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느 중학생의 일기(Ⅱ)
칼럼-어느 중학생의 일기(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1.21 18:1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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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어느 중학생의 일기(Ⅱ)


나는 서울대학을 들어갈 수 없는 B급이라는 말을 엄마한테 알려줄 수도 없다. 엄마는 믿지 않을 것이고,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런다고 쿠사리나 먹을 것이다. 나는 판검사라는 것이 싫다. 엄마는 그런 것 하나도 모르면서 나한테는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이것저것 다 정해버린 것이다. 그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아빠다. 무조건 엄마 말에 “좋지, 좋아! 우리 아들이 서울대학교 나와서 판검사 나으리 되시면 가문의 영광이고, 이 아빠 체면 쫘악 서고,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라고 하면서 찬성을 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판검사 되는 게 싫다. 기막히게 멋진 영화를 보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하고, 전혀 미남으로 생기지 않고 평범한 얼굴인데 눈물 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보면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환장하게 갖고 싶은 멋진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하고, 스릴이 기막힌 컴퓨터 게임에 취하다 보면 게임 설계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여행비를 벌어가며 세계일주 여행을 한 얘기를 TV에서 보다 보면 그런 여행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엄마가 죽이려고 할 것이다.

내가 끔찍스럽고 무서운 건 중3인 지금도 숨 막히게 하는데 앞으로 고등학생이 되면 얼마나 더 심해질까 하는 걱정이다. 생각만 해도 몸이 오그라들고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당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지금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나를 감시해 왔다. 딴 짓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밤중에 공부를 하다가 뒤가 이상해서 돌아보면 소리 없이 열린 문 사이에 엄마의 얼굴이 끼어 있곤 했다. 그럴 때 얼마나 심하게 놀라는지 모른다. 그럴 때 엄마의 얼굴은 엄마가 아니었다. 무슨 무서운 괴물 같기만 했다. 앞으로 엄마가 점점 더 무섭게 변해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니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나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죽으려고 생각하면 이 나이에 죽는 게 너무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 게 정말 억울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러나 독재자 엄마가 나의 희망을 허락할 리 없다. 그러니까 죽어야 한다. 나는 죽는 게 무서워서, 살고 싶어서 오늘도 사이트에 내 글을 달지 못하고 물러난다. 근데 엄마가 사자처럼, 악마처럼 무섭게 버티고 있다. 엄마는 대학 나온 무식쟁이다. 그러니 죽어야 한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아빠는 돈만 열심히 벌어 엄마한테 바치는 ‘찌질이’‧‘빌빌이’일 뿐이고, 누나는 남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일 뿐이다.

이 학생의 일기를 보면 엄마들의 일방적인 사랑. 그거 자식들 죽이는 독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 엄마 아빠를 ‘미친년’‧‘개새끼’는 예사고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욕으로 불러댄다고 한다. 엄마들이 놀지도 못하게 하고, 운동도 못하게 하고, 읽고 싶은 책도 못 읽게 하고 자나 깨나 얼굴만 대하면 그저 공부, 공부, 공부, 노래를 불러대면 그게 너무 지겹고 끔찍스러워 사랑이 아니라 독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성이 강할수록 자식에 대한 욕망은 커지고, 욕망이 클수록 집착하게 되고, 집착이 클수록 시행착오를 많이 범하게 되고,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자기 아집이 강해지게 된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 15년 동안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이 8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우리 군인들이 5099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연간 500명을 넘어 하루 평균 1.5명이 죽어가고 있으며 한 해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7만 명씩이나 된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죽은 학생들의 숫자는 그렇지만 지금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애들이 얼마나 될까하고 생각해 보면 끔찍하기만 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엄마들의 극성스런 성화 속에서 죽음을 향한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데도 자식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희생하는 엄마들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엄마들의 자식 교육열은 끝없는 이기주의가 뒤엉켜 벌이는 난투극이다. 특히 공교육은 사설 학원들 앞에서 맥을 못 쓰고 있다. 그 책임은 정부, 학교, 학부모에게 책임이 있다. 1968년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에는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라는 목표가 설정되어있는데도 영‧수‧국에만 몰두하고 있는 획일적인 교육정책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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