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달 박사 평생을 진주사랑 몸소 실천
리영달 박사 평생을 진주사랑 몸소 실천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2.01.01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가 진정 발전할려면 문화·예술 통한 부가가치 창출해야

▲ 올해의 치과인상을 수상한 리영달 박사

평생을 치과의사로 사진작가로 축구인으로 문화운동가로 살아와

본인의 직업에 예술정신 투영시키면 그게 장인정신이라는 생각
최근 사천과의 통합…진주만 이익되는 통합 바람직하지 않아


평생을 받쳐 진주 정신, 진주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진주의 어른 리영달 박사가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한치과의사협회 주관 ‘올해의 치과인 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고 있다. 치과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진주 전통 문화·예술 발전의 선구자로서 참된 진주인의 표상이 되고 있는 리영달 박사. 리영달 박사는 치과의사 외에 대외적으로는 진주축구협회 회장, 진주문화사랑모임 이사장, 국제라이온스 협회 지역총재,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진주남강유등축제 제전위원장, 이상근기념사업회 이사장, 은초 정명수 선생 10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 진주논개제 제전위원장, 한국민속소싸움협회 진주시지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사진활동으로 ‘대한민국예총예술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진주시문화상, 경남예총특별상, 경남사진문화상 등 다수의 수상 이력을 가지고 있다. 멀티플레이어 치과의사 리영달 박사와 함께 희망의 임진년을 맞이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인터뷰 예정 시간에 찾아간 리영달 치과. 치과에 들어서자마자 선생은 벌써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올곧은 자세와 힘찬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하시는 모습에서 78세라는 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후 진주의 어른 리영달 박사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올해의 치과인상’을 수상하셨는데 상 소개와 수상 소감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올해의 치과인상은 대한치과의사협회 발행 치의신보 창간 45주년을 맞이하여 2011년 한해동안 국내·외적으로 사회 여러분야에서 뛰어난 활동과 업적을 보인 치과인에 주어지는 ‘명예로운 상’으로 치과인의 한사람으로서 수상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한 평생 치과의사로 살았지만 사진 작가로서 축구인으로서 또한 진주 전통 문화재 복원 운동가로서 등 다양한 삶을 살았다.

현재 제 사진 작품 중 2점이 도립미술관에 영구 보관되어 있고 한국 사진 작가 100인에 속할 만큼 사진 작가로서의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만큼 크고 작은 상은 많이 받았지만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치과의사로서 이렇게 큰 상을 받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때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겠다는 일념으로 학업에 전념해 서울치대 졸업하고 학부 출신으로는 1961년 진주에서 처음 치과를 개원했다. 형제, 자매들 대학 공부까지 다 시켰다. 집안을 일으키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문화·예술분야의 발전에 앞장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 치과의사라는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수상은 인생을 돌이켜 볼때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진주 전통 문화·예술을 복원하고 발전하는데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으신지.
▲서울 치대를 졸업할 시 등록금이 없어서 난감했다. 이때 진주시민들이 등록금을 기부해 주셔서 졸업할 수 있었다.

시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후 어떻게든 진주를 위해 일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주를 위하는 일이 시민을 위한 일이 아닌가. 한때 수입이 괜찮을 때는 부인 몰래 치과 수입의 20~30%를 지역사회 기부를 위해 썼다. 지금도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은 일들을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으시는 일이 있으십니까.
▲2006년 김시민장군 공신교서를 환수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국민 모금운동을 통해 국내로 돌아온 첫 사례이다. 공신교서는 진주에서 분실된 것이 아니라 90여년전 천안에 있던 후손들이 분실하거나 일제에 빼앗겼다는 사실을 공신교서를 가지고 있던 일본 학자가 가난으로 팔려고 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환수를 위해 국내 학자들과 언론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환수 운동을 펼쳤다.

일본정부는 당시 한달의 기간을 조건으로 1억5000만원의 환수금을 요구해서 진주문화사랑이 앞장서서 국민 모금운동을 펼쳤다.
진주시민들을 물론이거니와 국민들의 전폭적인 관심으로 2달만에 1억2000만원을 모금하고 여러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진주국립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었다.

