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철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칼럼-철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0.24 18:4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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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철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연구 대상이 분명한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어느 철학 교수가 내는 시험 문제가 매 학기 같았다. 그 문제가 바로 ‘철학이란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학생들은 미리 답안을 외웠다가 시험을 쳤다. 어느 학기에 역시 같은 교수가 칠판에 시험 문제를 적기 시작했는데, ‘철’자로 시작하지 않고 ‘도’자로 시작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이번 학기에는 문제가 다르구나, 망했다! 라고 당황하고들 있는데 ‘도대체 철학이란 무엇인가?’였다. 어찌 보면 이것이 철학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버트랜드 러셀은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키엘케고르는 ‘철학은 날마다 허물을 벗는 뱀이다’ 그런가 하면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라고 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인데, 올빼미는 낮에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밤이 되어야 활동을 한다. 이것이 철학이라는 뜻이다. 이미 다 지나가고 나서 반성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문장을 하는 선비들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 그가 쓴 글의 결점을 말해주면 기뻐하며 즐겨듣고 고치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 결점을 알면서도 화를 내고 일부러 고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오기편〉에 보면 ‘고봉 기대승은 자신의 문장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으므로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지제교(임금의 교서를 쓰는 담당관)가 지은 글에 승정원 찌를 붙여 그 결점을 지적하자. 화를 버럭 내면서 아전을 꾸짖고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하지만 정사룡은 기대승과는 정반대였다. 자신이 지은 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누군가 결점을 지적해주면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고서 고치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였다. 퇴계 이황이 어쩌다 부족한 것을 지적해 주면 정사룡은 붓을 들어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고쳤는데, 퇴계도 그가 거스르지 않음을 아름답게 여겼다. 일찍이 정시(庭試:대궐 뜰에서 관원에게 보이던 시험)에 퇴계는 등왕각(騰王閣)을 제목으로 한 배율 20운을 짓고는 정사룡의 율시를 보자고 청하니, 정사룡은 자신이 기초한 시를 보여주었다. 퇴계가 정사룡이 지은 ‘달빛이 처마의 빈 곳으로 들어오니 새벽에 앞서서 밝고, 바람이 성긴 주렴에 스며드니 가을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서늘하구나!’라는 대목을 읽다가 말고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기를 “오늘 시험에 당신이 장원이 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장원이 되겠는가?” 하고서 퇴계는 자신이 쓴 시는 소매에 넣고 끝내 내놓지 않았다. 결국 퇴계는 시험지도 제출하지 않은 채 돌아갔다’라고 적고 있다.

중국 속담에 ‘마누라는 남의 마누라가 예뻐 보이고, 글은 자기가 쓴 글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글에 자부한다. 그래서 글자의 한 획이라도 바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편집자에게 재량권을 주면서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두 가지 다 타당성은 있다.

에머슨은 ‘문학과 사회목적’에서 ‘훌륭한 문자의 원작자 다음 가는 자는 그것의 첫 인용자이다’라고 말했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기 작품들이 다른 박식한 작가들에 의해서 정중히 인용된 것을 보는 것처럼 작가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다’라고 했다. C.C 콜은은 〈라콘〉에서 ‘우리가 현대물에서 사상을 도용하면 표절이라고 헐뜯을 것이요, 고전에서 뽑으면 박식하다고 추켜세울 것이다’라고 했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어제의 일이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의 일이 내일로 이어지니, 그래서 나는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온전히 아름다운 땅은 없다(風水無全美)’라는 말을 좋아한다. 온전히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워지고자 노력하고 온전해지고자 온 힘을 다해 사는 것. 그것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견지해야 할 사람의 철학적 자세가 아닐까? 그래서 공자는 ‘향기로운 풀이 깊은 숲 속에서 자라지만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향기롭지 않은 것이 아닌 것처럼 군자가 배우는 것은 세상에 쓰이기 위해서가 아니다(芷蘭生於深林 非以無人而不芳 君子之學 非爲通也)’라고 했다. 독서의 계절에 책들을 많이 읽어서 향기를 가슴 깊이 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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