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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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26 18: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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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국가


철학자 플라톤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가 ‘국가론’(Politeia)이다. 거기서 그는 이상적인 국가를 논하고 있다. 그게 전통이 된 것인지 철학자들은 국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나도 그런 편이다. 아마도 국가의 상태가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위해 이른바 ‘철인정치’를 기대했다. 간략히 말하자면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거나 혹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거나 하지 않으면 인간들에게 불행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 핵심이다.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몬 현실정치에 대한 그의 실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만일 철인정치가 실현 된다면? 그 내용은 어떤 걸까? 이것도 간략히 말하자면 ‘정의의 실현’이다. 그럼 정의의 실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이것도 간략히 말하자면 ‘국가의 각 부분들이 각각 그 덕을 구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통치자는 ‘지혜’, 수호자는 ‘용기’, 생산자는 ‘절제’라는 덕을 각각 실천하는 것이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실은 공자의 철학에도 이와 엇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정치[즉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핵심을 ‘정(正)’ 즉 ‘바로잡음’이라고 단언했다.(“政者, 正也”) 그리고 그 내용을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즉 ‘왕을 왕답게 신하를 신하답게 부모를 부모답게 자식을 자식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굳이 플라톤과 연결시키자면 군신부자가 각각 그 덕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다. 각각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상적인 국가가 실현된다는 생각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정치철학 내지 국가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도 이런 생각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른 방향에서 국가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보다도 한 국가가 건실하려면 ‘칼, 돈, 손, 붓’이라는 네 가지 힘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넷은 국가의 네 가지 초석에 해당한다. 이 초석을 튼튼히 하고 그 위에 국가라는 건축물을 세워야 굳건히 버티며 무너지지 않는다. 칼은 ‘군사력’ 돈은 ‘경제력’ 손은 ‘기술력’ 붓은 ‘문화력’을 각각 상징한다. 이 넷이 공히 그리고 조화롭게 강해야 강한 국가가 가능해진다. 여러 평가지표들을 보면 지금 우리는 이 네 가지 모두에 있어서 제법 괜찮은 위치에 링크돼 있다. 그러나! 저 막강한 이웃들을 생각할 때, 이 정도로 만족하면 절대 안 된다. 내가 만일 정치지도자라면 어쨌든 ‘세계 제일’이라는 기치를 들고 국민을 이끌고 싶다. 그게 불가능한 이상일까?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다 보면 제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최상위 그룹’에는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목표설정, 그런 지향이 아직 약하다는 것이다. 노력의 부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런 이상이 그냥 꿈만으로 이루어질 턱은 없다. 실천방안이 당연히 필요하다. 나는 그런 실천방안으로 ‘합리성’·‘철저성’·‘도덕성’·‘심미성’이라는 네 가지를 제시한다. 이 네 가지는 수준 높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네 기둥에 해당한다. 이 네 기둥이 ‘칼돈손붓’이라는 저 네 초석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각각이다. 즉 합리적인 칼돈손붓, 철저한 칼돈손붓, 도덕적인 칼돈손붓, 심미적인 칼돈손붓, 달리 말하면 합리적인-철저한-도덕적인-심미적인 칼, 합리적인-철저한-도덕적인-심미적인 돈, 합리적인-철저한-도덕적인-심미적인 손, 합리적인-철저한-도덕적인-심미적인 붓이 추구되고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제대로 된, 살만한, 수준 높은 나라가 된다. 이른바 선진국의 요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규모가 작다. 특히 우리의 주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 국토도 작고 인구도 적다. 이른바 양으로는 대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질적으로 저들과 겨룰 수 있다.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점,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저들을 능가할 수 있다. 규모가 적당한 만큼 오히려 효율적으로 그것을 실현하기에 저들보다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것으로는 ‘세계 제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질 높고 수준 높은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그런 방향을 보지 못하는가. 우리는 아직 합리적이지도 못하고 철저하지도 못하고 도덕적이지도 못하고 심미적이지도 못하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철인 통치자가 너무나 간절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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