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잠시 정리
도민칼럼-잠시 정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26 18: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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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잠시 정리


어느 해나 사건 사고는 늘 있었다. 태어나서 이런 일은 처음이야, 라고 하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도 있으니 내가 겪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어왔다. 그래도 모든 사건사고를 제치고 박대통령과 최순실의 게이트는 역사적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한다. 일상적인 경제활동은 이어가지만 4,5차 산업인 서비스업이나 오락, 레져 페션은 거의 정지상태가 되어 있다고 한다. 상가와 음식점은 특정한 몇 곳을 제외하고 매출이 줄거나 답보상태다. 관광지에 사는 우리가 볼 때 사람들의 차량 행렬이 전 같지 않다. 아무리 겨울이어도 꽃이 피는 이 섬진강변에 주말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어떤지 알 수 있게 하는 풍경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시골에서 사니 경제의 영향은 별로 받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나는 우스갯소리로 전과 달리 집에 들고 오는 선물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무엇을 들고 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오고가는 여유라도 있으면 좋은데 움직이는 게 돈인 세상이라 놀라오라는 말도 편하게 못하고 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정치에 관심이 많다. 투표율을 봐도 그렇고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도 그렇다. 정치인을 보면 욕을 하지만 정치인의 악수를 피하지 않고 더러는 그 자리를 애써 찾으며 어려운 일이나 도움 받을 일은 정치인과 의논하려고 한다.

정치와 경제가 엮여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면서 우리처럼 유착되어 있는 경우도 드물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없애야 투명한 경제생활로 불평이 없어지는데 사회주의국가도 아니면서 대통령의 한마디로 세금과 개발이 결정되고 지자제마저 덩달아 도지사의 말 한마디로 아이들의 밥그릇이 없어지기도 해서 지리산살이도 퍽퍽하다. 그리하여 우리 하동에서는 전라도인 구례로 이사를 하는 젊은 부부도 보았다.

경제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좋지 않다고 하니 더 주머니를 꽉 쥐게 된다. 국내는 이렇게 썰렁해도 연휴가 되면 해외로 나가는 인파에 몇 만이 공항을 다녀갔다고 뉴스에서는 난리를 칠게 분명하다. 그런 뉴스를 보고 있으면 경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한 장 남은 달력에 올해 남은 날도 이제 고작 나흘이다. 계속 리필 되는 뷔페식당처럼 우리에게 내년이라는 시간은 반복처럼 주어질 것이다. 과연 올해와 내년은 같을까? 누군가는 일상이 너무 평범하다고 무기력해할지 모르지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다. 바람도 구름도 햇빛도 어제와 같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감정과 여러 가지 일들로 때로 힘들지만 이 일로 힘들었다가 저 일로 위로받기도 해야 하는데 탄핵 정국에 놓여 있다 보니 무언가 묵직한 것에 눌린 듯 답답하다. 그 와중에 자기들의 당리당략으로 정치인들이 내놓는 해법도 진실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의심이 간다. 아직 탄핵이 과정 중에 있어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를 지지하네 어쩌네, 하는 말도 시답지 않게 들린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제 누구도 믿지 못하겠다는, 누구는 죽어도 싫다는, 감정적인 결정으로 마지막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게 모두 지난 9월 스캔들이 터지고부터, 2014년 4월16일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갈 때부터, 어쩌면 대한민국이 생기기 전, 나라를 팔은 놈들이 더 득세하고 살았던 일제강점기 혹은 그런 친일부역자들을 정리하지 못하던 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털어내지 못한 과거에 메여 이렇게 자꾸 이중적이고 감정적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꿈꾸는 것은 희망찬 일이다. 그러나 어제가 없었다면 오늘이 있지 않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정리를 해야 반복하지 않고 이중적으로 자기를 감추지 않는다. 정의가 사라졌다고 울기보다 정의로워지려고 애쓰는 누군가가 진실을 말할 때 박수를 쳐줘야 바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광장의 불빛을 생각한다. 단숨에 타오르기보다 오래 따뜻한 불빛들이 있다. 거기 분명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가족,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어 꺼지지 않고 가고 있다는 걸 안다. 잠시 답답한 마음을 광장의 불빛으로 위로받는다. 내년에는 봄이 지나기 전에 정치적인 선택은 매듭을 짓고 뜨거운 여름에는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면서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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