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아침을열며-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1.08 18:1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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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공교롭게도 나는 일본에 유학중일 때 518사태를 접했다. 그리고 독일에 파견중일 때 IMF사태를 접했다. 그리고 미국에 파견중일 때, 한국계 학생의 거짓 폭발물 설치 신고로 인한 하버드초유의 시험 중지 사태를 접했다. 그리고 그때와는 조금 다르지만 중국손님을 국내에 초청해 행사를 치르고 있을 때 이번 최순실 사태를 접했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 대한 한없는 부끄러움이었다. 한국이라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외국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종류의 부끄러움은 그것으로 다도 아니다.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 뿌리도 깊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역사 자체가 그런 부끄러운 일들로 점철돼 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짚어볼 수도 없지만, 비교적 가까운 일들로서는 세계의 동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저 경술국치, 그리고 아무런 의미없이 엄청난 피만 흘린 저 625 민족상잔…그 모든 것이 다 부끄러움들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그런 일들이 부끄러움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다. 우리는 ‘이대로 좋은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 좋다’고 한다면 답이 없지만, ‘이대로 좋을 턱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부끄러움들을 부끄러움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라고 설파한 공자를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인줄 모르는 것, 그것이 부끄러움이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고쳐나간다면 우리는 그 부끄러움을 오히려 ‘자랑스러움’으로 변환시킬 수가 있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그런 자랑스런 역사도 있다. 이를테면 ‘분발’과 ‘민주주의’도 그 중 하나다.

작년에 나는 이웃 일본에 강연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센다이의 도호쿠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교토의 교토대학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신칸센으로 이동하면서 초청해준 일본 학회의 멤버와 긴 차중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그 일본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본에 의한 역사의 단절이 있었던 만큼 서양철학의 수용과 연구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많이 늦었다. 그러나 분발의 결과 이제는 그 격차가 좁아졌다.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가는 면도 없지 않다. 우리는 그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종사하는 하이데거 연구의 경우, 우리는 일본보다 먼저 전문 학회를 결성했다. 학회지의 발간도 일본을 앞지른다. 작은 일부이지만 분명히 그런 면도 있는 것이다. 아니 연예산업을 비롯해 제법 많다. 거기에 이어 나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 한국이 일본에게 자랑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물론 일본도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패전 후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인들 자신이 크나큰 희생을 치르며 자력으로 발전시켜온 것이다. 일본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성격이 다르다” 대충 그런 취지였다. 그 일본친구는 좀 자존심이 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우리는 수차례 반민주적 독재를 경험했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지만 과는 과대로 직시해야 한다. 1공 정부도 3공 정부도 5공 정부도 다 독재였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419항쟁과 부마항쟁과 518 및 610항쟁으로 맞서왔다. 수많은 피의 희생을 치르면서다. 누가 뭐라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민주주의는 그 결과물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극복한 결과물이다. 바로 그 부끄러움이 있었기에 이 자랑스러움도 있는 것이다.

2016년, 지금 우리는 또 다시 큰 부끄러움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부끄러워하자. 그리고 이 부끄러움을 넘어서 가자. 그래서 이것을 오히려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만들어가자.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가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역량이 있다. 성숙한 사회가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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