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큰 불편 없어…정당 가입하지 않겠다
무소속 큰 불편 없어…정당 가입하지 않겠다
  • 대담 및 정리 / 황인태 본지 회장
  • 승인 2017.02.19 18:02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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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근 사천시장

▲ 송도근 사천시장은 66년 사천농고를 졸업한 후 선생님이 되기 위해 진주교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필기합격 후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해 결국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다고 밝혔다. 이용규기자
“사천시장에 재선까지만 출마하고 3선은 도전하지 않을 생각이다” 
건교부 시절 사천 진사공단 설립과 진주 농산물 시장 건립에 기여
66년 사천농고 졸업하고 진주교대 진학실패 후 공무원 시험 합격 

대담 및 정리 / 황인태 본지 회장

-그동안 송 시장의 정책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오늘은 좀 개인적인 면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으면 한다. 건교부(현재의 국토교통부) 1급 관리관 출신인데 어떻게 해서 건교부에 들어가게 됐나.
▲그게 좀 사정이 있다. 원래 공무원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원래는 사천농고를 졸업하고 집안이 어려워 선생을 하려고 진주교대를 지원했다. 6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교대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했다. 제가 색맹이다. 그것이 문제가 돼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됐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가 농촌지도직 공무원 시험을 쳤다. 지금의 농업기술센터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합격을 했고 졸업하는 그해 6월에 통영군 농촌지도소에 근무를 하게 됐다. 그게 공무원으로 출발한 계기이다.

-그럼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다가 건교부로 가게 된 것인가
▲그건 아니다. 거기서 근무하다가 이듬해 다시 행정직 시험을 쳤다. 당시 5급을류 였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9급 공무원 시험이다.

-현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다시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친 이유가 무엇인가
▲농고를 나와서 농업에 대해 공부를 했지만 통영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다 보니 적성이 안 맞았다. 농업직 보다는 행정직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시 시험을 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합격을 했고 68년도에 당시 건설부 부산국토청 9급 공무원으로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게 건교부에서 평생을 지내게 된 출발이다.

-9급에서 1급 관리관까지 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사실 당시 건설부에는 제가 아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죽도록 노력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승진이 빨랐고 1급 관리관까지 되었다.

-주로 맡은 보직은 어떤 것들인가
▲부산에 있다가 73년에 서울로 본청으로 갔고 거기서 주요부서는 다 맡았다고 보면 된다. 부산국토관리청장, 서울국토관리청장 등을 역임했고 마지막 보직이 정책조정실장이었다.

-건교부에서 주특기는 무엇이었나
▲주로 도시계획업무를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도시계획과 관련해서는 저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다.

-건교부라면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부처인데 가진 부동산이 있나
▲전국에 땅 한 평 없다. 건교부에서 도시계획부서에 주로 근무했는데 땅 한 평 없다고 하면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9급으로 출발해서 1급 관리관까지 갔다고 생각한다. 건교부에 유능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재산과 관련된 직원들은 귀신이 잡아가도 다 잡아가더라. 그것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늘 조심했다. 그래서 지금도 땅 한 평 가진게 없다.

-건교부라는 주요 부처에 근무하면 고향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을 텐데. 사천을 위해 도와준 게 있나
▲지금은 사남공단으로 이름이 바뀐 진사공단을 만들어 준 게 사실 저라고 보면 된다.

-왜 그런가
▲진사공단은 원래 진주에서 추진하던 것이다. 진주에서 국가산단을 지정키로 하고 예산을 확보해 두었다. 그런데 사업추진이 잘 안 돼 예산이월을 시켰다. 그런데 다음해에도 추진이 잘 안되어 예산이 다시 한번 이월하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예산을 반납해야 된다. 그래서 제가 꾀를 내어서 진주에서 하지 말고 사천에서 하자고 제안을 했고 지금의 위치에 공단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원래 진주에서 시작한 것이라 예산항복에 진주가 붙어있어서 이름을 다 빼지는 못하고 ‘진’자를 넣어서 진사공단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사남으로 바꿨다. 사남공단이라고 하면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편법을 써서 공단을 새로 만든 것이다.

▲ 송도근 사천시장은 사천이 진정한 항공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민항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자신의 재임기간 중 사천민항기 시대를 위한 초석을 만들어 놓고 싶다고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이웃인 진주를 위해 한 일은 있나
▲진주를 위해 한 일 중 기억나는 일은 진주 초전에 있는 농산물 시장을 만들어 준 일이 기억이 난다.

-어떻게 된 것인가
▲그때 제가 그린벨트 담당과장일 때인데 진주에서 농산물 시장을 만들겠다고 올라왔다. 그런데 농산물 시장의 위치가 당시 그린벨트에 위치해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일을 추진했던 당시 진주시 농산과장이 사천 용현 출신으로 선배였다. 그래서 저한테 그 인연으로 고향사람이라고 찾아왔다. 그린벨트에 대규모 개발행위를 하려니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쉽지 않은 문제였지만 어쨌든 만들어 냈다. 지금으로서는 쉬운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가 아주 엄격하던 시절이라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게 기억에 남는다.

-건교부는 언제 퇴직했나
▲2006년 1월 10일 퇴직했다.

-그 이후 사천에 오게 된 것인가
▲그렇다.

-건교부 출신이라면 당시로서는 오라는데가 많았을 텐데
▲그렇다. 서울에 있는 큰 건설회사를 비롯해 건교부 산하기관 등 오라는 데가 많았다. 그런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천으로 오게 됐다.

