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特性)(2)
지난번에 이어 중국 문학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춘추’이후 주인(周人)의 활동이 장강(長江)에 미쳐 초(楚)의 문화가 눈뜨자 장강 유역을 중심한 순수한 남방문학인 <초사(楚辭)>가 생성되어 북방의 <시경>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비교적 자유롭고 활발한 남방인은 4언의 구속을 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스러운 구법을 좋아한 나머지 ‘혜·사·지’ 등의 어조사를 붙여 시가를 생동하게 발전시켰다. 초사의 최초 작품인 <구가(九歌)>는 초인의 신앙과 정열을 옮은 가요로서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그 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구장(九章)>·<천문(天問)>과 송옥의 <구변(九辯)>이 왕일(王逸)의 <초사장구(楚辭章句)>에 담겨있다. 이들 작춤에 공통된 것은 아름다운 공상과 비분한 충정사상이 서로 융합되어 침통하면서도 우미한 감정을 저변에 깔고 해방된 형식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점이다.
‘위대’의 시가론 완적(阮籍)의 <영회시> 82수가 내놓을 만한 것이며, 위(魏)가 시사에 차지하는 사적 의의로는 7언시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시경>이나 <초사>에서도 7언체를 발견할 수 있지만, 하나의 조직된 순수한 7언은 조비의 <연가행(燕歌行)>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으니, 이는 남북조를 거쳐 당대에 이르러 성공케 한 출발인 것이다.
‘서진’에 와서는 삼장·이육·양반, 일좌를 일컫는데, 모두가 진(晉) 무제(武帝) 때의 시인들이다. 동진에 이르러서는 유곤(劉琨)·곽박(郭璞)·도잠(陶潛) 등을 대표로 들 수 있으나 그들의 시 가운데 도잠의 개성적인 전원시를 제하고는 완적의 영회시의 기풍, 아니면 남북조의 기려한 풍격으로 줄달음치는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남북조’는 조장탁구(雕章琢句)를 능사로 하는 조충적(雕蟲的) 시형과 격률을 능사로 하는 건축적 시형이 성행한 예술을 위한 시작(詩作)의 시대요, 또 7언고시가 창도되고, 격률을 배경으로 한 근체시의 온양(醞釀)적 역할을 맡은 시대이기도 하다. 마침 심약(沈約)의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의 제창이 있자 대우(對偶)와 평측(平仄)으로 음절의 화해(和諧)를 추구하게 된 즈음이라 그들의 5언시는 점차 자연의 운미(韻味)를 잃기 시작했다. 초기의 사령운(謝靈運)과 사조(謝朓)는 산수를 읊었지만 조탁을 능사로 삼았고, 후기의 심약·음갱(陰鏗)·하손(何遜)·유신(庾信)·설도충(薛道衝) 등은 격률에 정공(精工)하여 일찍이 두보에게 추업(推業)받은 바 있는 근체시의 선구자들이다. 한편 포조(鮑照)나 소연(蕭衍) 등의 시풍은 호방(豪放)스럽고 자연스러웠다. 그중 포조는 남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그의 <행로난(行路難)> 18수는 7언고시의 창도적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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