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관공서 주취소란, 밤마다 찾아오는 전쟁
기고-관공서 주취소란, 밤마다 찾아오는 전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0.17 19:09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화/김해서부경찰서 장유지구대 순경
 

이동화/김해서부경찰서 장유지구대 순경-관공서 주취소란, 밤마다 찾아오는 전쟁


“어떻게 저의 마음이 그 오랜 혼돈과 폭력 속에서도 온전할 수 있었는지 집어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알게 됐네요. 저는 시민들을 사랑하고, 불량한 시민이라도 사랑하며 제가 속한 사회에 보답하려 했습니다” -미국의 한 경찰관

야간에 근무를 하다보면 관공서 주취소란과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 중 사건화되지 않는 것들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이 많다. 취한 채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저러다 큰일이 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까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했다.

술을 마심으로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이다.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의 정서안정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도 한다. 경찰관에게는 고맙게도 술을 즐기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신사들도 많다. 그러나 취한 채로 지구대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본인에게나 경찰관에게나 심각한 피해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람이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행동에 대해서는 심리학에서도 정신분석학과 상담심리학에 따라 의견이 달라진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픔의 우회적인 표현.” 이라는 것이다.

“음주소란을 일으키고픈 욕구는 생리적 갈증이라기보다는 내면의 불안이나 억압을 해소하고자 하는 정신적 공복에서 온다”-에릭 프롬

그건 맞는 말 같았다. 취한 상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픔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보통 자신의 억울한 사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음주소란으로 경찰에게 불편을 주기는 하지만 삶의 고통 속에서 기댈 곳 없이 찾아온 이분들을 전과자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보다는 심리치유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대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주취자들이 술에 취한 채로 보내주는 메시지를 편견 없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메시지의 대부분은 불안과 관계된 이야기였다. 사업에 실패했다거나, 심각한 실패를 겪었다거나, 길을 잃어버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발음이 불분명해 듣기 어렵기도 했지만 때론 과거 나의 삶의 여정이 떠올라 안타까운 적도 많았다. 가능하면 희망과 의지의 메시지를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 희한하게도 온화해지는 주취자도 있었다. 희망과 의지의 메시지는 술에 취한 마음을 넘어서도 전해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모든 주취자들이 다 아픔을 토로하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경찰관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여러차례 지구대를 찾아오는 악성 주취자도 있었다. 친절을 맛본 이 사람들은 자신의 난동과 소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는 경찰관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주취자들은 유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언어를 통한 의사표현을 배우지 못한 유아기의 아이들은 건강한 의사교류보다는 소란을 통해 어른들과 대화하려 한다. 그런 생활양식이 그대로 굳어진 채 몸만 어른으로 성장해버린 것이다.

나는 악성 주취자에게 간혹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왜 꼭 지구대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방식이라야 하는 겁니까?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좀 더 다정한 방식으로 해볼 수 있는 건 아닌가요?” 이런 이야기가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었다. 없으면 결국 형사절차로 가야했다. 좀더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았다.

관공서 주취소란은 경찰관들에게는 고난이다. 물론 술에 취한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고통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기에는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경찰관들도 제복은 입었지만 속은 사람이다 보니 주취자들이 뱉는 심각한 모욕에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모든 시민들이 경찰관들에게 좀더 따뜻한 예절로 대해줄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