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천교 암벽 인공폭포 만들면 래프팅 활성화 될 것
어천교 암벽 인공폭포 만들면 래프팅 활성화 될 것
  • 글/한송학·사진/이용규기자
  • 승인 2016.11.28 18:25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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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어천마을 ‘진돗개’ 신종철 이장

▲ 신종철(57) 이장은 산청읍에서 태어나 객지에서 방황을 많이 했다. 그러다 어천마을에 정착해 경제적으로 성공을 했다. 팔자에 없는 어천마을 이장을 맡아 지금까지 9년 동안 성공적으로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산청군 농협 단성면 이사로 선출돼 신 이장의 활동 폭이 더 넓어졌다. 9년 동안 어천마을 이장직을 수행하면서 어천마을 진돗개로 불릴 정도로 어천마을 이익을 위해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백두대간 들머리’기념관 후손들에게 역사의 비운 알릴 것
9년간 어천마을 이장하면서 어천마을 진돗개라는 평 들어

진주에서 산청읍 방향으로 3번 국도를 타고 가다 원지를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경호강 건너편에 어천마을이 나온다. 어천마을은 뒤로는 1090m에 이르는 웅석봉, 옆으로는 어천계곡, 앞으로는 경호강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어천마을은 경호강 래프팅의 종점이다. 또 지리산둘레길 6구간의 종점이고 7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국도 3호선과 대진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의 요지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과 교통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원주택지로서는 지리산전체에서 최고의 위치가 됐다. 전원주택지라고 하지만 진주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어 진주, 사천으로 출퇴근 하는 마을 주민도 많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이 마을은 현재 100여 호가 살고 있다. 20년 전 만 해도 20가구가 채 되지 못하던 작은 마을인데 풍수가 수려해 최근 급격히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9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산청읍에서 태어난 신종철(57)이 바로 그 사람. 신 이장은 젊어서는 방황도 많이 했고 객지에 나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도 많이 했다. 그러나 어천에 자리 잡은 이후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신 이장이 어천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년 전인 1997년이다. 진주에서 사업에 실패해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잘 지내던 선배가 “어천에 땅이 있는데 자네가 집을 지어서 거기서 살면서 재기를 모색해보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선배의 권유로 원래 고향이던 산청읍에서 조금 떨어진 어천에 들어와 마음을 잡았다. 당시는 래프팅이 활성화 돼 있던 시기라 여름철에 래프팅만으로도 돈을 꽤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집도 사고 펜션도 하나 구입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선배의 도움이 기반이 돼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것. 올해에는 산청군 농협의 단성면 이사도 됐다.

신 이장은 이렇게 자신의 살림살이가 안정되자 동네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어천마을이 개발돼 외부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2007년 팔자에 없는 이장을 맡았다. 처음에는 잠시 하려고 했던 것이 벌써 9년째이다. 산청군에서는 장수 이장에 속한다. 신 이장이 이장을 맡은 이후 어천마을은 크게 정비됐다. 우선 여름이면 침수피해를 입던 마을 앞 제방이 완성됐다. 올해 말이면 준공을 하게 되는 마을 앞 제방은 총 길이 660m로 제방이 완성되면 아무리 큰 비가 와도 침수피해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제방으로 인해 마을이 반듯한 모양을 갖추게 됐다. 또 마을 안길도 완성했다. 좁았던 마을 안길이 모두다 아스콘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마을회관도 세 곳이나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신 이장을 ‘진돗개’라 부른다. 한번 일을 물면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별명이 붙었다. 신 이장도 이 별명이 싫지는 않다. 자신도 마을을 지키는 진돗개가 되고 싶다. 이장일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과 마을의 공동이익을 위해 밤을 낮 삼아 지키는 진돗개가 되고 싶다.