진주 전시를 위해 진주의 두 국회의원과 시장 등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문화재청장을 만나 진주 박물관 전시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의 피나는 노력 끝에 공신교서가 진주로 올 수 있었다.
진주는 진주성이라는 하드웨어는 가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 따라서 공신교서를 진주로 가져올려고 노력했고 이는 앞으로도 진주시가 고민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망진산 봉수대 복원의 필요성을 위해 1996년 시민모금운동을 펼쳤는데 당시 6800만원을 모금했다. 당시 진주 시민 모두가 모금 운동에 동참해 주었는데 특히 초등학생들도 모금운동에 참가해 아직도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서 이상근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이상근 국제 음악제의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상근 선생은 국내에서 활동하신 음악가로 사후 외국으로 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분이다.
처음에는 다소 주목받지 못했지만 4회째 진행되면서 이상근 선생의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음악세계와 국악, 영화 ost 등 일반인들에게 친숙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접목시켜 현재 관람객들이 많이 늘고 있어 뿌듯하다.

통영의 윤이상 국제 음악제 보다 5/1정도의 지원금밖에 받지 못해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관람객들이 해를 거듭할 수록 늘어나는 것을 보면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되며 시민들이 지금과 같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준다면 세계적인 음악회가 될 수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클래식을 예전보다 접할 기회가 많은 학생들의 참여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최근 이성자 미술관 건립이 이슈화되고 있다. 물론 진주에 훌륭한 미술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성자 선생의 화풍을 살펴보면 진주의 풍광을 주제로 한것이 많고 진주 문화 발전을 위해 분신과도 같은 작품 300여점을 시에 기증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립 미술관이 건립된다면 이성자 선생 별관을 만들어 선생의 높은 뜻이 희석되지 않도록 해야 될 것이다.
외국의 탄광촌인 한 도시는 탄광산업의 후퇴로 경제가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유명 화가의 미술관 건립 이후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의 발길로 현재 엄청난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미술관 건립은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뛰어날 것이다.

-사진 작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예술가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예술가끼리는 돈거래를 하지말자’라는 말이 있다.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깍고 난 뒤 돈을 지불하지 않고 엽서에다가 그림을 그려준것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머리를 깍는 행위도 훌륭한 예술행위로 간주한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내고 박생광 화백, 은초 정명수 선생은 저의 오랜 고객이였다. 이분들한테는 치료비를 받지 않고 작품을 받았다. 나는 이를 다루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직업에 예술정신을 투영시키면 그게 바로 장인정신으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진주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 한말씀 해주신다면
▲최근 재래 시장 활성화에 대한 논의와 시책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래 시장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재래 시장이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 문화를 파는 곳으로 변모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며 진주를 대표하고 상징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진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이 지닌 부가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진주시가 혁신도시 유치, gs칼텍스 등의 대기업 유치 등 진주 발전에 비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성과를 얻은것에 큰 박수를 보내지만 문화·예술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게 좀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리영달 박사는 조광래 전 국가대표감독과 남다른 인연으로 유명하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조광래 감독이 경질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 어릴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쉰살까지 공을 찼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다.
1978~1982년까지 진주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한바 있다. 조광래 감독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조 감독이 진주고에서 축구를 할때 부터 지켜봐왔다. 지금도 저를 양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따르고 나도 애정이 남다르다.
조 감독은 어릴때부터 성품이 곧았고 바른말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 이번 경질도 축구협회 입장에서 볼때 조 감독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 작용했을 것이다. 허정무 감독이 2010년 월드컵때 외국 대회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뒀다. 후임 감독 자리는 당연히 독이 든 성배였을 것이다. 조감독은 이런 점을 잘 알면서도 감독직을 맡았고 축구협회도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정말 안타깝다. 축구협회는 보수적인 운영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운영을 할 수 있어야 앞으로 축구계가 발전할 것으로 본다.

