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2를 곱하면 시간이 흐르는데 대한 체감속도가 나온다. 그러므로 10대는 그 속도가 시속 20이고 20대도 기껏해야 40이고 30대도 60 밖에 안 나온다. 요즘 차의 성능으로 중고 경차도 60은 속력도 아니다. 웬만하면 기본이 100이다. 흔히 60에서 80을 경제속도라 하면 그게 바로 사고 주범이라며 허허 웃고 만다.
하물며 평균 연령이 70, 80대면 이는 140에서 160을 놓고 질주하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노련한 운전자라도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차가 퍼질지 예측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제 아무리 에쿠스건 벤츠건 겉만 멀쩡했지 이미 이 차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로에는 차선을 무시한 채 엑셀레터를 밟아대는 10, 20대들의 차들이 넘쳐나니 한층 더 위험한 곡예를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평균연령이란 얼마가 되건 별의미가 없어 보인다. 지금 브레이크도 작동이 안 되는 차가 160, 180을 놓고 달리는데 그 안에 자신이 앉아 있다면? 그 심정이란 아마 총알택시를 한번이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카락이 저절로 서는 공포영화보다 더한 그 스릴을.
북한 발 김정일 사망소식은 접하는 순간 나는 제일 먼저 그가 느꼈을 시간에 대한 체감 속도였다. 69x2를 우리 나이로 쳐주면 70x2다. 그러면 140이다. 이 정도면 노인네 마음이 조금은 급했을 법도 하다. 그러니 영하 12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기차를 탔을 것이다. 그날 그 지점이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되리라고는 알지 못한 채.
그래도 그의 죽음에 통곡하는 북한 주민들의 화면을 보자니 내 중학생 시절 여름에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졌을 때 아빠 엄마가 밥을 못 드시고 울던 터라 우리도 멋도 모르고 울던 기억이 새롭다. 어디 그 뿐인가 그해 예비고사를 얼마 앞두고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그 비보를 접했을 때는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초등1학년 때부터 고3 때까지 대통령은 박정희였으니까. 촌 노인들은 육여사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비통해 하며 애도를 표했다. 절식과 금식이 저절로 우러나서 행하는 그 때 그 어른들 틈에서 박정희는 하나님과 거의 동격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난 그때 어렴풋이나마 처음 알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의 이 종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계산들을 하고 있을까. 김정남은 큰아들이면서 아버지의 임종은커녕 상주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가 되는 걸 보면 권력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이제 남과 북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호걸들의 한 세대가 막을 내렸다. 부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으면 좋겠다.
새 달력을 받을 때는 그래도 좀 두툼한 지갑같이 쓸 게 있는데 여름만 지나면 바로 겨울이고 12월이다. 만약 김정일이 급병인 심근 경색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를 어떻게 내려놓고 갔을까. 박정희 박태준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니 그나마 이 세상이 공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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