신 이장에게는 아직도 남은 꿈이 있다. 우선 어천교 옆에 인공폭포를 세우는 일이다. 어천교를 지나오다 보면 오른편 경호강 언덕에 30m 높이에 이르는 절벽이 있다. 이 자연 절벽에 인공폭포를 만들면 경호강 래프팅도 활성화 되고 산청의 관광자원도 될 것이라는 게 신이장의 생각. 아무리 동의보감촌을 만들어도 실제 산청주민들의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는 것은 경호강 래프팅이라는 게 신 이장의 지론이다. 신 이장의 또 하나의 목표는 ‘백두대간 들머리’기념관을 만드는 것이다. 어천마을 뒷산인 웅석봉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남쪽에서 보면 첫 봉우리인 셈. 이에 따라 신 이장은 어천마을 입구에 ‘백두대간 들머리’ 표지석을 세울 준비를 마쳤다. 신 이장은 들머리 표지석을 세운 후 여기에 기념관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실제 어천마을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던 마을이다. 6·25 전쟁 때에는 휴전선이 막히자 덕유산에서 남하하던 남부군이 어천마을을 통해 지리산에 들어갔다. 빨치산 활동의 근거지가 됐던 곳. 이러한 역사의 비운으로 인해 여러 전설이 많은 마을이다. 이런 전설들을 수집하고 역사적 자료를 모아서 후세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념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어릴 때는 개구쟁이였고 젊어서는 방황도 많이 했던 신종철 이장. 그러나 선배의 도움으로 어천마을에 들어와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재미도 알게 됐다. 이제 어천마을을 전국에서 최고로 가는 아름답고 스토리가 있는 마을로 만들어 가는 게 그의 남은 인생의 목표가 됐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어천마을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마을로 만들어 나갈지 신종철 이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 신종철 이장은 어천마을에 ‘백두대간 들머리’ 기념관을 만드는 일과 어천교 근처 경호강가에 인공폭포를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신 이장은 경호강 래프팅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산청경제에 가장 효과적인 일인데 산청군청에서는 주민들 소득증대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동의보감촌 만들기에 예산을 다 쓰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마을주민과 올해 말 완공되는 어천마을 제방을 걷고 있는 신종철 이장.
다음은 신 이장과의 일문일답.

-어천마을에 들어온 게 언제인가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7년이다.

-원래 고향이 어천인가
▲아니다. 원래 고향은 산청읍이다. 그런데 당시 진주에서 하던 사업이 실패해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잘 지내던 선배가 어천에 땅이 있는데 거기서 집을 짓고 살아봐라, 그러시더라. 그래서 어천에 들어왔다.

-처음 어천에 들어올 때 동네 상황이 어땠나
▲그때는 마을이 20가구가 채 안됐다. 그런데 지금은 100호가 넘는다. 물론 완전히 퇴거를 해서 사는 사람들은 56호이지만 주말에 오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00호가 넘는다. 어천은 그동안 상전벽해의 변화를 했다.

-어천이 이렇게 크게 발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천은 서부경남에서 보면 가장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어째서 그런가
▲어천마을은 뒤로는 1000m가 넘는 웅석봉이 자리 잡고 있고 옆으로는 어천계곡이라는 자연계곡이 있다. 또 앞으로는 경호강이 흘러 완벽한 배산임수의 위치이다. 또 진주에서 20분 정도 걸려 사실상 진주의 외곽지역이라 할 수 있다. 도로도 3번 국도와 대진고속도로가 지난다. 접근성이 그 어느 곳 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마을 사람 중 일부는 진주와 사천까지 통근을 하기도 한다. 통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주민이 늘어나고 있나
▲그렇다. 현재 건축허가가 진행 중이거나 허가가 난 곳이 30가구 이상이다. 허가가 난 곳이 모두 완성이 된다면 어천마을은 산청에서는 가장 빨리 인구가 늘어나는 마을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어천마을은 명품 마을이 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산청군청에서는 어천마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나
▲그게 좀 실망스런 부분이다. 지금까지 어천마을은 산청군의 행정지원 없이 성장한 마을이다. 제가 보기에는 어천마을은 산청읍과 원지의 중간지점이다. 따라서 어천마을이 발전하면 산청읍과 원지마을을 잇는 요충이 되어 산청읍과 원지 모두에게 이점이다. 그런 점에서 산청군청에서 어천마을에 좀 더 행정적인 지원을 한다면 산청에서 전국에 내 놓을 수 있는 마을이 될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의보감촌 대신에 사람이 사는 어천마을에 행정지원을 했으면 한다.