조 감독의 고등학교 선수 시절 별명이 ‘달밤에 체조’였다. 잔디구장이 귀한 시절 잔디구장의 느낌을 익히고자 밤에 몰래 학교 화단의 잡초속에서 연습하다가 생긴 별명이다. 그만큼 능력가이다.
또한 조감독은 이청용과 윤빛가람을 키워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능성 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키위내는 데 타고난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런 역량을 가진 조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경질돼 진주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축구 사랑이 대단하신 것 같다. 축구 관련 이야기 응 해주신다면
▲어릴때 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지금도 축구에 대한 애정이 많다.
당시 치과 의사들은 지금으로 치면 골프처럼 고급 스포츠였던 정구를 많이 쳤다.

진주의 축구계는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을 해나가고 있었다. 진주농고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진주고에서 축구부를 맡아달라고 요청을 해와서 수락한게 진주 축구계와 인연이 되었다. 이후 진주축구협회장을 역임하고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축구협회장직을 그만하고 지속적인 축구 발전을 위해 리영달 축구상을 만들어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리영달 축구상은 한해동안 진주 축구발전을 위해 노력한 선수나 학부모, 지도자 등 축구관계자 모두를 대상으로 공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하며 ‘진주 축구인의 밤’ 행사에서 시상하고 있다.

-50여년간 진주에서 치과를 운영하셨는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1959년 서울치대 졸업 후 학부 출신으로는 1호로 진주에 개원한 그는 진주 치과계 및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많은 일에 앞장섰다.
당시 한지 치과의사들이 많았다. 치과의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치과는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다. 특히 요즘 들어서 치과를 찾는 분들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다. 이런 분들을 위해 무료치료도 해드리고 있으며 말동무도 해 드리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치료받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고 부산, 합천, 의령 등 경남 각지에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이런점이 이나이까지 현역에서 치과 의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인것 같다.

또한 자기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술, 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된다.

-후배 치과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나는 항상 멀티 플레이어 치과 의사라 자부한다. 본업 외에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치기 위해 치과 개업 후 철저한 예약제를 실시해 시간활용을 했다. 부지런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이는 치과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의사들은 응급환자도 많고 순간적으로 대처해야 되는 일들이 많은데 치과 의사는 그런점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지난 2003년 경남 치과의사들을 상대로 강연을 펼친적이 있다. 당시 강연의 마지막 멘트가 “사람한테 치매가 언제부터 오는지 아십니까?”였다. 답은 “30살 부터이다”
이 말은 곧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야된다는 말이다.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치과의사로 만족하지 말고 다양한 사회 활동과 봉사, 적당한 운동을 하라고 전하고 싶다. 사람은 시간을 잘 활용해 사용하면 인생에서 많은 일을 할수가 있다.

-진주 지킴으로서 진주에 바라는 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진주는 진주다워야 한다. 진주 정신을 일깨우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주 정신이란 어려울때 일어설 수 있는 나라사랑을 의미한다. 진주의 발전을 위해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천과의 행정통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정통합을 위해서는 목표 설정이 뚜렷해야 한다. 현재 이런점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는것 같다.
진주만 이익이 되는 통합은 바람직 하지 않다. 사천시에도 이익이 창출될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고 큰 계획을 그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진주, 사천 시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매우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왠만한 컴퓨터 작업은 직접 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트렌드와 콘텐츠가 보이면 그것을 공부하려고 노력한다. 과거를 살은 사람으로서 미래를 맞이하는 젊은이들에게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 하며 모든 일을 데이터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예전부터 일기를 써 왔고 사소한 것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습관화 하고 있다. 

-매우 건강해 보이시는데 비결이 있으신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마음이 우선시 되야 한다. 글을 많이 쓰라고 권하고 싶다.
일기를 쓰던 메모를 하던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활동이라 생각한다.
특히 글을 쓰되 형용사를 많이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형용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말은 그만큼 마음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생활한다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최선의 길 일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