆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제1회 백중맞이 달빛차회를 개최했다.
-애써 모은 유물을 기증하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취미로 수집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수집을 하다보니 유물을 관리하기도 쉽지가 않고 나만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하나둘씩 기증하게 됐다. 또한 당시에 같이 유물을 수집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식들이 팔거나 나누는 등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데 저는 박물관 등에 기증해 후세에 길이 남을 수 있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
▲진주차인회는 대한민국 500만 차인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최초의 차인회로서 전국의 차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으며 차의 날 행사, 김대렴공 추원비 건립 등 의미있는 일들을 해왔다. 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진주의 차문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제가 1999년 삼육대 박물관장으로 서울로 가면서 진주차인회 활동을 못하다가 퇴직하고 나서인 2010년 재가입을 해보니 여러 차인회가 생겨 있었다. 지금 진주에만 20여개의 차인회가 있는데 4년전 진주연합차인회라는게 생기면서 우리를 자기들의 단위 차인회로 만들려고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차문화를 선도해온 우리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7개 차인회와 함께 나와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앞으로 50년이 넘는 진주차인회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를 후배 차인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김상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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