-어천에 들어와서 처음에 무엇을 했나
▲처음에는 래프팅을 했다. 그런데 당시 래프팅이 붐이어서 수입이 좋았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게 됐다.

 
-이장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고 나니 동네문제가 보이더라. 그래서 이장을 맡았으면 한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도와줘 2007년에 이장이 됐다.

-그럼 벌써 9년째 아닌가
▲그렇다. 9년째 이장을 하고 있다.

-장기집권 아닌가
▲장기집권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직은 동네사람들이 나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 같다.

-9년 동안 이장을 했으면 한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그동안 마을 안길을 다 포장했다. 또 마을 앞 제방을 만들었다. 물론 제방은 국토부에서 만든 것이지만 이 제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원을 제기하고 빨리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제방이 완공되면 어떤 이점이 있나
▲우선 침수피해를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기본이고 제방은 도로로 사용돼 마을안길을 다니던 자동차가 제방 길로 다니면 마을이 보호된다. 또 제방은 산책로로 활용될 수 있고 관광객들이 놀다가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제방에 꽃을 심는다면 그것 자체로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그 외 기억에 남는 일은
▲경남도의회 박우범 의원이 예산을 타 주어 마을회관을 짓고 있다. 올해 말이면 완성되는 데 이번에 마을회관이 완성되면 어천마을에는 세 곳의 마을회관이 생기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경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올해 산청군 농협의 단성면 이사가 됐다. 원래 농협이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동안 제가 어천마을 이장으로 활동한 것 등이 평가돼 조합원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아 이사로 당선이 됐다.

-농협 이사 선거에서 신 이장이 ‘진돗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던데
▲그게 어천마을 이장을 하면서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룬다는 뜻에서 사람들이 저를 ‘진돗개’라고 불렀다. 그게 사람들에게 어필을 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어천마을 ‘진돗개’라고 한다. 저도 그 별명이 싫지는 않다. 어천마을을 지키는 진돗개가 되는 게 저의 꿈이다.

 
-앞으로 어천마을에 남은 일은
▲인공폭포와 백두대간 들머리 기념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천교 들어오는 오른편 경호강가에 약 30m에 이르는 절벽이 있다. 여기에 인공폭포를 만든다면 산청의 명물이 될 것이다. 어천마을은 국도 3호선과 대진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여기서 이공폭포가 다 보인다. 폭포를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경호강과 어천마을을 찾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래프팅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고 산청군의 관광자원도 된다는 점에서 인공폭포를 만들었으면 한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백두대간 들머리 기념관은 무슨 말인가
▲어천마을의 뒷산인 웅석봉은 백두대간 마지막 봉우리이다. 이쪽에서 보면 시작 봉우리이다. 따라서 어천마을 입구에 ‘백두대간 들머리’표지석을 세우기로 하고 대한산악연맹 산청군 지부와 얘기를 마쳤다. 지금 표지석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표지석만 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기념관을 만들었으면 한다.

-웬 기념관인가
▲어천마을 웅석봉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특히 6·25때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 이현상의 남부군이 바로 이 웅석봉을 통해 지리산에 들어왔다. 휴전 협상으로 38선이 그어진 후 북쪽으로 갈 수 없게 된 남부군이 덕유산에서 활동하다 지리산에 들어오기 위해 남하를 하다가 바로 이 어천마을 경호강을 건너 웅석봉을 통해 지리산에 들어갔다. 웅석봉에 오르면 지리산 천황봉까지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런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동네이기 때문에 ‘백두대간 들머리’표지석과 함께 그런 역사적 사실과 마을의 스토리 등을 모아서 기념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백두대간 예산이 있으므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산청군청의 마인드 문제인 것 같다. 글/한송학·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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