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칼럼-행복한 섬김이
보훈칼럼-행복한 섬김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22 18:2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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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나라사랑 보훈 강사
 

허만선/나라사랑 보훈 강사-행복한 섬김이


필자는 참전용사지만 보훈병원이나 보훈처에는 관심이 없는데 전역 10년 후에 괴질을 앓게 되었고, 다시 십수년후에야 전상후유증임을 알게 되어서 행정절차로 지방보훈지청을 방문하고 진료 받으려고 보훈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으며, 중환자실의 단골이 되었다.

보험사기의 나이롱 환자가 아니라면 병원 가는 것을 대부분 싫어할 것이다. 환자가 중증이라면 본인의 고통, 간병가족의 수고로움, 가족이 아닌 간병인을 둘 경우의 비용 등으로 환자가 이중, 삼중의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어떨땐 극단의 나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병원 환경도 개선되어서 웬만한 병원에서는 호스피스나 가족부담을 최소화 해주는 전문간호사 제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보훈병원은 거의 그러해서 한결 가볍다. 지방의 보훈관서에서는 보훈도우미를 운용하고 있는데,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국가유공자와 재가 중증환자 집으로 도우미들이 찾아가서 청소나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니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보훈정책으로서 인생의 말년에 외로운 보훈당사자로서 고맙기 한량없다.

2000년대 이전의 보훈정책은 미미한 보훈급여에다가 부족한 부분이 많았었으며, 여타 국가보상에 비해 불만이 많았음도 사실이지만 개선되고 개선되어 긍지와 보람을 안겨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당연히 국가유공자 뱃지나 보훈큰나무 뱃지를 달고 활보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필자는 전우신문을 비롯한 일간지 등에 고정으로 칼럼을 써온지 이십여년 되었다. 초창기엔 희생에 대한 정당한 평가나 예우미흡 지적의 성향이었으나,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글 하나 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전쟁의 참화와 교훈, 유비무환의 고언 위주로 글을 썻으며, 그렇다고 해서 민족대와 애국심을 지나치게 강조하진 않았다.

급진성향의 젊은이나 좌파의 꼴통보수 공격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시대의 다양성과 변화의 시류를 받아들어여야 해서 이다.

다만 역지사지의 논지로 수천년을 유랑한 이스라엘이나 일제하의 나라였으나 설움 속에서 민주,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잊지 말자고 말이다. 사악한 최순실 블랙홀이 집어삼킨 현시국에서도 대한민국의 전진과 발전이 멈추어선 아니된다. 냉정을 찾자. 우리들 누구나 입술로 거짓을 말하고 부정한 행실을 한다.

간음한 여자에게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니까 모두가 돌아갔다고 했다. 보통사람도 군중에 휩쓸리면 야수가 된다는 에머슨의 말을 떠올리며 사진을 돌아보고 건강한 탄식으로 나라를 염려하자.

법과 질서를 훼파하며 군중을 선동해서 대권을 잡으려는 정치꾼은 경계해야 하겠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자의 눈물을 닦아주러 오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참사랑을 전해주는 보훈섬김이가 되어 달라고 기도하고 응원한다. 병동의 호스피스와 더불어 보훈도우미는 행복한 섬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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