-그게 무슨 말인가
▲2006년 5월에 지방선거가 있었는데 2005년부터 사천에서 사람들이 올라와서 시장출마를 해 달라고 졸랐다.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 줄반장 선거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이 올라와서 졸라대기도 하고 해서 2005년도에 금요일부터 사천에 와서 다녔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살살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6년 1월에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한 것 같나
▲선거란 것이 다 그렇지만 뛰어 보면 10% 나오는 사람도 자기가 당선되는 줄 안다. 저도 마찬가지였다. 건교부에 있을 때는 제가 내려가기만 하면 그냥 당선되는 줄로 착각했다. 그래서 정말 선거나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덜컥 내려왔다. 그래서 8년이나 고생을 한 것이다.

-처음 내려와서 어떻게 했나
▲무소속으로 당시 김수영 시장이랑 붙어서 22% 득표했다.

-무소속으로 22%면 대단한 것 아닌가
▲그게 또 사람 죽이는 숫자다. 아예 10% 정도 나왔으면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았을 거다. 그런데 무소속으로 나와 22%나 받았으니 사실 작지 않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다음에 또 출마하게 됐다.

-2010년 말인가
▲그렇다. 그때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정만규 시장이랑 붙어서 3300표 차이로 졌다.

-참 아까운 숫자다

▲아까운 숫자가 아니고 사람 망하게 하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처음처럼 22% 정도 나왔으면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가 보다’ 하고 정말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 거다. 그런데 3300표 차이로 졌으니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더라. 그렇게 해서 다시 세 번째 도전하게 된 것이다.

-세번째도 무소속이었나
▲그렇다.

-왜 여당이나 당의 공천을 신청해 보지 그랬나
▲공천이라는 게 사실여부를 떠나 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도 없는데 공천이 되겠나’고 생각해 아예 처음부터 무소속으로 도전했다.

-그래서 결국 무소속으로 3번 출마해서 꿈을 이룬 셈인가
▲그렇다. 아무튼 하고 싶은 바를 이루었으니 꿈을 이루었다고 해야겠지.

-현재도 무소속인가
▲그렇다.

-당에 입당할 생각은 없나
▲사실 작년 하반기에 여당에 입당할 생각이었다. 제 생각과 관련 없이 시민들은 국회의원과 시장이 당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입당을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최순실 사태가 터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입당이 보류됐다.

-그럼 앞으로 여당에 입당할 것인가
▲딱히 그런 생각은 없다. 사실 작년에 입당을 추진할 때도 모양새 때문에 그랬지 무소속이라서 불편한 것은 없었다. 입당하면 제 지지자 중에 또 그 당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떤 당에 입당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꼭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과 시장이 같은 당 소속이 아닌데서 오는 시민들의 불편한 마음을 고려했던 것이다. 지금은 정당들 사정도 그렇고 저도 그럴 생각이 없다.

-다음번에 또 출마할 것인가
▲그렇다. 출마할 것이다.

-경쟁자로 누가 거론되나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출마했던 사람들하고 박동식 경남도의회 의장이 거론되는 걸로 알고 있다.

-최상화 남동발전 감사는 아닌가
▲최 감사는 의회 쪽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이 있나
▲무소속으로 세 번 도전해 결국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현직 시장을 이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도전할 때도 이겼는데 지금은 제가 현직이다.

-3선까지 할 생각인가
▲저는 그런 생각이 없다. 재선까지만 할 생각이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지 않겠나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럼 8년 사천 시장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언가
▲민항기를 만드는 사천을 만들고 싶다.

-무슨 뜻인가
▲사천은 항공 중심 도시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군용기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항공산업이라고 할 수 없다. 민항기를 만들어 수출할 때 진정으로 항공산업이 정착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제 임기 중에 사천 민항기 시대를 열고 싶다.

-진주·사천 통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제 생각을 떠나서 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 그런가
▲지금 진주는 동서축으로 개발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천과 진주의 통합을 위해서는 진주의 개발계획이 남북축이 됐어야 했다. 문산에 있는 종합운동장이 정촌에 왔어야 했고 또 혁신도시도 현재의 문산에 두더라도 적어도 30%는 정촌에 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천과 진주가 통합되면 사천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 아주 크게 된다. 진주가 진정 통합에 대한 장기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것들을 고려해 도시개발 계획을 짰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으로서는 이 모든 것이 정착된 상태이다. 그래서 통합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가 어렵다고 본다.

-본인이 추진할 생각은 없나
▲저도 그럴 생각은 없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통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사천의 항공역사를 재조명하고 발자취를 기록한 ‘사천 항공 63년사’를 발간했다.
-본인의 단점은 무언가
▲소통이 안 된다. 정치력이 부족하다. 고집이 세다는 것들이 단점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본인 생각은 어떤가
▲우선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시장은 정치인이 아니다, 는 답을 하고 싶다. 시장은 주어진 법 안에서 집행하는 업무이다. 거기에 정치력을 발휘하면 저는 큰 일 난다고 생각한다.

-소통이 안 된다. 고집이 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소통이 안 된다, 고집이 세다는 말은 아마 비슷한 말 일텐데 시장이 부탁을 잘 안 들어 준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민원인들의 부탁을 잘 이해하고 처리해 주어야 하겠지만 저의 스타일은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시정이라는 것이 시장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모두 다 법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시장에게 오는 민원은 악성 민원이다. 제가 들어주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제가 말을 돌려서 하고 위로를 하면 좋겠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는 오히려 확실하게 안 되는 것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민원인에게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비판을 수용할 생각은
▲성격이야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면 더 경청하고 소통도 넓혀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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