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체감속도
시간의 체감속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2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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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나이에 2를 곱하면 시간이 흐르는데 대한 체감속도가 나온다. 그러므로 10대는 그 속도가 시속 20이고 20대도 기껏해야 40이고 30대도 60 밖에 안 나온다. 요즘 차의 성능으로 중고 경차도 60은 속력도 아니다. 웬만하면 기본이 100이다. 흔히 60에서 80을 경제속도라 하면 그게 바로 사고 주범이라며 허허 웃고 만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할수록 예민해지는 감각이 하나 있으니 바로 세월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다. 이때 위의 공식이 딱 맞아 떨어진다. 40대 때만해도 그래도 시속이 80이라 그런지 모든 일에 그렇게 조급하지가 않았다. 허나 이제부터는 시속 100을 놓고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양 손에 땀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60, 70대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하물며 평균 연령이 70, 80대면 이는 140에서 160을 놓고 질주하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노련한 운전자라도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차가 퍼질지 예측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제 아무리 에쿠스건 벤츠건 겉만 멀쩡했지 이미 이 차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로에는 차선을 무시한 채 엑셀레터를 밟아대는 10, 20대들의 차들이 넘쳐나니 한층 더 위험한 곡예를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평균연령이란 얼마가 되건 별의미가 없어 보인다. 지금 브레이크도 작동이 안 되는 차가 160, 180을 놓고 달리는데 그 안에 자신이 앉아 있다면? 그 심정이란 아마 총알택시를 한번이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카락이 저절로 서는 공포영화보다 더한 그 스릴을. 

북한 발 김정일 사망소식은 접하는 순간 나는 제일 먼저 그가 느꼈을 시간에 대한 체감 속도였다. 69x2를 우리 나이로 쳐주면 70x2다. 그러면 140이다. 이 정도면 노인네 마음이 조금은 급했을 법도 하다. 그러니 영하 12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기차를 탔을 것이다. 그날 그 지점이 자기 인생의 종착역이 되리라고는 알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이 죽음을 앞에 두고 애도를 표하기도 그렇고 욕을 하기도 그렇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오늘 이런 자신의 종말을 예측하면서 평소에 좀 더 크게 보고 좀 더 멀리 보고 좀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북한을 통치했었더라면 하는 면에서다. 그랬다면 아마 북한과 남한은 물론 세계정세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게 다 부질 없는 얘기다.

그래도 그의 죽음에 통곡하는 북한 주민들의 화면을 보자니 내 중학생 시절 여름에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졌을 때 아빠 엄마가 밥을 못 드시고 울던 터라 우리도 멋도 모르고 울던 기억이 새롭다. 어디 그 뿐인가 그해 예비고사를 얼마 앞두고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그 비보를 접했을 때는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초등1학년 때부터 고3 때까지 대통령은 박정희였으니까. 촌 노인들은 육여사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비통해 하며 애도를 표했다. 절식과 금식이 저절로 우러나서 행하는 그 때 그 어른들 틈에서 박정희는 하나님과 거의 동격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난 그때 어렴풋이나마 처음 알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의 이 종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계산들을 하고 있을까. 김정남은 큰아들이면서 아버지의 임종은커녕 상주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가 되는 걸 보면 권력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이제 남과 북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호걸들의 한 세대가 막을 내렸다. 부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았으면 좋겠다.

새 달력을 받을 때는 그래도 좀 두툼한 지갑같이 쓸 게 있는데 여름만 지나면 바로 겨울이고 12월이다. 만약 김정일이 급병인 심근 경색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를 어떻게 내려놓고 갔을까. 박정희 박태준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니 그나마 이 세상이 공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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