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최초의 금연운동 발상지 진주
진주성-최초의 금연운동 발상지 진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15 18:2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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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최초의 금연운동 발상지 진주


금연운동(禁煙運動)의 시작은 금연하던 주민들이 당시 일본인 전매서 직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남전역으로 확산됐다.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면서 3개월간 담배를 끊으면 일본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때 일시적인 금연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1922년 그 당시 일간지 지국장 김의진 선생이 진주시 계동 청년회관에서 청중 1000여 명을 모아 금연강연을 했고 1923년 1월 신년기념 강연회 때 본격적인 금연계몽운동이 시작됐다.

1923년 1월 29일 부인의 친구인 김한경 등 26인을 발기인으로 하여 진주여성 단연(斷煙)동맹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고 발기인들은 당일부터 매일 10전~50전씩 저축해 금연사업에 사용키로 했다.

곧 이어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진주금주금연회를 조직할 때 천석구, 백남옥, 이영배, 김경명, 차용섭, 신현수 제씨가 발기하여 1923년 3월 23일 오후 7시에 진주청년회관에서 금주단연회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여 회칙통과와 임원을 선출했다.

이 때 김의진 선생은 금연에 관한 탐방결과도 보고했는데 회원 50여명이 참석했다.

회장 박재화, 총무 심두섭, 재무겸 서기 천석구, 조사원 신현수, 강대창 외 8명이 선출되었다.

여성단체의 임원들은 회장 천미산, 총무 김정희, 회계 김한경, 선전부장 박성자, 부원 김성원, 문처자, 장인숙, 김경초, 유장춘, 김영자, 문수향, 박금도 등으로 구성했다.

금연운동은 점차 확산되어 지수면의 허현성, 성계춘, 허우성 등이 발기해 자각회를 조직하고 산청군 신등면은 음력 정초부터 50세 이하는 일제히 금연금주동맹회를 조직했고 단계리 평지리 등은 연죽(煙竹)을 모두 수거해 갔다.

단성면 남사리 250여호와 강주리 260여호, 입석리 270여호가 모두 동참키로 하고 10호마다 간사를 두고 감시케 하고 발각되면 벌금 10원씩 부과키로 했다. 합천군 용주면, 진주 수곡면 일원에서도 금연 운동이 전개되었고 의령군 지정면, 합천군 가야면, 함양군 지곡면, 대지면에서도 동맹회를 조직해 서로 서로 감시하며 금연운동을 전개하고 연초경작자에게 50원 벌금을 물리자고 결의하자 크게 호응했다.

금연운동은 각 지방마다 전개되고 전국 시-군으로 확산되었으나 담배 피우는 인구가 줄지 않은 이유는 보이지 않은 손이 인간의 수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금연만으로 생명이 연장되거나 금연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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