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온 젊은 목사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다
서울에서 온 젊은 목사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다
  • 대담 / 황인태 본지 회장
  • 승인 2016.10.24 18:42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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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회(평안동) 김기덕 담임목사

▲ 김기덕 진주교회 담임목사는 “예수 제자다운 삶을 사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작은 질서부터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게 제자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고 말했다.
진주 기독교계에 조용한 바람이 불고 있다. 평안동 진주교회에 최근들어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기독교인이 줄어드는 전반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진주교회는 신도가 착실하게 늘고 있다.  젊은 목사가 이 교회를 담임한 지난 3년 동안 벌써 신도수가 70~80명가량 늘었다. 대부분이 젊은 신도들이다. 진주교회 신도들도  성경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 신도는 새 신도대로 기존 신도는 기존 신도대로 철저히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열정을 본받자”는 구호아래 성경중심, 말씀 중심의 교회생활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평안동 진주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를 이끄는 사람은 2013년 10월 4일 제19대 담임목사로 진주교회에 부임한 김기덕(47) 목사이다. 김 목사는 진주교회와 아무런 인연이 없이 공개적인 모집을 통해 청빙한 담임목사이다.

김 목사가 부임한 이래 진주교회는 말씀중심, 성경중심, 예배중심의 신앙생활과 사회공헌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기독교인이 되자, 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 목사는 이에따라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사회공헌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이웃을 위한 사랑의 음악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랑의 연탄배달, 교회 어른들을 위한 경로잔치, 젊은 엄마들을 위한 ‘맘 투게더’등의 기획을 개발, 시행하고 있다.

신앙은 성경중심으로 사회생활은 철저한 봉사정신으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나가자는 김 목사의 목회방침이 진주교회를 넘어 진주 기독교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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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회에 부임한 지난 3년간 젊은 교인들 발걸음 늘어나
‘맘 투게더’프로그램 통해 아이에 지친 젊은 엄마들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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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년 역사의 평안동 진주교회 전경
대담 / 황인태 본지 회장

-평안동 진주교회에 부임한 것이 언제인가
▲2013년 10월 4일이다. 3년이 조금 더 지났다.

-진주교회에 인연이 있었나
▲전혀 없다. 진주와도 인연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진주교회에 오게 됐나
▲공개적인 청빙을 통해 오게 됐다. 쉽게 말해 공채를 통해 뽑힌 것이다.

-공채라면 떳떳하겠다
▲그렇다. 기존 사람들과 얽힌 인연이 없으니 소신껏 목회를 할 수 있다.

-고향은 어디인가
▲대구이다. 목회를 처음 시작한 곳도 대구이다. 대구가 내 신앙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진주교회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서 목회를 했나
▲서울의 서울역 근처 염천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었다.

-진주에 와 보니 어떤가
▲처음 진주에 올 때 진주가 이렇게 기독교 복음화가 낮은 곳인 줄 모르고 왔다. 진주는 전국에서 기독교 복음화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그래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
▲진주시민이 34만명 정도 된다. 이 중 1%는 영혼구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0%에는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혼구원이라면 기독교인을 만들겠다는 의미 같은데 진주시민의 1%면 3400명이다. 매우 큰 숫자 아닌가
▲큰 숫자일 수도 있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그리 큰 숫자도 아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을 다 진주교회 교인으로 만들 생각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주교회에 오지 않더라도 기독교를 믿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활동을 통해 진주 전체에 기독교인이 늘어나면 된다.

-사람들이 혼동을 많이 하는데 평안동 진주교회와 봉래동 진주교회는 어떤 관계인가
▲원래 한 교회였다. 그런데 1959년 신학적인 견해의 차이로 일부신도가 분리돼 나와 지금의 평안동 교회를 만들었다.

▲ 진주교회 신도들이 22일 사랑의 바자회를 열고 있다.
-신학적인 차이라는 게 뭔가
▲일반인들의 눈에 보면 큰 차이는 아니다. 그러나 신도들에게는 나름 중요했기 때문에 분리된 것이다. 평안동 진주교회는 예수교 장로회 통합에 소속돼 있고 봉래동 진주교회는 예수교 장로회 합동에 소속돼 있다. 이정도 차이이다.

