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지리산향기29-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삶!
도민칼럼-지리산향기29-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삶!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21 18: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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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삶!


우리 민족은 참 흥이 많다. 부끄러움도 많아서 선뜻 앞에 나서지 못하지만 다 같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누구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도 잘 춘다. 마을마다 풍물패가 있는 것만 봐도 우리가 잘 노는 민족인 것은 분명하다.

엊그제 우리 집 마당에는 사람들이 한가득 이었다. 내 옆지기이면서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원규씨의 사진갤러리 예술 곳간 <몽유>의 오픈식에 사람들이 온 것이다. 광주 풍물패 일풍 식구들과 전통문화예술단 굴림의 김태훈 대표가 와서 한판 흥겨운 잔치를 벌여주었다. 동네 어르신들도 오시고 일일이 부르지 못했지만 기꺼이 와 준 지인들이 있어 마당이 꽉 찼다. 해남의 소리꾼 마승미가 연신 흥을 돋우니 얌전하고 수줍음을 타는 사람도 예외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걸리가 한 순배 도니 너나없이 엉덩이가 들썩여지고 이 좋은 판에 한번 놀아보자고 어깨춤이 덩실거린다. 그전날 밤 지리산행복학교 입학식에는 마술사 유현웅씨가 7080 고고장 음악을 틀어 사람들을 들썩이게 했다. 전혀 놀지 못하게 보이는 사람도 트위스트를 추며 몸을 흔들어댔다. 가만히 생각하니 요즘 우리가 너무 많이 눌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가을부터 세상에 관심이 있건 없건 뉴스 시간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좀 즐거운 글쓰기를 하는 쪽이어서 늘 콩트 식으로 쓰는데 내 글은 3년 전 그날 이후로 자꾸 무거워졌다. 그날 나는 잡지사 원고 마감으로 밤새 글을 쓰다 오전 내내 자고 있었다. TV를 보지 못했고 오후에는 4월 10일에 회의한 우리 학교 운동회 준비로 마음이 바빴다. 저녁에 뉴스를 보면서 ‘이거 큰 일 났구나!’ 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우리에게도 특수대원이 있으니 아이들을 꼭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통령도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단다.

그런데 자꾸 미심적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조명탄을 쏘고 헬기가 나르고 엄청난 인원이 투입되었다고 했는데 진도 사는 지인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다 보고 있는데 ‘뉴스가 순 거짓부렁’ 이라고 열을 내며 말했다. 천안함 이후로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구조함대 통영함이 있으니 곧 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지 않았다. 해군참모총장은 가라고 했다는데 두 번이나 막았단다. 누가? 무엇 때문에 막았을까? 우리가 좋아해 마지않는 선진국의 최고봉 미국에서 세월호 사고가 나자 리처드함의 타인츠 사령관은 즉각 비상(alert)을 발령하고 긴급 구조에 나섰다고 한다. 가장 먼저 사고 해역으로 급파한 MH-60 헬기 두 대는 그러나 한국 정부의 사고 해역 진입 불허 방침으로 세월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회항했다는데 누가? 무엇 때문에 막았을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생로병사가 아닌 사고사는 사람의 잘못이다. 더구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의 죽음은 두고두고 원망을 낳게 된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무언가 찜찜하고 무거운 짐들에 눌렸고 일부러 큰소리로 ‘물에 빠지면 어차피 못살아’ 라고 말하는 하동시장의 어느 아저씨 말이 알고 보면 무의식적인 죄의식에서 역으로 나온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우리는 즐거워도 즐겁다고 웃는 것이 미안하고 재밌어도 재미있다고 웃는 것이, 속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지속되고 있다. 전쟁 통에도 저녁에는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쳤을 거라고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은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를 만든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삶을 꿋꿋이 살아내는 것은 옳다.

엊그제 사람들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춤을 추면서 가슴 한쪽이 기쁘다가 슬프기도 했다. 이렇게 재밌게 노는 민족인데 이렇게 흥이 많은 민족인데 다 같이 즐겁게 하는 큰 행사 한번 없이 올림픽도 시들하고 월드컵축구도 한데 모여 보지 않고 우리가 맥없이 살아 왔구나 싶었다. 이제 우리의 죄의식을 좀 털어버리도록 사실을 알고 싶다. 그냥 사실을 알고 싶다. 이후에 판단은 각자가 하면 된다. 그러니 이제 반쯤 밝혀가고 있는 특검을 중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섬진강변 매화도 팔이 잘려 나가는 전정을 당하면서도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도 아프지만 좀 자를 건 자르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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