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조선시대 선비
진주성-조선시대 선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1.10 18: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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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조선시대 선비



학문을 닦아 학덕(學德)을 갖춘 사람의 옛스러운 말로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은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사약과 귀양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 항상 깨어 있는 깨끗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선비란 성리학을 전공으로 하여 그 이념을 실천하는 학인(學人)이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본으로 사대부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존재다. 인격과 학문을 도야하는 수기가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으로 갈 수 있다.

치인이란 남을 지배한다거나 통치한다는 권력 개념보다는 자신을 닦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군자가 되어 백성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봉사 행위를 의미한다.

선비는 경학(經學)이 핵심으로 성리학의 이기론을 해명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인간의 모든 현상은 기(氣)와 이(理)에 의하여 일관된 잣대로 생성하고 변화하며 소멸한다는 논리다.

선비의 길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거를 보는 것으로 대과인 문과에 합격하면 벼슬길에 나아가 9품관부터 시작하는 학자 관료가 된다. 둘째, 산림(山林)의 길이다. 과거를 보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는 대 학자를 산림이라 부르며 우대했다. 셋째 부득이한 선택으로 은일(隱逸)이 있다. 국가적 위기를 당했을 때 선비는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선택한다. 은둔 망명 자결중 판단될 때는 거의소청(擧義掃淸)을 택한다. 청빈을 미덕으로 삼아 검약(儉約)을 실천하는 청빈검약의 생활철학도 중요하다. 호화와 사치는 금기 사항이며 공적(公敵)으로 치부되었을 정도로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며 그 속에서 도(진리)를 즐기는 경지에 까지 이른 것이다.

비가 지향하는 가치는 학문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학행일치의 방향성이다. 선비의 멋은 학문과 예술로 시(時), 서(書), 화(畵)로 운치있는 삶을 살았다.

이들의 풍류 생활을 가능케 한 조건은 물질적 정신적 여유와 생활 조건에 기초로 하였고 선비의 삶의 공간도 그 조건 중 하나이다 생활 공간인 안채 교유공간인 사랑채 휴식 공간인 초당으로 손님을 맞아 교유할 수 있는 기능성을 제공했다. 선비가 사대부 생활을 하다가 당하는 좌절은 유배와 낙향이다. 바른 소리를 하여 사약을 받는 일도 불사하는 존재가 바로 선비인지라 귀양살이 정도는 기개있는 선비라면 한 번 쯤은 당하는 일이었다. 또 사직소를 올리고 혼란스러워지는 관계를 미련 없이 떠나 낙향하는 것도 선비가 취하는 선택이자 의무였다. 치인(治人)은 백성을 위한 봉사로 인격과 학문을 도야해야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고 수기(修己)는 학문 연마에 골몰 지방문화를 살찌우는데 한몫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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