-목사님 말씀처럼 비기독교인인 제 입장에서 보면 큰 차이는 아닌 것 같다.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 그런 차이로 인해 1959년 교회가 분리됐고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럼 평안동 진주교회도 1905년 호주에서 온 커렐 선교사가 세운 그 역사를 사용하는가
▲그렇다. 평안동 진주교회도 커렐 선교사가 1905년 세운 역사를 교회의 역사로 보고 있다. 커렐 선교사로부터 제가 19대 담임목사이다.

-평안동 진주교회 신도는 몇 명이나 되나
▲출석교인 기준으로 550명 정도 된다.

-이정도면 큰 교회 아닌가
▲작은 교회는 아니다.

-진주교회에 와서 목회의 철학은 무엇인가
▲예배중심, 선교중심, 교육중심 세 가지를 세웠다.

-왜 이런 원칙을 세웠나
▲진주교회는 선교사가 세운 교회이다. 따라서 우리의 근본이 선교에서 시작됐으니 우리도 선교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교회를 다니지만 사실 성경을 잘 모른다. 그래서 교육을 철저히 시키려고 한다.

▲ 진주교회 사랑의 바자회 행사에서 신도들이 불우이웃 난방비 마련을 위한 사랑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좀 변화가 있나
▲성경공부를 철저히 시키니 우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만큼 신도들이 말씀에 목말라 있었다는 증거라고 본다. 그래서 교회운영도 점차 젊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신도는 좀 늘었나
▲사실 저는 성장주의자는 아니다. 신도를 늘리는 것이 제 목표는 아니다.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신앙인을 만드는게 제 목표이다. 그래서 신도수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또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난 3년간 약 70~80명 정도 늘었다고 들었다. 예배때마다 교회당이 꽉찬다. 제가 보기에도 신도가 좀 는것 같다.

-진주교회의 사회공헌은 어떤 것들이 있나
▲오늘 하는 것도 그 일환인데 사랑의 바자회를 일 년에 한번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은 전액 독거노인이나 다문화 가정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작년에 처음 시작했다. 작년에는 130세대를 찾아서 ‘사랑의 박스’를 전달했다.

-사랑의 박스가 무언가
▲그 안에 생필품을 넣은 박스이다. 또 사랑의 연탄도 지난해 3000장을 돌렸다. 올해는 5000장으로 늘릴 생각이다.

-또 어떤 것이 있나
▲사랑의 음악회를 1년에 한번 연다.

 
-사랑의 음악회는 어떤 내용인가
▲수준 높은 대중 음악인들을 초청해 교회 주변 사람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진주교회는 시장 통에 있는데 시장상인들이 생업에 바쁘다 보니까 문화예술공연장을 자주 찾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상인들에게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하고 있는 행사이다.

-젊은 엄마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3040엄마들의 힐링을 위해 ‘맘 투게더’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맘 투게더가 어떤 내용인가
▲이 연령의 엄마들은 아이들 키우느라 지쳐있다. 그래서 이 엄마들을 힐링하자는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강의와 소그룹 나눔, 강사초빙 등을 통해 남편을 이해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가정을 세워가는 방법을 배우자는 의미이다. 우리교회 엄마들을 시작으로 점차적으로 늘려나갈 생각이다.

-일종의 교리 교육인가
▲그렇지는 않다. 굳이 기독교 교리를 교육시키는 건 아니다. 부부관계, 대화법, 자녀교육법 등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교육한다. 외국에서 유행했던 마더와이즈, 어머니 기도회 등을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엄마들이 바로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 바로 세우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목사는 언제 신앙을 갖게 됐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런데 초등 6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게 됐다. 그래서 살던 집이 경매로 나가고 쫓겨 나는 상황에 몰렸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때 한달동안 이유를 모르는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돈 2만5000원이 없어서 병원을 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제 병원비 2만5000원을 빌리는 장면을 봤다. 그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살려 달라. 집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기도하고 울면서 자연스럽게 회개를 하게 됐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알게 됐고 돈이 부럽지 않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됐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그런 생각을 아직 하지 않을 때인데 조숙했던 것 같다
▲좀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지독한 가난, 질병 등을 통해 사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런 경험으로 신학대학을 진학하게 된 건가
▲그렇다. 영남대 신학대학을 통해 연세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고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올 2월에 목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회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1993년 대구에 있는 남도교회에서 전도사를 시작으로 목회에 참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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